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방학 *..역........사..*



오늘은 초복입니다. (초복 안에 포스팅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숙종실록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숙종 11권, 7년(1681 신유 / 청 강희(康熙) 20년) 5월 28일(경진) 1번째기사
초복에서 처서까지의 시사의 방편에 관한 부교리 오도일의 상소


이날이 곧 초복(初伏)이었다. 이날부터 처서(處暑)까지는 시사(視事)를 정지하는 것이 전례(前例)인데, 부교리(副校理) 오도일(吳道一)이 상소(上疏)하기를,
“학문(學問)에 전념하는 일은 하루가 급하니, 상규(常規)를 벗어나서 때로 법강(法講)을 여는 것은 진실로 불가(不可)함이 없습니다. 또 만기(萬機)의 여가에 자주 소대(召對)를 내리시되, 혹 편복(便服)으로 맞아들여 보시거나, 혹 와내(臥內)에서 맞아들여 보신다면, 절선(節宣)하고 보양(保養)하시는 방도에 또한 보탬이 되는 바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전부터 여름철 강독(講讀)을 정지할 때에는 으레 소대(召對)를 내렸던 일이 있었으니, 마땅히 기력(氣力)를 헤아려 소대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한국어인지, 뭔지 어려운 말이 많군요. 문제는 "시사를 정지"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해당 구절에는 이런 주석이 달려있습니다.

시사(視事) : 임금이 정사를 행하는 것.

시사를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한 것 같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이런 뜻은 아닙니다. 저 말대로라면 임금이 초복에서 처서까지 40여일을 정사를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조선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큰 일입니다. 왕이 이렇게 장기간 휴가를 가버리면 나라는 누가 다스리나요? 그런고로 당연히 이 상소가 있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숙종은 정사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상소를 받고, 온갖 결정을 내리고 있죠.

그럼 뭘 정지한다는 말일까요? 사실 뒷부분의 이야기만 잘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도일의 말을 쉽게 풀면 이렇게 됩니다.

“학문에 전념하는 일은 하루가 급하니,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나 강의를 듣는 것도 괜찮습니다. 또 업무 중 여가에 신하를 불러서 강의를 듣되, 편한 복장으로 하시거나 침실에서 들으시면 계절에 맞춰 몸을 다스리고 보호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즉, 휴가라면 휴가인데 공부하는 것만 휴가인 즉, 방학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저 오도일 부교리의 이야기는...
여름방학 대특강을 받으시라는 이야기였죠!



크흑, 불쌍한 조선의 국왕이여!

심지어 오도일은 열흘 후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습니다.

숙종 11권, 7년(1681 신유 / 청 강희(康熙) 20년) 6월 11일(임진) 1번째기사
대사헌 홍만용 등이 청대하여 조경의 출향과 처서 전의 시사 정지에 관해 아뢰다


오도일(吳道一)이 말하기를,
“처서(處暑) 전에는 시사(視事)를 탈품(頉稟)하도록 하셨는데, 비록 이것이 구례(舊例)라고는 하나, 시강(侍講)을 한결같이 정폐(停廢)함은 진실로 미안(未安)합니다. 인조(仁祖)께서는 학문(學問)은 중간에 단절(斷絶)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며 강독(講讀)을 정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재변(災變)이 겹쳐서 나타나므로, 반드시 항상 서책(書冊)을 대하시며 다른 생각이 없으신 후에야 수성(修省)하는 실효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조까지 들먹이며 공부하라고 압박을 가하니, 숙종이 어쩌겠어요.

임금이 말하기를,
“더위가 몹시 심해서 기력(氣力)이 평일(平日)같지 않기 때문에 우선 강독(講讀)을 정지한 것이다. 그대들이 이와 같이 누누이 말하니, 마땅히 더욱 체념(體念)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어쩐지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것 같죠? (체념은 깊이 생각하겠다는 말이지만, 요즘 쓰이는대로 포기했다...로 들립니다...^^;;)

그러니까 왕은 방학 따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거죠.

아무튼 지금의 초중고교 여름방학과 비슷한 방학이 원칙적으로 있었다...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초복"이란 것도 블로거에게는 그냥 이야기거리였다는... (야, 초복 안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덧글

  • Crescent Moon 2012/07/19 00:13 #

    왠지 고3인 제상황이랑 ...................ㅠㅠ

    방학중에 시험하나있는데 시험끝나고

    이틀후 개학 다음날 중간고사 중간고사 끝나고

    25일날 또시험 컥! 2주후 기말 왠지 너무 슬픕니다...
  • 초록불 2012/07/19 13:16 #

    왕보다 힘든 우리나라 고3... ㅠ.ㅠ
  • 까마귀옹 2012/07/19 00:35 #

    조선의 왕에겐 주말, 공휴일, 방학, 휴가, 명절 휴무, 주말 수당(??) 등등은 머나먼 나라 이야기이겠군요.(물론 여기에 야근 및 특근은 당연히...) 물론 '나도 사람인데 좀 쉬어야지!' 이럴 순 있겠지만 그러면 바로 삼사에서 '아니되옵니다 전하!' 합창일테니까요...어째 현대의 한국 노동자들(...)보다 더 불쌍해 보입니다. ㅡㅡ;;
  • 초록불 2012/07/19 13:16 #

    왕의 하루를 재현해보고 싶은 생각이...^^
  • 오시라요 2012/07/19 01:26 #

    조선은 무려 왕밀레(요즘말로 공밀레라고 하던가요?) 하는 무서운 전통이 있었군요.
  • 초록불 2012/07/19 13:17 #

    왕밀레....^^
  • 다루루 2012/07/19 01:35 #

    사악한 신하들 같으니...
  • 초록불 2012/07/19 13:17 #

    노는 꼴을 볼 수 없사옵니다, 전하!
  • 아르핀 2012/07/19 03:24 #

    직접 말로 안했다 뿐이지
    "넌 그저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는 기계일뿐이지!"
    로 들립니다.
  • 초록불 2012/07/19 13:17 #

    조강, 주강, 석강, 야강이 기다리고 있는 임금.
  • Allenait 2012/07/19 11:25 #

    ..왕 하기 힘들군요(...)
  • 초록불 2012/07/19 13:18 #

    조선 시대 왕의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 천하귀남 2012/07/19 12:58 #

    태블릿 하나 들고(?) 창덕궁 후원 옥류천에 발담그고 특강들으면 어떨까 합니다. ^^;
  • 초록불 2012/07/19 13:18 #

    오오...^^
  • 놀자판대장 2012/07/19 19:03 #

    학자형 군주의 비극
  • 초록불 2012/07/20 10:43 #

    아니, 숙종이라면 딱히 학자형은 아니지만...
  • zerose 2012/07/19 19:04 #

    신하:전하는 이미 공부하고 계시옵니다.
  • 초록불 2012/07/20 10:43 #

    ㅠ.ㅠ
  • 암호 2012/08/01 14:48 #

    어느 고증을 안드로메다로 날렸으면서 은근히 역덕후들을 부르는 일요웹툰이 엄청 화제라는 이유를 실감합니다.
  • 초록불 2012/08/02 08:15 #

    일요웹툰이 뭔가요...
  • 암호 2012/08/24 21:51 #

    늦게서야 보고 댓글 올립니다.ㅠㅠ 일요일에 연재되는 웹툰인데, 네이버에 호랭총각이 그러한 점을 잘 짚어내지요. 그리고, 또 요즘에는 화요 웹툰 타임인 조선에서도 그 점이 직설적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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