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역........사..*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빨간날이 아니라서 그런지 제헌절인지 모르는 분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잘 모릅니다...^^;;

아무튼 제헌절이라는 건, 블로거에게는 포스팅 거리가 있는 날이라는 뜻... (퍽!)





1948년 3월 1일. 미군정 최고 책임자인 하지 사령관은 <조선인민대표의 선거에 관한 포고>를 발표했습니다. 3월 17일에 <국회의원 선거법>이 공포되었고, 5월 10일 북한 지역 100석을 제외한 200석 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제주도는 4.3의 여파로 선거를 치를 수 없었다. 제주도의 2개 선거구가 빠져서 총 198석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무소속 85
독립촉성국민회 54
한민당 29
대동청년단 12
기타 정당 및 사회단체 18

이 선거는 보통선거로, 재산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1948년에 이런 형태는 매우 선진적인 것이었죠.

이때 뽑힌 국회의원은 제헌국회의원으로 헌법을 제정하여야 했습니다. 헌법. 나라의 기본법을 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것입니다. 사실상 나라세우기의 책임을 지고 있었죠.

그리고 선거로부터 불과 두 달 후인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발표되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우리나라 역사에서 전대미문인 헌법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전부터 헌법에 대해서 연구를 해오고 있었던 거죠.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는 임시정부까지 올라갑니다마는.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그냥 영향을 미쳤다, 정도로 정리합시다...^^;;)

미군정 때인 1947년 6월 30일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산하 법전기초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여러 분과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헌법분과위원회였죠. 위원장은 김병로. 후일 초대 대법원장이 된 사람이고, 일제하에서 민족운동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유진오라는 인물이 위원으로 있었습니다. 초대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한 사람이죠. <김강사와 T교수>라는 소설로도 알려져 있죠.

유진오는 법조계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법학 저술과 교육에 힘쓴 인물입니다. 유진오는 1924년 경성제국대학에 수석합격하고, 법과를 수석 졸업했습니다.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유진오는 일제가 군국주의를 강화하면서 압력을 받게 되고 급기야 친일 행각을 하게 됩니다.

유진오는 법학을 공부하기는 했으나 법조계 인사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그 때문에 다른 위원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진오는 행정연구회라는 곳과 협력하여 헌법안을 또 다시 만들게 됩니다. 행정연구회는 임정 출신 신익희가 1945년 12월 17일 일제강점기 고등문과 출신들을 모아서 조직한 단체입니다. (독립투사 신익희가 친일파를 모아서 조직을 만들었다니, 희한하죠? 해방 공간이라는 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더라고요.)

이 행정연구회 안에 헌법분과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독자적으로 헌법 기초작업을 하고 있었지요. 1차 초안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이들은 친일파 집단이라는 약점이 있어서 제헌국회에 내놓기가 꺼려졌습니다. 그래서 친일 경력이 비교적 약한 유진오와 손을 잡고자 한 것이죠. 신익희는 이승만과 협력하고 있었고, 유진오는 한민당의 영수인 김성수에게서도 양해를 받았습니다. 이승만, 신익희, 김성수의 지지를 등에 업었으니 걱정할 일이 없었죠.

제헌국회는 5월 31일 개원했는데, 유진오와 행정연구회의 헌법초안은 그날 새벽 2시에 끝났습니다.

5월 2일 헌법기초위원을 선출한 제헌국회는 7일까지 헌법안 기초작업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음날 열린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한민당의 서상일이 위원장에, 독촉국민회의 이윤영이 부위원장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열 명의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을 선정했죠.

유진오, 권승렬, 임문환, 한근조, 노진설, 차윤홍, 김용근, 윤길중, 고병국.

한민당 계열은 유진오 안을 제출해서 헌법 문제를 마무리할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헌법 초안을 불과 닷새 후에 내놓으라고 한 것은 다 유진오를 믿고 한 이야기였던 거죠.

그런데 뜻밖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법조계 측에서 온 전문위원인 권승렬이 헌법초안을 제출한 것입니다. 권승렬은 변호사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일제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었고 친일행적도 없는 인물로 미군정하에서 사법부 차장을 지내면서 헌법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뜻하지 않은 돌발 사태로 인해 헌법 심의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습니다. 22일이 되어서야 양측의 조안을 조절해서 헌법 초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초안을 가지고 치열한 논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냥 헌법 초안 나왔어요. 거수하세요. 끝... 이렇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다음의 두가지였죠.

첫번째는 단원제냐, 양원제냐 라는 것. 원래 헌법 초안에는 양원제가 만들어지게 되어있었지만 국회에서 표결 끝에 단원제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 양원제는 4.19 이후 한 번 등장했을 뿐, 우리 역사와는 인연이 거의 없게 되었죠.

두번째는 내각책임제냐, 대통령제냐. 이때까지는 압도적으로 내각책임제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6월 19일 조문별 검토가 마무리되고 이제 결정만 남은 상황까지 왔습니다.

이때, 똥줄이 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박사죠. 강력한 대통령제를 원했던 이승만은 내각책임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는 내각책임제 헌법이 만들어진다면 자신은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승만이 빠진 정부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한민당은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었습니다. 헌법 상정은 23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원래는 21일이었던 것을 이틀 연기한 것입니다. 이때 김준연이 나서서 헌법 초안에 줄을 죽죽 그어서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제로 고쳐버렸습니다. 김준연은 독일에서 법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죠. 그것을 유진오를 불러 다시 검토하게 했습니다. 유진오는 양원제가 깨진데 이어, 내각책임제마저 무너지자 이제 이 일에서는 손을 떼겠다고 해버렸죠.

하지만 유진오는 이제 손을 뗄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23일에 국회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강제로 불려와 헌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했습니다. 김준연이 순식간에 고친 헌법. 그래서 제헌 헌법 안에는 내각책임제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본회의에 올라온 헌법 초안은 다시 갑론을박의 토론을 거쳐 7월 12일에 공식적으로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세 사람의 의원이 반대를 표명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은 7월 17일 국회에서 공표되었습니다.






에구에구, 17일도 얼마 안 남았군요. 시간 맞추느라 마구 휘갈긴 글이지만... 잘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올립니다.

덧글

  • 2012/07/17 23:2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17 23: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17 23: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17 23: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Allenait 2012/07/17 23:45 #

    하기야 태조 입장에서는 내각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겠죠.. 그런 면에서 만약 내각제로 갔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가 기대됩니다
  • 초록불 2012/07/18 00:10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 Fedaykin 2012/07/18 00:01 #

    그럼 뭐냐, 그 대한민국 헌법이라는것이
    내각책임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마지막에 내각책임제라는 단어만 대통령제로 확 바꾼 헌법이다, 이렇게 되면 되는건가요. 줄 좍좍 그어서 수정한다는 서술은 이런 의미로 들리는데 말입니다.
  • 초록불 2012/07/18 00:10 #

    여기에는 국회해산권,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 대통령의 법안거부권 등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승만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나중에 고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좀 미비한 부분이 있어도 일단 정부 출범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반면에 한민당 측은 대통령을 견제해서 실질적으로는 내각책임제 비스무리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차이는 바로 갈등으로 드러나게 되지요.
  • 초록불 2012/07/18 00:13 #

    에... 뭔가 써놓고나니 질문하신 것과 동떨어진 내용이 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단어만 바꾼 것은 아니지만 권력구조 문제에서는 급조된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 헌법은 그 후에 9차례에 걸쳐 개정되기 때문에... 첫줄에 쓰신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초대헌법"이라고 쓰셔야 합니다...^^
  • Fedaykin 2012/07/18 00:19 #

    에구, 아닙니다. 제가 궁금했던 점을 제대로 알려주셨네요. 대한민국 초대 헌법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게 참 재미있습니다. 이걸 계기로 헌법사(?)도 제대로 공부해보면 재미있을것 같네요.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7/18 01:23 #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현재 헌법도 대통령제이지만 내각제 요소가 약간은 들어가 있다고 들은바가 있던터라 말입니다.
  • 초록불 2012/07/18 01:26 #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들이 좀 있더라고요.
  • 빼뽀네 2012/07/18 10:08 #

    7월 12일 국회 통과이고, 7월 17일 국회 공표이면 대한민국 초대 헌법이 실질적으로 만들어진 날은 7월 12일로 봐도 될까요?
  • 초록불 2012/07/18 10:42 #

    미시적으로야 그렇겠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빼뽀네 2012/07/18 10:57 #

    네, 누군가가 물어봐서 확실히 하고 싶었습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07/18 11:34 #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흐음~잘 봤습니다. ^^
  • 초록불 2012/07/18 21:43 #

    모든 일에는 비하인드가 있어서, 역사가 재미있는 학문이 되는 것 같습니다...^^
  • 2012/07/18 20: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18 21: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셔먼 2012/07/18 23:17 #

    이승만 한 사람의 노새고집 때문에 내각제 될뻔한 게 대통령제로 순식간에 전환되었군요.;
  • 초록불 2012/07/18 23:59 #

    내각제는 2공화국 때 잠깐 실현되었는데, 그때 국회는 양원제였으니 유진오 안이 실현된 셈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 휴머니스트 2012/07/19 00:18 #

    유진오의 헌법 초안에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는데, 국회에서 공산주의적인 단어라고 반발하자, 유진오가 '국민'으로 바꾸면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도 있더라고요.
    '이 좋은 단어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뺏겼다'고 말이죠.

    북한의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어서 그런지, 그 후 '인민'이라는 단어는 쉽게 쓸 수 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단어로 '동무'가 있습니다.
    '동무'는 '길동무', '소꿉동무' 등 조상들이 예로부터 쓰던 단어였는데, 이 단어도 한자어인 '친구'에게 밀려버리고 말았죠.

    아름다운 우리말들을 잃어버려서 그런지, 좀 안타깝습니다.
  • 초록불 2012/07/19 00:25 #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깨동무, 새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라고 노래를 부르며 하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동무"라는 말이 간간히 쓰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사장되어서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담쟁이덩굴 2012/07/20 13:50 #

    인민 이외에도 유진오희 헌법 초안에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등장합니다.
  • 담쟁이덩굴 2012/07/20 14:00 #

    제헌헌법중에 특징적인 것은 기업에 있어서 근로자에 대한 이익분배균점권입니다. 물론 이후의 헌법에서는 보이지 않는 조항이지요.

    양원제가 헌법에 등장하는 것은 1952년의 발췌개헌부터입니다. 하지만 전시라 실제로는 운용을 하지 못했고 이 때는 오히려 이승만의 재집권을 위하여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개정하는것에 더 초점이 맞춰있었습니다.

    헌법이 개정된지 벌써 20년을 넘어 30년을 향해가고 있군요.
  • 초록불 2012/07/20 15:00 #

    처음 말씀하신 부분에 뒷이야기가 있더군요.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소개하지는 못했습니다...(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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