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특집 - 개고기 *..역........사..*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것은 오래된 풍속이죠.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 먹는 것을 가장家獐이라고 씁니다. 장獐은 노루를 가리키는 한자인데 개고기에 이 글자를 썼다니 재미있군요.

중종 때 이팽수李彭壽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승정원 주서 벼슬에 올랐습니다. 주서는 정7품 벼슬로 승정원 일기 기록 담당이었습니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임명이 된 것이 아니라 정유삼흉丁酉三凶이라 불리는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멋대로 천거해서 올라간 것입니다. 이팽수는 김안로와 한마을에 살았고, 그 아버지가 김안로 집안의 가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안로는 이팽수를 자기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이팽수는 봉상시참봉(종9품)이었는데 항상 김안로에게 살찐 큰 개를 잡아 견적犬炙[개고기 구이]을 만들어 바쳐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런 아부 끝에 요직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개고기 주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자, 일단 이런 전례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팽수가 봉상시참봉으로 있을 때 봉상시 주부(종6품)는 진복창陳復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진복창은 이팽수의 승진을 흉내내어 개고기를 구워 바쳤습니다.

진복창의 모친은 본래 말거간꾼 유수변에게 시집을 갔는데, 7개월만에 진복창을 낳아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니까 진복창이 칠삭동이라는 말이 아니라, 부정한 출생을 가졌다, 라고 해석하는 거죠.

그래서 진복창의 모친은 역관 박원지에게 개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녹사 벼슬을 하는 진의손에게 개가한 탓에 진복창의 성도 '진'씨가 된 것입니다. 이 아줌마의 남편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 셋이고 실제로는 더 많았다고 하는군요.

진복창은 이런 복잡한 내력으로 인해 본래 과거를 볼 수 없는 몸이었으나 모친의 첫남편이었던 유수변 가문을 사칭해서 과거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과거 시험에서 당당 장원급제! 곧바로 성균관적적成均館典籍(정6품)에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뭔 일이 있었는지, 한 등급 강등되어 봉상시주부로 밀려나버렸군요. 어쩌면 신분 문제가 불거진 탓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견적을 만들어 김안로에게 아부를 그리떨었을지도...

진복창은 자신의 견적 맛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기한테 최고면 뭐하나요? 먹는 사람 입맛에 최고여야지.

김안로는 진복창의 견적이 이팽수보다 떨어진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진복창은 낙담하지만 아부의 방향을 바꿔 구수담(具壽聃, 1500~1550)에게 노비처럼 아부를 한 끝에 사헌부지평(정5품)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구수담에게도 개고기를 바쳤을라나요...)

그리고 윤원형 밑에서 승승장구해서 대사헌, 공조참판까지 지냈으나 스승격인 구수담마저 역적으로 몰아 사사케했고, 눈밖에 나면 어린아이까지 모두 죽여버려서 '독사'라 불린 끝에 결국 윤원형한테 버림 받고 삼수갑산이라 불리는 바로 그 삼수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위리안치형(가시덤불로 집을 가려버리는 것으로 유배형 중 최고형이죠.)에 처해지고 결국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들도 과거가 취소되었습니다.

위리안치형이 되면 음식도 주는 것만 받아먹게 되는데, 천하제일을 자랑하던 견적을 다시는 만들어보지 못했겠네요.

[추가]
무경님의 댓글을 보고 살펴보니, 율곡 이이가 일곱살 때 지은 <진복창전>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율곡은 어려서 파주에 살았고 파주는 진복창의 고향인 풍덕(개풍군)과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율곡은 이런 평가를 내렸다죠.

내가 진복창의 사람됨을 보니, 속으로는 남몰래 안절부절 못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고 너그러운 체한다. 이런 사람이 뜻을 얻어 권세를 쥐게 된다면 그때의 닥칠 재난이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아참, 진복창보다 개고기를 잘 구웠던 이팽수도...

김안로가 몰락하자 바로 삭탈관직되고 다시는 도성에 들어올 수 없도록 문외출송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덧글

  • 해색주 2012/07/28 23:41 #

    근데 조선시대에서 독하게 해서(아부던 일이던) 출세한 사람들의 말로는 대부분 안좋습니다. 아무래도 출세에만 급급하고 정작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승진이라는게 아무래도, 무능함이 나올때까지 되는 것이라서 말이죠.
  • 초록불 2012/07/29 00:10 #

    생각해보면, 진복창은 신분의 불리함 때문에 권력에 아부하는 길을 택한 것 같습니다. 당대의 명문장가이기도 했다고 하니 그 재주가 아까울 뿐이죠.
  • 검투사 2012/07/29 08:49 #

    소통 현철의 비리 사태와 더불어 IMF 사태까지 몰고 와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갑을 반토막냈던(그리고 그때 그 강만수는 김대중 정권에 의해 무죄 선고 받은 뒤 10년 뒤에 온 국민의 펀드를 반토막) "대한민국 민주화 인사(현재는 자칭)" 김영삼에 대해 "오직 대통령이 되는 것만 생각했을 뿐, 대통령이 된 뒤 뭘 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던 분"이라는 어느 주변 사람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 무경 2012/07/28 23:47 #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진복창이 율곡 이이가 7살때 글로 디스했다는(...) 그 진복창일까요?
  • 초록불 2012/07/29 00:17 #

    맞습니다. 댓글 보고 찾아보니 그렇군요. 율곡이 어렸을 때 파주에 살았으니 진복창의 고향인 풍덕(개풍군)과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겁니다.

    내용 추가해서 올렸습니다...^^
  • 무경 2012/07/29 00:52 #

    고압습니다, 직접 알아봐 주셔서!
    그나저나 7살에 저런 디스를 하는 율곡 이이도 참... 독사라 불릴 정도였다면 상당히 지독했을 진복창이 이이를 안 건드린 게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그냥 애가 잔망스럽다 여기고 놔둔 것일까 싶기도 합니다...
  • 초록불 2012/07/29 00:58 #

    당시에는 몰랐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피그말리온 2012/07/28 23:48 #

    원래 공부 잘하는 사람이 뭐도 잘한다고, 과거에서 장원을 먹을 정도의 사람이니 요리도 잘했나 보군요. 직접 만들었다는 보장은 없지만;;.
  • 초록불 2012/07/29 00:12 #

    어머니가 개가를 자주 할 수 있었던 것은 미모가 뛰어났거나, 음식 솜씨가 뛰어나였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요리 실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먼산)
  • 셔먼 2012/07/29 02:21 #

    역시 앞뒤 안 가리고 아부만 하며 출세한 위인들은 그 결말이 좋지 않았군요.
  • 초록불 2012/07/29 07:59 #

    하지만 잘 먹고 잘 살다가 간 인간들도 적진 않을 겁니다...
  • 다루루 2012/07/29 03:43 #

    이런 사연이 있어 개고기는 아부의 상징이니 개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흠, 글자 그대로 개소리네요 써놓고 보니까.
  • 초록불 2012/07/29 07:59 #

    아이쿠...
  • 술못받는현섭이 2012/07/29 07:49 #

    안녕하세요. 초록불님... 0(_-_)0...
    명망높은 우리 역사 학계의 밝은 등불 초록불님께 인사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2013년에 쓰셨던(ㅡㅡ;;) 명작, 환단고기의 허구성을 지적해주신 글을 비롯해서 좋은 글들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오늘도 재미난 옛날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요, 저거 '진복창전' 진짜 율곡선생이 7살!! 때 지은 글 맞나요??
    천재인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7살때 저런 멋들어진 평전 썼단말인가요??!!
    17살때 쓴 글을 오타내신게 아니구요?? 본문을 봐도 댓글을 다시 봐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초록불 2012/07/29 08:00 #

    과찬이시고요.

    일곱 살 때 쓴 글이 맞습니다. 달래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란 거죠...^^
  • 검투사 2012/07/29 08:45 #

    저 이야기 접할 때마다 "아아, 개고기 구이를 하는 곳은 없나?" 검색해보게 되더군요.
    그건 그렇고 주변에 개고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이상은 되어야 함께 그 비싼 수육이라도 뜯어볼텐데 말이죠. -ㅅ-

    ps. 그러고 보니 군 복무 시절에 부대 주변에 개고기집이 여럿 있었고, 그중 제 직속 상관인 통신반장을 비롯한 부사관들이 주로 회식을 하던 가게가 있었죠.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싶어서 외박나왔을 때 후다닥 달려가서 먹었는데, 개고기 전골 국물 남은 거에 밥을 볶아주던 거 빼면... 특이한 건 없어서 실망했죠.
  • 초록불 2012/07/29 09:06 #

    제 주변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영 취향이 안 되어서 먹지 않습니다.
  • 위장효과 2012/07/29 08:59 #

    어제가 중복이었군요. (초복 무렵 닭, 개, 민물고기 가리지 않고 포식해서 영...땡기지 않는다는)

    괜히 구도장원에 조선 유학을 완성한 천재가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허균도 요리에는 관심이 많았서 음식에 대한 책도 남겼고, 송대의 대문장가 소동파도 주방에서 직접 요리하는 걸 즐겼다고 하니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 초록불 2012/07/29 09:07 #

    허균의 식탐은 유명하죠. 소동파는 오늘날 동파육이라는 유산을 남겨주기까지...^^
  • 파랑나리 2012/07/29 20:34 #

    뛰어난 문학가가 뛰어난 요리사거나 미식가이기도 한 까닭은 아마 감각과 심상이 문학에서 중요하기 때문이겠죠.
  • 지크프리드 2012/07/29 17:19 #

    근데 전 어릴때부터 개고기는 죽도록 싫어해서... 어릴땐 아주 학을 뗐죠. 지금도 싫어하는데.. 어쨌든 그 노린내를 절대 잊을수가 없어요.
  • 초록불 2012/07/29 17:33 #

    저도 먹지 않습니다.
  • 루드라 2012/07/29 17:39 #

    근데 일곱살짜리가 다른 내용도 아니고 남을 비평하는 글을 지었다니 솔직히 천재라는 생각보다 뭐 이런 건방진 꼬마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군요.
  • 초록불 2012/07/29 18:13 #

    천재는 좀 건방져도 됩니다...^^
  • 파랑나리 2012/07/29 20:35 #

    요새는 개장국만 먹는데 옛날에는 개로 다양한 요리를 즐겼네요.(중국보다 견주면 누가 이길까요?) 개고기통구이가 어떤 맛인지 궁금합니다. 개고기의 노린내만 없애면 될텐데.
  • 초록불 2012/07/29 20:42 #

    재미있는 것은 청나라 때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파랑나리 2012/07/30 17:54 #

    그건 특이하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초록불 2012/07/30 20:48 #

    청태조의 무슨 전설과 관련이 있다든가 그렇죠...
  • 누군가의친구 2012/07/30 23:22 #

    개의 원한에 눌려 그게 업보가 되어 몰락한겁니다.(틀려.)
  • 진군 2012/11/05 14:19 #

    안녕하세요, 초록불님의 글은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링크가 걸려있어서 종종 읽었습니다.
    역사를 기술하시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알기 쉽게 풀어내주시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 본관이 여양진씨인데다 양곡공(진복창선생의 호 양곡을 높여부르는 말)도 거슬러 올라가면
    저희 집안의 일족으로 족보에 올라와 있는지라 함부로 이름을 낮춰부를 수도 없어서
    명문장가였다는 재능을 묻어버릴 정도로 시대에 악명을 떨친 양곡공의 기사를 보면
    기분이 좀 묘합니다. 물론 과오가 있는 인물이면 당연히 안좋은 평가를 받는 게 순리지요.

    시대가 지났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저도 여양진씨의 후손이면서 양곡공을 쫓아낸
    서원부원군 윤원형의 후손인 파평윤씨 일가의 아가씨와 사귀고 있다는 게
    역사의 무상함이 아닐런지하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12/11/05 14:30 #

    반갑습니다...^^;;

    저는 경주이씨로 찾아보면 이 가문에도 악명을 떨친 양반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김종서를 죽인 양반이 우리 직계 선조군요...^^;;

    저는 김종서를 무척 존경하는데, 이런 것도 역사의 무상함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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