한계를 넘다 *..역........사..*



전한 - 신나라 연간에 원섭原涉이라는 협객이 살았습니다.

본래 불량배(사실 협객이란 법 질서를 따르지 않는 불량배죠)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남양 태수를 지낸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원섭은 아직 십대의 몸이었습니다.

태수의 장례이기 때문에 부조금이 왕창 들어왔습니다만 원섭은 그 모든 부조금을 사양하고 아버지 무덤에 초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습니다. 유교가 국교기는 해도 3년상을 치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때였다고 합니다. 원섭은 이 두가지 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우부풍을 비롯 높은 양반들이 줄지어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원섭은 대사도의 일을 보아주기도 하는 등 두각을 드러낸 끝에 불과 20세에 곡구현의 현령이 되었습니다. (곡구현은 장안 근처의 현입니다.) 그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원섭은 별 일 하지 않았어도 현이 잘 다스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원섭의 숙부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섭은 자기 스스로를 탄핵하여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숙부의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죠. 사실은 그가 손을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원섭이 분노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곡구현의 호걸 한 명이 대신 복수를 해버렸습니다.

아무튼 살인을 사주한 격이므로 원섭은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절이 좋은 점은 시간이 지나다보면 대사면령 같은 것이 떨어져서 죄가 탕감된다는 거겠지요. 원섭도 1년 쯤 후 사면령이 내리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거사로 원섭은 협객으로서의 명성을 휘날렸습니다. 사방의 호걸들이 원섭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원섭은 그 사람들을 모두 공손하게 맞이했고, 그러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원섭 자신은 재산도 별로 없었고 돈에 욕심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도와주고 남의 급한 사정을 풀어주는 것을 자신의 보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협객들은 이런 원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원섭을 욕하면 원섭의 은혜를 갚기 위해 그 자를 죽여버렸습니다. 원섭은 사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사람을 죽일만한 일도 아닌 것으로 그의 비위를 건드렸다가 죽음을 당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심지어 그의 하인마저도 푸줏간 주인과 시비를 벌이다가 도끼로 찍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임시 현령이었던 윤공이 원섭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하인이 달아나 돌아오지 않자 윤공은 원섭을 죽여버리려 들었습니다. 다행히 다른 호걸들이 윤공에게 탄원을 해서 원섭은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대신 원섭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묶고 화살로 귀를 뚫은 채 사죄를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자승자박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

윤공은 멋지게 원섭을 찍어눌렀지만 원섭의 세력을 생각해보면 겁이 안 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정식 현령도 아니고 임시 현령이었으니까요. 이때 왕유공이라는 속관이 아예 원섭을 확실히 조지자고 계략을 냅니다. 원섭이 협객이 된 뒤에 아버지 장례를 너무 검소하게 치른 것이 후회가 되어, 무덤을 호화찬란하게 꾸몄는데, 이것은 법을 어긴 행위였습니다. 바로 이 점을 조정에 고하고 정식 현령의 자리를 노려보라고 한 것입니다.

윤공은 그 말을 따라서 현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섭 부친의 묘가 부서져버렸지요. 하지만 원섭은 윤공을 미워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원수는 이 계략을 꾸민 왕유공이었지요.

왕유공의 배다른 형 기태백은 원섭의 친구였는데, 왕유공은 원섭을 평소엡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원섭도 이번 기회에 왕유공을 보내버리기로 결심했죠.

원섭은 맏아들 원초와 자객들을 왕유공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왕유공 부자를 도륙을 냈는데, 기태백과 왕유공의 모친은 털끝 하나 대지 않고 절을 올린 뒤에 물러났습니다. (그럼 뭐하나... 남편과 아들이 졸지에 피떡이 되어버렸는데...)

언젠가 한 사람이 원섭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대는 본디 이천석 벼슬을 한 집안의 후예로 재물을 사양하고 예법을 지켜 명성을 얻었소. 그대가 숙부의 원수를 갚았을 때도 인의의 행실을 잃지 않았는데, 오늘날에는 방종하여 스스로 협객의 무리가 되었으니 이는 대체 무슨 연유요?"

원섭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한 과부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절개를 지키고 있을 때 여인은 옛 효부들의 행실을 따라하였으나, 불행히도 도적에게 일단 절개를 잃은 뒤에는 음탕한 행실을 자행하게 되었소. 예법이 아닌 것을 알지만 스스로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이오. 내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요."

흔히 한번 선을 넘기가 어렵지, 넘고 난 뒤에는 별 거 아닌 일이 된다고 말합니다. 원섭이 한 이야기도 바로 그 점을 가리킨 것이지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선을 넘은 뒤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원섭은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원섭의 뒷 이야기.

원섭은 한나라 부흥 세력 경시제의 장군 신도건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신도건은 원섭을 인물이라 생각하여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악연이 있었던 윤공이 신도건 밑에서 주부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공은 원섭이 좀 무서웠을 것입니다. 원섭이 신도건과 만나고 나오는데 윤공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원 공, 세상이 변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저를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섭은 이 말에 불같이 노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소인배로 취급했기 때문이겠지요. 심기를 상한 원섭은 자객을 보내 윤공을 죽여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신도건이 화를 낼 차례였습니다. 신도건은 겉으로는 화를 억누르고 원섭에게 "그깟 속관 하나 죽인 게 무슨 대수겠소. 자진해서 출두하면 용서하겠소."라고 전하였습니다.

원섭은 이번에도 자승자박한 꼴이 되었는데, 신도건의 말에 따라 수레를 타고 나섰습니다. 신도건은 미리 군사를 매복시켜 놓고 있다가 원섭을 포위하고 원섭의 빈객들을 떼어놓은 뒤에 원섭을 죽였습니다.

한계를 넘은 사람의 말로였습니다.

덧글

  • 해색주 2012/07/09 00:47 #

    선을 한 번 넘으면 돌아오기 어렵지요. 그래서 유협에서 관으로 넘어온 유비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봅니다. ^^
  • 초록불 2012/07/09 23:28 #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군요...^^
  • 부여 2012/07/09 01:05 #

    전한 말의 일이로군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교의 이데올로기가 교조화되어가는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선의로 시작된 삼년상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기도 하고요. 원소도 처음 삼년상으로 인망을 얻었고,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삼년상이 관리 등용의 필수요소가 된다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유협(流俠)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적절한 것 같습니다. 유교 이데올로기를 덮어쓰면 의로운 협객(俠客)이요, 벗어던지면 그저 부랑자 유맹(流氓)이니.
  • 초록불 2012/07/09 23:29 #

    협객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은 숙부의 복수가 시초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협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은 참 재미있네요...^^
  • 부여 2012/07/09 23:37 #

    개인적으로 ─이미 읽어보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유맹에 대한 생각은 진보량의 『중국유맹사』의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 재미(?)있더군요.
  • 초록불 2012/07/10 00:10 #

    제목은 보았는데 읽어보지는 못 했습니다...^^
  • 파랑나리 2012/07/10 23:51 #

    전한시대만 해도 3년상은 특기자선발의 기준이었는데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서 조선에서 3년상이 보편화되었던 건 신기합니다. 아무리 성리학이 널리 퍼져도 어떻게 3년상이 보편화 될 수 있었던건지.
  • Warfare Archaeology 2012/07/09 01:31 #

    흐음...참 다사다난한 삶을 살다 갔군요~~
  • 초록불 2012/07/09 23:29 #

    한두가지 일화는 글이 길어져서 뺐습니다...^^
  • 2012/07/09 02: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9 23: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원더바 2012/07/09 02:30 #

    결말이 참;;
  • 초록불 2012/07/09 23:31 #

    쌈박하지요... (농담입니다...)
  • 2012/07/09 10:4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9 23: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09 13: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9 23: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파랑나리 2012/07/10 23:51 #

    한 무제 때 협객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 초록불 2012/07/11 00:33 #

    협객이야 그 후에도 많이...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