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가 9 *..역........사..*



15. 고려 : 실록편수자들 (2)

먼저 고려실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충렬왕 33년(1307) 11월에 원나라에 실록 185책을 바친 일이 있다. 나라의 실록은 왕도 열람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것을 외국으로 반출한 것이다. 당대에도 이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말리지는 못했다. 덕분에 때로는 중국 땅 어디선가 고려 실록이 발견되는 일이 없을까 하는 망상을 하게 된다. 아깝다.

고려 실록은 이후에도 꾸준히 편찬되었다. 고종과 원종의 실록이 충선, 충혜왕에 걸쳐서 만들어졌고 충숙왕 1년(1314)에 민지와 권부權溥에게 역대 실록을 약찬略撰(요약)하게 했다. 민지의 이 작업에 대해서는 6편에서 서술한 바 있다.

권부(1262 ~ 1346)는 안향의 제자로 충렬왕 5년(1279)에 열여덟의 나이로 급제하고 충렬·충선·충숙·충혜·충목의 다섯 왕을 섬기며 85세로 장수했다. 어지러웠던 고려 정국에 따라 국정을 맡는 일도 감당했지만, 그 와중에 축재를 했다는 뒷말도 남겼다. 안향의 제자라는 데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자학의 전파에 큰 공을 세웠다. (권부는 권보라고도 읽는 모양)

민지와 권부가 만든 [편년강목]은 너무 간략해서 보강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충목왕 때 이런 지시가 떨어졌다.

충목왕2년(1346) 10월 경신(庚申)에 교(敎)하기를,
“태조(太祖)께서 개국(開國)하신 지 429년인 지금에 그 동안 전장문물(典章文物)과 가언선행(嘉言善行)이 비장(秘藏)되어 전해지지 않으면 무엇으로써 후세(後世)에 보이리오. 그러므로 우리 충선왕(忠宣王)께서 신(臣) 민지(閔漬)에게 명령하여 편년강목(編年綱目)을 편수(編修)케 하였으나 오히려 궐루(闕漏)가 많으니 마땅히 찬술(簒術)을 더하여 중외(中外)에 반포(頒布)할 것이다.”
하고 이에 부원군(府院君) 이제현(李齊賢) 찬성사(贊成事) 안축(安軸) 한산군(韓山君) 이곡(李穀) 안산군(安山君) 안진(安震) 제학(提學) 이인복(李仁復)에게 명령하에 찬진(撰進)케 하고 또 명령하여 충렬(忠烈) 충선(忠宣) 충숙(忠肅) 3조(朝)의 실록(實錄)을 찬수(撰修)케 하였다.


이제현은 따로 항목을 두고 기술해야 할 테니, 일단 제쳐놓고 안축부터 살펴보자.

안축(1282 ~ 1348)은 경기체가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의 지은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선 뒤에 원나라 과거에도 급제하여 관직도 제수되었지만 복무는 하지 않았다. 아버지 때까지는 지방 향리였는데 과거를 통해 중앙정계에 진출한 '신흥사대부'에 속한다.

이곡(1298 ~ 1351)은 본인보다 그의 아들 이색이 더 유명하다. 하지만 이곡도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정동행성에서 실시한 과거에 급제해서 원나라 벼슬을 하며, 동녀 징발을 금해달라 상소하기도 했다. 문장이 워낙 뛰어나서 원나라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국어 시험 때 골치 아프게 하는 가전체 소설 [죽부인전]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안진(? ~ 1360)은 원나라에서 과거를 했다. 공민왕이 즉위한 뒤 조일신 일파에 붙었는데, 뒷날 조일신이 제거되었을 때 처벌로 곤장을 맞을 뻔 했다. 이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구리를 바쳐 대속케 해서 곤장을 면할 수 있었다. 조일신은 기황후의 동생들을 처단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거된 인물이다. 조일신을 제거한 인물이 바로 다음에 소개할 이인복이다.

이인복(1308∼1374) 우왕 때 권신인 이인임의 형이다. 조일신이 반란을 일으키자 공민왕을 만나 조일신의 제거를 상소하고 공민왕은 그에 따라 결단을 내려 무신 김첨수와 최영 등에게 명을 내려 조일신을 처단했다. 이인복은 성품이 강직해서 불의를 보면 노기가 얼굴에 자연히 떠올랐지만 함부로 입밖으로 발설하지는 않았다 한다. 1357년에 [고금록古今錄]을 편찬하기도 했는데, [고금록]은 고려 때 모두 세 번 편찬된 책으로 8편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여기서 실록에 대한 에피소드 또 하나.

공민왕 11년(1362)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사고史庫가 파괴되는 사건이 있었다. 실록이 흩어져 땅바닥에 뒹굴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이유로, 어느 집안에서 이걸 좀 챙겨서 보관해 놓은 일이 없는지가... (그럴 리가 없잖아!)

실록편찬 기록은 우왕 때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이때 임견미林堅味, 이성림李成林이 실록편수 책임을 맡았다.

임견미(? ~ 1388)는 본래 다루가치에 속해 있다가 관직으로 나와 중랑장이 되었다.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을 호송하여 승진하고 동녕부 탈환 때는 이성계와 같이 싸웠다. 이인임과 더불어 전횡을 일삼다가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처단되었다.

이성림(? ∼1391)은 우왕의 장인으로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의 지위에 있었다. 조준과 이성계의 전지 개혁에 반대했다가 귀양 가서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죽었다.

실록의 편찬자들은 엄밀히 말해서 역사가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의 자료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염두에 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고려 실록은 실물이 남지 않아 사관들, 혹은 편찬자들의 사고를 되짚어보는 작업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다.

덧글

  • 까마귀옹 2012/08/18 18:19 #

    고려사/고려사절요라는 물건이 남아 있어서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지만, 삼국시대의 역사서 만큼이나 아까운 게 고려 실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 왕조 스스로 바라본 고려의 역사가 어떤것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말이죠. '고려사/고려사절요는 조선 건국세력에게 왜곡되어서 사료적 가치가 없다!'는 뻘소리조차 나오는 실정이니까요. (요즘엔 여기에 페미니즘 드립까지 섞여 들어가고 있죠. 천추태후가 남성 역사가에게 희생당한 분운의 여인 어쩌고 하는게 그 예.)
  • 초록불 2012/08/19 17:06 #

    천추태후... (한숨)
  • 파랑나리 2012/08/18 19:35 #

    왜 몽골은 고려실록을 뺏었어요?
  • 초록불 2012/08/19 17:06 #

    강제로 뺏었는지 알아서 바쳤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고려사 기록을 보면 그냥 바쳤다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 파랑나리 2012/08/20 01:46 #

    몽골로 간 고려실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초록불 2012/08/20 08:51 #

    모르죠...
  • 누군가의친구 2012/08/19 05:52 #

    그러고보니 이인복은 동생과는 딴판이었죠.
  • 초록불 2012/08/19 17:07 #

    이인임이 본격 난리치기 전에 죽어서 다행...
  • 역사관심 2012/08/19 14:21 #

    공민왕때 홍건적이 실록을 가져갔을 가능성은;; 제발..
  • 초록불 2012/08/19 17:07 #

    어디서 쪼가리라도 나와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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