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역........사..*



때는 성종 19년(1488).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파견 되어 공무를 수행하고 있던 최부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바다를 건너기로 한다. 때는 윤정월 3일. 한참 추운 겨울 바다였다. 제주 토박이들이 항해가 위험하다고 말리는 가운데, 제주 목사가 파견한 진무 안의는 군사들을 꾸짖어 배를 띄우게 했다.

"하늘의 변화야 누가 미리 알 수 있겠는가? 잠시 동안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야. 그리고 이 바다를 건너다가 뒤집혀 침몰하는 일이 늘 있었지만 왕명을 받든 신하로는 정의 현감 이섬 공 말고는 표류하거나 침몰한 일이 없었으니 이는 임금의 덕이 높은 것을 하늘이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슨 일이건 여러 사람의 말을 듣다가는 끝이 없는 법이니 어찌 떠났다가 도로 돌아가, 어버이 상을 당하여 가는 길을 늦출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배는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게 된다. 안의는 겁에 질려서 이렇게 말한다.

"전에 들었는데 바다에는 몹시 탐욕스러운 용신이 있다 합니다. 청컨대 행장과 물건들을 던져 살풀이를 합시다."

최부는 그러지말라고 했지만 안의의 말에 사람들은 물건들을 바다에 마구 내던졌다. 심지어 양식을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풍랑은 잦아들지 않았고, 겁에 질린 안의는 물에 빠져 죽기 전에 자살하겠다며 활줄을 목에 감는 소동까지 벌였다. 다행히 호송군인 하나가 활줄을 풀어서 살려놓았다.

최부는 배가 튼튼하니 물만 잘 퍼내면 살 수 있다고 격려했고 사람들은 물을 푸기 시작했다. 물을 푸던 그릇이 모두 부서져 더 이상 물을 풀 수 없게 되자 안의는 임기응변을 발휘해 작은 북의 한 면을 도려내서 물 푸는 도구로 만들어 위기를 넘기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또한 비가 내릴 때 옷을 비에 적셔 물을 짜내는 방법을 이야기해 사람들을 갈증에서 구하도록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꾀도 내고 본래 지혜와 위엄도 어느 정도 갖춘 인물인 듯 보였지만...

해적을 만나 돛도 키도 모두 부서지고 바다에 떠 있게 되자, 안의는 낙망하여 최부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투덜댄다.

"이번 길에 표류하여 죽을 것을 나는 이미 알았네. 예부터 제주 가는 사람들은 다들 광주 무등산이나 나주 금성산 신사에 제사를 지냈고 또 제주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광양, 차귀, 천외, 초춘 등 신사에 제사한 다음에 떠났다네. 그렇기에 신의 도움을 받아 큰 바다를 무사히 건너다녔는데 이번 경차관은 별나게 큰소리로 이를 비난하여 제주 올 적에도 무등산이나 금성산의 신사에 제사하지 않았고 나올 때 역시 광양이나 어느 신사에도 제사하는 일 없이 신을 멸시하였으니 신 또한 돌보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안의는 애초에 배를 띄울 때 자기가 뭔 소리를 했는지 다 까먹은 모양이다. 관노인 권송만이 바람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이 문제지, 신에게 제사 지내고 말고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따졌을 뿐 군사들은 모두 안의의 말에 찬동하여 최부를 원망했다.

최부는 매우 논리적으로 안의의 말을 따졌다.

(1) 제주 사람들은 몹시 귀신을 좋아해서 곳곳에 신사를 지었고 늘 빌고 있다. 그런데도 표류와 침몰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2) 이 배에 탄 사람 중 귀신에게 빌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다. 사십여 명의 사람이 지성으로 빌었는데 나 하나 때문에 모두 표류한다는 것이 타당한가?

15세기의 인물도 이처럼 귀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잘 알고 있는데, 21세기에 대통령 선출을 점쟁이에게 묻는 이 신문은 대체 제 정신인지...-_-;;

[매일경제] 국내최고 역술인, 대통령 누가되냐 물으니… [클릭]


덧글

  • 셔먼 2012/08/25 23:06 #

    근거 없는 낭설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려 하는군요... ㄱ=;
  • 초록불 2012/08/25 23:08 #

    선거 때만 되면 점쟁이들이 설치는데, 이건 미신공화국이 따로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 들었던 점쟁이들 이야기만 해도... 에휴... (먼산)
  • 잠꾸러기 2012/08/25 23:14 #

    점쟁이들도 이때 돈 벌어야죠.ㅎㅎ
  • 초록불 2012/08/25 23:25 #

    유구무언...
  • 라라 2012/08/25 23:22 #

    제대로 맞춘 사람이 한 명 있지 않았는지요?
  • 초록불 2012/08/25 23:25 #

    김일성 죽기 전에도 매년 올해는 죽는다고 예언들 했지요. 그러다 드디어 제대로 맞춘 점쟁이 등장...
  • Allenait 2012/08/25 23:23 #

    세상이 불안할수록 미신이 판치는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12/08/25 23:26 #

    불안하면 더 그럴 수는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언제나 판치는 것 같습니다...ㅠ.ㅠ
  • 을파소 2012/08/25 23:23 #

    어처피 유력 대선후보는 어지간하면 2~3명 안팎이라 때려 찍어도 누군가는 예언적중할 수 밖에 없죠.
  • 초록불 2012/08/25 23:26 #

    이거야말로 노나는 장사!
  • 솔롱고스 2012/08/25 23:43 #

    때가 되면 노트에 필사해서 계속 봐야한다. 이 포스트에 나온 일화를 살피니 이런 기분이 듭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신에 쉽게 흔들리는 세태에 씁쓸한 감정을 머금습니다.
  • 초록불 2012/08/26 00:48 #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 역사관심 2012/08/26 01:08 #

    합리론+ 실증론 (서로 반대성향이지만)을 결코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전통을 한번쯤은 가져볼만도 하다고 생각되는 때가 바로 이럴 때입니다.

    그나저나, 최부는 직접 '누구를 원망하긴요? 당신이지" 라고 하진 않았군요. 그게 영순위 이유같은데;
  • 초록불 2012/08/26 00:48 #

    표해록을 읽어보면 최부는 참 대단한 의지의 사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역사관심 2012/08/26 01:08 #

    표해록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ㅎ.
    그나저나 합리론 하고 실증론을 마치 같은 맥락인것 처럼 엮어서 찜찜했습니다; 첨언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8/26 01:01 #

    뭐, 대선때면 언론에서 하는 의례적인 행사잖아요.ㄲㄲㄲㄲ
  • 초록불 2012/08/26 10:36 #

    유구무언...
  • shaind 2012/08/26 01:23 #

    독자들이 그런 걸 관심있어하고 재미있어하니, 신문도 여전히 역술인들을 취재하러 다니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신문에 호로스코프도 실리는데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고딩때 표해록을 읽었는데) 최부라는 분은 제주도에서 표류해서 청나라까지 갔다가 돌아왔던데,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대모험을 하신듯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니 연산군 때 돌아가셨더군요. 지못미(?)
  • 초록불 2012/08/26 10:38 #

    재미로 실리는 오늘의 운세 같은 거야...(솔직히 이것도 웃기긴 합니다만)

    그나저나 최부가 다녀온 나라는 명나라입니다...^^;; 청나라는 임진왜란 이후에.

    그런데 표해록에 보면 명나라 사람들이 죄 대당국이라고 말하고, 고려는 어찌 되었는가 묻고 그럽니다...^^
  • shaind 2012/08/26 10:55 #

    아, 명나라가 맞겠네요. 제가 기억에 착오가 있었던...
  • 아빠늑대 2012/08/26 01:42 #

    매년 하는군요, 소위 '잘 보는' 역술인 들 여럿 대리고 누가 대통령이 될까요? 라는 걸 묻는 희대의 쇼.
  • 초록불 2012/08/26 10:38 #

    점쟁이 광고 수단이죠.
  • 措大 2012/08/26 03:43 #

    역학은 미신이나 귀신점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우기니까요 -- 산학이라고 하던가... 저 점치는 기사는 사실 홍보일지도 모르죠.

    표해록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차라리 "광양, 차귀, 천외, 초춘"이라는 지명입니다. 차귀는 차귀도, 초춘은 조천, 광양도 일단 제주시에 있는 지명인데...천외는 어디일까요? 川外라면 외도천과 관련 있는 지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 초록불 2012/08/26 10:40 #

    川外 맞습니다.
  • 2012/08/26 07:0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26 10: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asianote 2012/08/26 10:13 #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미래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점쟁이 산업은 계속 번창할 것입니다. 월가하고 CIA 같은 곳에서도 점쟁이에게 의뢰했다는 사례도 있는걸요.
  • 초록불 2012/08/26 10:42 #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부추기는 건 아니라고 보는 거죠.
  • 아르핀 2012/08/26 12:52 #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저런 식으로라도 컨닝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겠죠. 컨닝할 상대도 제대로 못맞춘다는 게 문제지만.

    그나저나 최부씨 일행은 저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으셨나 봅니다. 기록이 있는 걸 보니...
    다음 모험담은 더 찾아봐야겠군요.
  • 초록불 2012/08/26 13:48 #

    무사히 돌아와서 성종이 표류 기록을 바치라고 해서 쓴 책이 표해록입니다. 기억력이 엄청난 사람입니다...^^
  • 진성당거사 2012/08/26 12:55 #

    상식과 논리가 통하는 사회는 언제나 올는지 그저 한숨입니다.
  • 초록불 2012/08/26 13:48 #

    미신을 부추기는 짓만 좀 그만해도...
  • 레비아탄 2012/08/26 14:01 #

    조중동을 선호하지만 도저히 풍수지리나 사주팔자는 ... ;; 게다가 이것들이 게임이나 성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갖고 말도안되는 논거를 갖다붙이고 ~는 ~는 식의 기본적인 문법실수를 하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올때가 많죠
  • 초록불 2012/08/26 19:33 #

    이쪽으로는 한경오도 마찬가지로 비이성적일 때가 많습니다.
  • 놀자판대장 2012/08/26 15:23 #

    그러므로 역밸에서 날뛰던 예언 신봉자인 모 블로거를 까야 합니다
  • 초록불 2012/08/26 19:33 #

    피스풀밸리로 족합니다.
  • 허안 2012/08/26 16:56 #

    조중동매연; 매연이란 무슨 수식어가 붙어도 그저 공해일뿐
  • 초록불 2012/08/26 19:34 #

    이쪽으로는 한경오도 마찬가지로 비이성적일 때가 많습니다. (2)
  • 위장효과 2012/08/27 09:07 #

    저렇게 좀 띄워줘야 광고를 유지해주니까요. (간판 일간지라면 모르지만 자기네 다른 신문들의 주요 광고주중 하나가 바로 점장이들이니...)
  • 초록불 2012/08/28 11:42 #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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