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일연
일연(1206~1289)은 [삼국유사]의 지은이다.
지금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에서 김언필金彦弼과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 않은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압량면 삼성산三聖山 자락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산의 이름이 삼성산이 된 것은 여기서 원효, 설총, 일연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연은 밝은 해가 집안으로 들어와 배를 비추는 태몽을 가지고 있어서 아명이 견명見明이었다. 일연은 걸음걸이는 소와 같고 눈은 호랑이 같았다고 전해진다.
일연은 아홉살에 광주에 있는 무량사無量寺로 공부하러 간다. 일연은 선종 중 가지산파에 속하는데, 가지산파의 종찰 보림사가 인근에 있었다. 일연은 여기서 선종을 접하고 열네 살에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陳田寺로 가서 출가한다. 진전사도 가지산파에 속한다. 그리고 스물둘의 나이(1227년)에 승과 선불장에서 장원급제를 한다. 이 시험은 개성에 있는 광명사廣明寺에서 열렸다. 일연은 승과에 합격한 후 경북 달성군 비슬산(포산)의 보당암寶幢庵으로 갔다.
1235년 몽골의 제3차 침입으로 일연은 묘문암妙門庵과 무주암無主庵,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불법을 깨우쳐 득도하였다 하며, 1237년 삼중대사, 1246년에 선사로 임명되었다.
1249년에 경남 남해에 있는 정림사定林寺 주지가 된다. 이 절은 정안鄭晏이라는 고관이 자기 집을 내놓아 만든 뒤에 일연을 초빙해 주지로 삼은 것이다. 정안은 최항의 외숙부였는데, 최항이 권력을 승계받으면 자신이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불법에 의지하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소용없이 정안은 백령도로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
1256년, 51세에 [중편조동오위重編曺洞五位] 2권을 저술했다. 이 책은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1970년대 중반 민영규(1915~2005) 박사가 일본 교토대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일연의 저술인지 밝혀지지 않았던 것은 책의 저자명이 일연의 자 회연晦然이라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선종 중 조동종에 대한 책이다.
1259년 대선사가 되고, 1261년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에 들어갔다. 1264년 경북 포항의 오어사吾魚寺로 내려갔다. 오어사는 원효와 혜공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눈 뒤 "내 물고기다"라고 농을 한데서 절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 뒤 대구 인홍사仁弘寺 주지가 되었다.
1268년 경북 구미 운해사에서 대장경 축하행사인 대장낙성회가 열렸다. 고승 백 명을 초청하였는데 주맹(법회 책임자)이 바로 일연이었다. 이때 일연의 높은 견해에 모두 감탄했다고 한다.
1274년에 인홍사가 낡아서 다시 짓고자 조정에 주청하자 충렬왕이 인흥사仁興寺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1277년, 72세로 경북 청도 운문사雲門寺 주지가 된다. 다음해에 인흥사에서 [역대연표]가 간행되었는데, 이것이 [삼국유사]의 기초가 되었으리라 본다.
1281년, 76세로 일본원정 때문에 경주로 온 충렬왕의 행재소로 불려간다. 충렬왕은 일연에게 빠져서 개성 광명사 주지로 임명하고 1283년에는 국존(국사)에 임명했다.
1284년 군위에 있는 인각사로 내려간다. 어머니가 위중하다 하여 낙향을 청했었는데, 이 해에 어머니가 96세로 별세한 것. 즉 어머니 이씨는 열일곱의 나이에 일연을 낳았다는 것을 계산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시집은 최소 16세에 갔다는 것도...)
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가 쓰였다고 대개 말한다.
1289년 일연은 84세의 나이로 인각사에서 입적했다.
덧글
삼국유사 하니까 예전 중학교 국어시간에 향가 14수가 삼국유사에 실려있다고 배운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