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민족대표 가입과 기타 등등 *..역........사..*



1919년 1월경에는 여러 군데서 독립운동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1918년 11월경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 선언에 따른 고무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열혈청년들은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죠.

천도교 측에서는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최린이 독립선언을 생각하고 있었고 기독교계에서도 이승훈, 양전백과 정춘수, 오화영, 신석구, 학생 층에서는 박희도를 중심으로 불교계에서는 한용운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천도교였습니다. 손병희는 권동진, 오세창에게 천도교 인사들을 규합하게 하고 최린에게는 외부 세력과 연계를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최린은 최남선, 송진우, 현상윤 등과 상의하여 김윤식, 윤용구, 한규설 등에게 참여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절 당했고, 손병희 역시 박영효와 송병준에게 의사를 타진했으나 박영효는 묵묵부답, 송병준은 되도록이면 하지말라는 답을 보내왔습니다.

이때 최남선은 기독교계에서 신망이 높은 이승훈에게 연락을 취하고 이승훈은 즉각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최남선은 만나지 못하고 송진우를 만나 사정을 듣고 동참을 결의합니다.

이승훈은 이후, 양전백, 김병조, 이명룡, 이갑성, 신홍식, 길선주, 박희도를 참여케하였으며,

양전백은 유여대를,

박희도는 박동완, 김창준, 최성모, 정춘수를,

여기서 최성모는 이필주를,

그리고 정춘수는 오화영을,

오화영은 신석구를 참여시킵니다.

권동진과 오세창은 홍병기, 양한묵, 나용환, 나인협, 임예환, 홍병기, 홍기조, 이종일을 참여시키고

오세창의 권유로 김완규, 이종훈이 참여합니다.

한용운은 최린과 친분이 있어서 자주 독립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에 따라 최린이 계획을 알려주어 참여하게 됩니다. 한용운은 해인사 승려인 백용성에게 이야기를 해서 백용성도 동참하게 됩니다.

손병희는 권용덕을 참여시켜서 33인이 모두 확정됩니다. (주의! 이 순서가 가입 순서는 아닙니다!!!)





이종일은 보성사 대표로 독립선언서 인쇄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2만 1천매가 인쇄되어서 전국에 뿌려졌는데, 이갑성과 김창준이 서울 배포 책임을(김창준은 평북 선천으로 300매를 보내는 일도 했습니다), 한용운은 불교계 학교 중앙학림 학생들을 통해서 배포했고,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는 인종익(보성사 간부, 천도교인)이, 강원도, 함경남북도는 안상덕(천도교인), 황해도는 김상열과 이경섭(천도교인)이 배포했습니다. 이갑성은 1천5백 매를 강기덕(보성전문학생)에게 보내 뿌리게 했고, 4백장은 이용상(세브란스 학생)에게 주어 대구와 마산에 전달하게 했습니다.

천도교인 임규는 독립선언문과 통고문을 일본정부와 의회에 보내는 임무를 맡았고(임규는 임무 수행 후 체포되어서 1년7개월간 옥고를 겪고 무죄석방되었습니다), 기독교인 안세환(평양 기독서원 총무)도 같은 임무를 맡고 3월 1일 도쿄에 도착했으나 3월 5일 체포되었습니다. 기독교인 현순은 해외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받고 상해로 건너갔습니다. 여기서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었던 김병조와 함께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됩니다.

3.1운동은 직접적으로는 1월 20일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최린의 모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월 10일경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기 시작해서 2월 18일 완성되고, 2월 21일 기독교계가 천도교와 손을 잡기로 결정하고, 민족대표 구성이 26일날 완료되었고, 27일에야 독립선언서가 인쇄되고, 28일날 전체 회동을 가졌습니다. 2월이라 28일이 말일이죠. 이 자리에서 처음 계획과 달리 파고다공원이 아니라 명월관으로, 시간도 12시에서 2시로 변경되었습니다.

파고다 공원에 모여있던 군중은 2시가 되었을 때야 경신중학교 졸업생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읽고 만세가 터져나왔으며, 이순간 한용운이 우리도 만세를 외치자고 하였습니다. 만세를 부르던 중 일경이 와서 전원 체포되었죠.

체포되리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고, 민족대표 신석구는 재판석에서 이상재, 함태영이 폭동 지도를 위해 서명하지 않은 것이냐는 판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구속되는 때는 이상재가 우리를 위하여 진력하겠다고 했고 우리가 석방 될 때는 독립이 성취된 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민족대표들의 형량이 지금 생각에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것은 일제가 유화정책으로 돌아서기로 결정한 탓이 크다고 하는군요. 3월 1일 체포되어 판결이 나온 것은 10월 30일. 그 사이인 5월 26일 양한묵은 옥중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늘상 이야기하지만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하여 친일행위를 한 사람은 박희도, 최린, 정춘수의 3인 뿐입니다. 자꾸 깎아내리고 싶어서 온갖 날조를 다해서 열성을 기울이는 글들을 보게 되니 참...-_-;;



민족대표에 대해서 좀 더 알고싶은 경우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민족대표 48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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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unkbear 2012/07/22 21:56 #

    결론 : 독립운동도 인맥 없이는 못한다.
  • 초록불 2012/07/22 23:01 #

    헉.. 그런 결론이...
  • young026 2012/07/23 22:48 #

    점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맥이죠.^^;
  • 아자토스 2012/07/24 12:51 #

    무서운 결론이네요. 쿨럭.
    하지만 뭐든 인맥이 중요하니.
  • 까마귀옹 2012/07/22 22:24 #

    궁금한게 민족대표 33인이 거의 모두 변절했다는 루머는 무슨 이유로 등장한 것일까요? 보통 유사역사학 부류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데 거기에 담긴 의도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든 생각으로는 문정창이나 이유립 등의 친일 행각을 덮기 위한 역공 같기도 한데......
  • 초록불 2012/07/22 23:06 #

    이 문제는 유사역사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3.1운동의 실패에 대한 실망감이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의 책임이 크다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민족대표의 온건투쟁론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그 다음에 강경투쟁파였던 한용운이 부각되면서 다른 대표들은 별 볼일 없고 온건한 투쟁을 한 민족대표는 일본에 유화적인 인물들이었을 것이라는 비약이 일어나면서 민족대표가 사실은 친일파라는 식의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이 아닐까 합니다.
  • Allenait 2012/07/22 23:04 #

    결국은 인맥이었군요..(...)
  • 초록불 2012/07/22 23:07 #

    아니, 인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천도교나 기독교는 원래 종교 조직으로 자기 종교의 지도자들이 서로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죠.

    그러니까 원래 종교계였군요...라는 말이 맞는 셈입니다...
  • 셔먼 2012/07/23 00:48 #

    역시 천도교와 기독교 양대 세력이 33인의 큰 축으로 자리하고 있었군요.
  • 零丁洋 2012/07/23 12:10 #

    그래도 3.1운동은 대단하죠. 아름아름 인맥으로 모였든, 일부가 변절했든 엘리트가 아닌 일반 시민이 독립을 왜치며 궐기했다는 것은 당시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가 없던 일이죠. 그저 정치란 설령 국가가 멸망해도 그건 귀족이나 양반들의 일이지 국민의 일은 아니라고 본 거죠. 비서방 국가 대부분이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패했는데 대한민국이 최초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것에 연유한 것 같군요.
  • 행인1 2012/07/23 12:30 #

    그나저나 '박영효'나 '송병준'같은 대감님, 아니 화족분들은 왜 끌여들이려 했는지...
  • 초록불 2012/07/23 23:57 #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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