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수라는 책 *..역........사..*



예종은 즉위하자마자 천문·지리·음양에 관한 책을 거둬들이기 했는데, 이중에 『명경수(明鏡數)』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예종 7권, 1년(1469 기축 / 명 성화(成化) 5년) 9월 18일(무술) 3번째기사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삼성밀기(表訓天詞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리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옥거인·설업 삼인기(文泰·玉居仁·薛業三人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명경수(明鏡數)』 및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 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綿布) 50필(匹)을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하였다.


이 책은 모두 9가지의 책입니다. 그것은 성종 때 내린 유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표훈천사삼성밀기』는 세조의 수거령에는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 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위에 나온 다른 책들은 따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명경수(明鏡數)』만은 몇 군데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정도전의 운명을 점쳤다는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 때 한 점쟁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점쟁이는 정도전의 운명에 대해서 "戊寅松嶺血飜風(무인년 송령松嶺에서 피가 바람에 날리리라)"라고 말했다죠. 그리고 정도전은 왕자의 난 때 바로 송현(지금 한국일보 자리)에서 칼을 맞았죠.

이 책은 그후 세종 때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드러냅니다.

세종 때 김학루金鶴樓라는 맹인(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하자면 시각장애인) 점쟁이가 살았습니다. 매우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용재총화』에도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죠. 소문이 자자하자 궁궐에서까지 불러들입니다. 경상도 하양현(지금 경북 경산) 출신의 이 점쟁이가 점치는 책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명경수(明鏡數)』였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학루가 자기가 『명경수(明鏡數)』를 가지고 점을 친다고 말했던 것이죠.

김학루를 불러들인 사람은 수양대군, 바로 후일의 세조였습니다. 이때 세종 23년(1441) 겨울에 세종대왕이 온천으로 거둥하시고자 할 때 그 거둥이 길한지 흉한지 점을 치라고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김학루는 "태양이 처음 나오는 곳에 만물이 광휘함을 보시겠습니다.大陽初出處, 萬物見光輝"라는 점괘를 내놓았습니다. 물론 길하다는 뜻이고 이 점괘로 집을 한 채 하사 받았습니다. 헐, 대박!

수양대군은 스스로 이 책을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김학루로부터 이 책을 받지를 못했던 모양입니다. 임금으로 즉위한 다음인 세조3년에 『명경수(明鏡數)』를 가지고 있다는 점쟁이를 알아냈습니다. 황해도 금천 일대를 떠도는 맹인 점쟁이 장득운張得雲이 이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바로 관직에 있는 풍수 전문가 안효례安孝禮를 시켜 책을 가져오게 합니다. (안효례는 중인 출신으로 풍수를 공부해 당상관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하지만 장득운은 자신은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체 장님이 책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걸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_-;;

하지만 귀중한 책이니 숨기고 안 내놓는 거라 생각하여 고문까지 가했으나 결국 책을 찾는데 실패합니다. 야사에서는 안효례가 태자귀에게 책의 행방을 묻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태자귀는 우봉현의 친척집 어디어디에 책을 숨겨놓았다고 말해주었으나, 막상 그곳에 가보니 그런 장소는 있었지만 책은 없었습니다. 안효례가 돌아와 태자귀에게 따지자, 태자귀는 "네가 항상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므로, 나도 또한 거짓으로 너를 속여 보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안효례가 그다지 평판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세조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두 달 후에 내려지는 명령이 나름 유명한 "수거령"입니다.

세조 7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5월 26일(무자) 3번째기사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옥거인·설업 삼인기록 수찬기소(文泰山·玉居仁·薛業三人記錄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이 목록에는 희한하게도 『명경수(明鏡數)』만 빠져 있습니다만 이 책에 대한 세조의 집착을 볼 때 굳이 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책 이름이 많아서 적다가 빼먹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왜냐하면 세조는 기어이 이 책을 찾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로부터 10년 후인 세조 13년(1467) 5월의 일이었습니다.

온양군수 김한생이 점치는 책[卜命書]를 하나 바쳤는데,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어서 당대의 석학인 서거정에게 책에 대해 조사하라고 시켰습니다. 서거정은 책을 살펴보고는 이것이 바로 『명경수(明鏡數)』라고 보고합니다.

“어떻게 하여 아느냐?”

세조로서는 당연히 할 질문이었죠. 그러자 서거정은 태조 때 정도전에 대한 고사를 이야기하며 조사한 책에 "戊寅松嶺血飜風무인송령혈번풍"이 적혀 있어서 『명경수(明鏡數)』라는 것을 알았다고 답합니다.

이제 세조가 가지고 있던 깊은 궁금증을 풀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대군 시절 불러왔던 김학루. 그가 이야기한 점괘가 과연 이 책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구절은 이 책에 없었습니다. 김학루는 『명경수(明鏡數)』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요?

덧글

  • 을파소 2012/11/07 19:02 #

    옛날에도 큰 사건 터지면 그걸 예언했다는 책의 소문이 돌았나 봅니다.
  • 초록불 2012/11/08 10:45 #

    인류의 유구한 유산이죠.
  • 야스페르츠 2012/11/07 19:20 #

    근데 정작 김학루한테 알아보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세조 성격이라면 당장에 잡아다 문초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 초록불 2012/11/08 10:45 #

    일찍 죽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draco21 2012/11/07 21:04 #

    어떤 예종의 금서목록?... (도주~)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라...
    확실히 도참설 적혀있는 책들에겐 가차 없었단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OTL
  • 초록불 2012/11/08 10:45 #

    도참설은 왕실에게 위협이 되니까요.
  • 파랑나리 2012/11/07 21:37 #

    왜 저 책들을 압수하려 했을까요? 지금 안 전해지는 것을 보면 없앤 것 같은데...
  • 초록불 2012/11/08 10:46 #

    http://orumi.egloos.com/214614

    여기에 적어놓았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11/09 00:31 #

    그러고보니 대선철이면 꼭 점쟁이, 무속인들이 언론에 등장하지요.ㄲㄲ
  • 초록불 2012/11/09 00:32 #

    미신공화국이 어디 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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