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들의 대결 *..만........상..*



바둑을 배우기는 국민학교 때 배웠으나 6학년 때 처참한 패배를 하고 난 뒤(아마 나는 이때 13급 쯤 되지 않았을까... 상대는 6급 이상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 바둑돌도 안 보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묘하게 경쟁이 붙어서 여름방학 내내 바둑만 두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우리집에는 사촌형이 대학 통학 문제로 살게 되었는데, 이 형의 바둑이 3급이었다. 형은 내 바둑을 보고 10급 쯤 되겠다며 일곱점을 깔고 두게 했는데, 물론 이렇게 깔아도 어이없이 깨지기 일쑤였다.

나는 이기지도 못한 상태에서 형은 바둑이 늘었다며 내 치수를 하나하나 줄여주었는데 돌이 다섯까지 줄었을 때 처음으로 한 판을 이길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친구를 불러다가 형의 관전 아래 한 판을 두었다. 물론 특훈의 결과답게 내가 여유롭게 이겼다.

그리고 형의 감상평을 기다렸는데, 형의 한마디는 이랬다.

"둘 다 못 뒀는데, 조금 덜 못 둔 니가 이겼다."

헐헐... 형은 바둑을 둔 우리도 기억을 못하는 복기를 쫙 해주며 이거저거가 패착이었는데, 상대가 그걸 눈치채지 못한 것을 설명해 주었다. 초등학교 대패 이후 두번째로 느낀 충격이었다.

요즘 대선판을 보면 그때 바둑 생각이 난다. 잘 두기를 바라지 않는데, 좀 덜 못 둬주기를 바란다.


덧글

  • 모모맨 2012/12/02 10:51 #

    저기 저 바둑 복기 하는 것이 꼭 기억 만 으로 하는 것 이 아니라 어떠한 규칙 과 패턴에 따라 진행하는 것을 기억하여 재현하는 것 인가요?
  • 초록불 2012/12/02 10:57 #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서 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그후에 노트에 표시를 해서 복기를 했었거든요. 외워서 복기하는 수준까지는 못 올라갔습니다...^^;; 다만 바둑이라는 것이 말씀대로 규칙과 패턴이 있으므로 그런 점이 기억에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요.
  • 漁夫 2012/12/02 14:18 #

    어떤 수를 두었는데 상대가 어떻게 대응했더라 이런 거 다 생각이 납니다. 판 돌아가는 데 신경쓰고 있다 보면 특히 외우려 하지 않아도 기억이 나지요.

    ...... 근데 마지막으로 바둑 둔 게 10년이 넘어서 지금은 잘 되려나 모르겠네요.
  • BigTrain 2012/12/03 21:45 #

    바둑과 스타를 둘 다 하는 제 지인 말에 의하면, 스타크래프트 빌드오더 좀 외우면 초반 가위바위보-중반 힘싸움-종반 마무리까지 좍 순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그 분 말로는, 스타에서 빌드오더가 중요하듯이 바둑에서 정석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정석만 좀 익히면 바둑이 금방 는다고 하던데.. 그게 어려워서 ㅡㅜ

  • 검은하늘 2012/12/02 11:30 #

    ....아주 적절한 비유시네요.
  • 셔먼 2012/12/02 11:42 #

    마지막 줄에 공감합니다.
  • Ladcin 2012/12/02 12:12 #

    복기를 잘하는 사람이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죠.
  • 잠본이 2012/12/02 12:14 #

    역시 바둑 안에 인생이...
  • rumic71 2012/12/02 15:05 #

    명언이네요. 알아서 자충수 두는 짓들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대편이 보기에도 슬슬 짜증나기 시작하니...
  • 2012/12/02 16: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Niveus 2012/12/02 18:54 #

    ...양쪽 다 내가 더 이 바닥의 병신이야! 를 외치는데;;;
    참 답이 없어보이더군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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