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음식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쓰면 됩니다...(그럴 리가 없잖아!) [클릭]
위와 같은 이야기로 한 번 써보는 음식 + 역사 콤보 포스팅!

태조 때부터 음식을 만들어 총애를 받은 김귀진金貴珍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귀진이 음식을 잘 만들어서 받은 벼슬이 무려 검교전서檢校典書!
으잉? 검교전서?

그게 뭘까요?
검교檢校라는 것은 이름만 있는 벼슬 앞에 붙이는 일종의 접두어입니다. 말하자면 명예박사의 '명예'와 같은 말인 거죠. 즉 명예 "전서典書"라는 말이 되는 것이죠. 그럼 전서典書란 무엇인가?
조선초에 쓰인 전서라는 말은 판서의 다른 말입니다. 이조판서, 병조판서 하는 그 판서입니다. 제가 김귀진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네요.

그런데 김귀진이 졸지에 종이 되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도관 좌랑都官佐郞 최사위崔士威가 김귀진의 모친을 붙잡아서 신원조사를 해본 결과 원래 도관都官의 종이었다고 자백을 한 겁니다. 도관이라는 곳은 형조 산하기관으로 노비들 기록과 소송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하필이면 이곳의 노비 출신이라는 것이 묘합니다.
김귀진은 억울하다고 사헌부에 호소를 했는데, 사헌부는 근거없다고 기각해버렸습니다. 담당관은 사헌부 지평(정5품)으로 있던 한옹韓雍.
태종은 한옹을 불러서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는데, 한옹은 "귀진의 어미가 도관에 진술서를 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종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태종은 도관에서 강압적으로 진술서를 받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한옹에게 집으로 물러가라(근신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사를 충실하게 하지 않았다고 견책을 한 것이죠.
하지만 한옹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계속 사헌부로 출근을 했습니다.

태종의 노기가 미치기 전에 사간원에서 한옹을 탄핵했습니다. 덕분에 잘 나가던 한옹의 출세길은 여기서 주춤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그후에 다시 복직해서 나중에 한성부윤(정2품)까지 지내지요.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처음 형조의 도관좌랑 최사위가 이 사건을 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최사위의 아버지가 바로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종2품)이었다는 거죠.
대사헌 최유경崔有慶은 상당히 꼬장꼬장한 인물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걸핏하면 탄핵 상소문이...) 아들이 조사한 사건이 사헌부에 접수되었기 때문에 최유경은 이 사건을 다루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편을 들기 십상이라 공정성이 의심을 받는 거죠.) 이리하여 대사헌을 비롯, 절차를 지키지 못한 사헌부 집의(종3품), 장령(정4품)까지 모조리 관직이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물론 그 후에 모두 복직하고 승진도 합니다. 영의정이 된 사람도 있고...)
김귀진이 양민 신분을 되찾았는지는 기록에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모두 면직된 것으로 보아서는 신분을 되찾았을 것 같습니다. 태종은 절친한 신하에게 이런 말을 하죠.
"귀진은 부왕 시절부터 그만 은퇴하고 싶다고 여러번 호소했었는데, 과인이 임금이 된 뒤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과인은 그것이 더 불쌍하구나."
하긴 태종에게 저 이제 고만 할래요, 라는 말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이라도 들으면 찔끔할 듯...
아무튼 김귀진은 뒷빽이 임금인지라 쉴드 하나는 제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이런 쉴드도 사실 본인의 실력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긴 합니다. 뭐든 제대로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포스팅이 음식 주제라는 게 맞긴 하나... (먼산)
덧글
결국 뺵이 든든한게 중요하군요.
능력이 출중하여 상관의 애정을 듬뿍받은 케이스가 아닐까요?
(모름지기 뻭이란 능력없는 사람이 윗사람의 애정을 듬뿍받는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