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솔거 *..역........사..*



솔거는 신라 때 화가입니다.

[삼국사기] 열전에 따르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합니다. 집안이 한미하여 집안 내력은 전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황룡사의 소나무 그림입니다. 소나무를 얼마나 사실처럼 그렸는지,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등이 날아들었다가 부딪쳐서 떨어지곤 했답니다. 이런 놀라운 그림 때문에 그의 그림은 신화神畵라 불렸습니다.

솔거가 그린 그림으로는 이외에도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이 있습니다.

솔거는 통일신라시대 사람입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진흥왕 때 인물로 나오지만, 매우 후대의 기록이라 신빙성이 없습니다. 이수광이 솔거를 진흥왕 때 인물로 생각한 것은 황룡사가 진흥왕 때 창건(570년)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년)에 만들어졌고, 단속사는 8세기 중엽(이 절의 창건 유래는 748년, 763년의 두가지가 있습니다)이므로 8세기 이후의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1906년에 나온 대한제국 역사교과서 [대동역사략]에도 솔거가 진흥왕 때 인물로 나옵니다.

진흥왕 갑오 개국24년(574) 화공 솔거가 노송을 황룡사 벽에 그렸더니 참새가 종종 날아와서 부딪쳐 비틀거리며 떨어졌다.

역시 잘못된 추론에 기인한 이야기인 것이죠.

또한 [백률사중수기]에는 중국 화가 승요僧繇가 신라에 와서 솔거로 개명하였다고 나오는데, 승요는 장승요(용의 눈을 그려넣자 용이 승천했다는 화룡점정 고사의 주인공이죠)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건 [삼국유사]에 백률사의 관음보살상이 중국 명장[中國之神匠]이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파생된 것이겠지요. 장승요는 6세기 초에 태수 벼슬을 지냈고 백률사는 본래 그 이름이 자추사로 이차돈의 목이 날아가 떨어진 곳에 만들어져서 후일 이름을 백률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백률사중수기]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낸 [조선사찰자료]에 들어있는 것으로 아는데, 더 자세한 유래는 모르겠네요.

솔거에 대한 이야기 중 유명한 것은 솔거가 단군을 그렸다는 겁니다.
백련百蓮 지운영池運永(1852~1935), 국립부여박물관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진성당거사님의 핑백을 확인하세요.


위 그림 같은 것을 솔거가 그렸다고 어려서부터 배웠는데, 그 이야기의 출전은 권종상權鍾庠의 [동사유고東史遺稿]입니다. 권종상은 조선말기 학자라는 것밖에 찾지 못하겠네요. (어디선가 [동사유고]를 이익이 지었다고 쓴 글을 보았는데, 잘못 알고 쓴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신라 솔거는 농가의 자식으로 어려서 그림에 뜻을 두었다. 나무를 하러가면 칡뿌리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밭을 갈 때면 호미 끝으로 모래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궁벽한 시골이라 그림을 배울 스승이 없어 공부를 마칠 수 없었기에 매일 밤마다 천신에게 축원하여 신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노인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나는 신인神人 단군이다. 네 지성에 감동하여 신의 붓[神毫]를 주노라."

꿈에서 깨어나 황망한 가운데 깨달아 명공名工이 되었다. 솔거는 신의 은덕에 감명 받아 꿈에 본 것을 상상하여 단군의 어진을 그렸는데 거의 천 장이나 되었다.

고려의 이규보가 솔거가 그린 단군어진에 찬贊을 썼는데 "고개 밖 집집마다 모신 신조상神祖像, 절반은 명공에게서 나온 것이네"라고 하였다.


이규보가 저런 글을 썼다는 것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 이 이야기 역시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거는 분황사에 관음보살을 그렸다고 하는데, 분황사에 있는 천수관음에 대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경덕왕(742∼765) 때 희명希明이라는 여자의 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어, 분황사에 가서 아이에게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를 부르게 하였는데 그러자 눈을 떴다고 합니다. 이 천수관음상이 솔거가 그린 것이었을까요?

단속사의 창건 연대와 경덕왕의 재위 기간은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눈을 번쩍 뜬 아이는 솔거의 그림을 바라보았겠지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개안이었을지 모릅니다.

덧글

  • 셔먼 2012/08/25 17:59 #

    그렇다면 저 단군 초상화는 조작일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어쩐지 자작나무 타는 냄새가 나더니....
  • 초록불 2012/08/25 18:02 #

    단군 초상화의 유래와 전승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작이라고 하는 건 뭔가 사기친다는 뜻이 들어가는데, 블로그에 올린 초상화는 그냥 이미지로 가져온 것이라 저 그림을 두고 조작이라고 하면 뭔가 핀트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 셔먼 2012/08/25 18:14 #

    음, 제가 너무 앞서 생각했군요.;
  • 굔군 2012/08/25 22:27 #

    그 전에 과연 신라시대에 단군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까요? 저는 이것을 규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뭐, 어차피 저는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단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입장인지라...
  • 초록불 2012/08/25 23:01 #

    삼국시대에 고구려에는 평양을 선인의 땅이라고 하였으니, 평양 지역신으로 단군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졌을 수도 있겠지요. 이것들은 모두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것이고, 다른 자료가 발견되기 전에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 진성당거사 2012/08/26 13:16 #

    솔거가 통일신라시대 사람인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말씀하신 것이 맞는 걸텐데 말입니다. 담징과 호류사 금당벽화가 직접적 관련이 있을 수 없는 이유도 이런 식의 헷갈림 때문이겠지요.

    단군 영정으로 얘기할거 같으면 나중에 한번 포스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간단히 적자면.....

    일단 1920년 4월에 동아일보에서 단군영정 현상모집 사업을 했을때 "고래로 전해지는 것을 모사한 것도 무방"하다고 쓴 것을 보면 민간에서 전래되던 옛날의 단군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만, 현존하는 실물은 발견된 것이 없지요. 지금의 단군 영정은 대종교 측에서 해방 전후부터 모셔오던 것을 1976년에 표준단군영정으로 승인한 것인데, 이 그림의 연대와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종교 쪽에 따르면 1946년에 지성채라는 화가가 기존 총본사 봉안본을 모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훈모의 단군교가 세웠던 단군전에 해방 후까지도 걸려있던 그림은 이 그림의 이모본으로 추정됩니다.

    황의돈의 중등 조선역사 (1924?/1927?)에 실려있는 이른바 구월산 삼성사 소장 단군영정이라는 작품은 위에 올리신 작품을 포함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과는 세부에서 꽤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보다 이른 시기의 구한말 역사교과서들에 실려있는 단군영정 선화들과도 꽤 비슷한 것을 보면 아마 어떤 식으로든 민간에 보급되고 알려진 그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위 글에 이미지로 소개하신 문제의 그림은 사실 조금 출처가 애매모호해서요. 저 그림은 1987년에 해남에서 '발견'되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지요. 저걸 언론에 알린 사람이 다름아닌 박성수와 안호상이어서 저는 저 그림의 출처나 진위여부가 매우 미심쩍습니다.

    박성수 교수가 언론에 전한 말로는 이 그림이 다름아닌 구월산 삼성사의 것인데, 87년 당시 소장자의 당숙이 1930년대 휘문고 수학여행으로 구월산에 갔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아 황폐화된 삼성사에서 그대로 집어왔다는 겁니다. 일단 삼성사라는 곳이 1930년대까지 그렇게 폐허화되어 있었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당 자체는 1926년에 중건되었고 1934년과 1938년에도 제례를 올렸던 기록이 있습니다) 황의돈의 책에 실린 사진과도 모양이 완전히 판이하지요.

    이 그림에는 아무런 작자필이나 다른 어떤 식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87년 당시 서울대 안휘준 교수가 사진상으로 감정하기로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의 그림으로, 석지 채용신 류의 화법을 구사했다"라고 했는데, 박성수 교수가 언제쯤부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걸 지운영의 그림이라고 얘기하고서는 - 아마 나철이 지운영에게 단군영정을 모사하게 했다는 얘기 때문일텐데 (그나마 기록에 따라 그 화가도 지운영, 김은호, 안중식 등등으로 얘기가 엇갈립니다) - 아마 1992년인가에 부여 쪽의 대종교 인사 강 모씨를 통해 부여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그림의 출처도 강 모씨에 의해 또 변모해서, '대종교 주요인사였던 강 모씨의 조부가 나철의 밀명을 받아 대종교 총본사에 있던 그림을 몰래 숨겨오던 것'이라고 알려지게 되었지요.

    좌우지간 저는 저 그림이 밑도 끝도 없는, 아주 근래의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림의 재질이 종이도, 비단도, 뭣도 아니고, 레이온(!)이라는 것이 결정타지요. 레이온은 19세기에 개발되었지만 국내에는 1930년대에나 보급되기 시작한 인조섬유지요.

    P.S.
    동사유고는 제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확인한 바로는 "정축년"에 간행된 것이라고 하는데, 용인에서 간행되었고, 용인 지역에서 구한말 이후 활동한 문객인 심주택 (1867~?)의 발문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1937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솔거와 단군상 얘기는 그닥 오랜 얘기가 아니라는 거겠지요. 1984년에 간행된 '대종교요람'에는 이 설의 출처가 백남규 (1891 ~ 1956)로 나오는데, 그는 솔거가 이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강원도 석병산에서 수도하던 도인인 공공진인이라는 사람에게 1910년대에 전해들었다고 했다 합니다. 물론 백남규의 이런 증언이 담긴 다른 이른 시기의 기록은 전혀 없구요.
  • 초록불 2012/08/26 13:51 #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해서 잡아온 그림인데, 안호상과 박성수라니 허거걱입니다...-_-;;

    동사유고는 별로 자료가 나오지 않는데, 저 이야기 자체는 널리 알려져 있어서 희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은 별도 포스팅이 나오길 기다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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