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염라대왕 *..역........사..*



역사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는 설화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아무튼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들이므로 역사 카테고리에 넣어 봅니다.

염라대왕은 일반적으로 저승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와 비견되는 명부의 왕이지요. 불교 쪽 전승으로는 저승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다섯번째 왕이라 하고 인도의 전승에서는 최초로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하지요. 이런 걸 히브리 전승과 합하면 염라대왕의 정체는 아담? (퍽!) 월광토끼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일 먼저 죽은 건 아벨...^^
사실은 박준규?




아무튼 염라대왕의 정체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도 궁금해 한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승을 다스리는 대왕의 정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에요!

첫번째, 고려 사람 유자량庾資諒(1150~1229).

유자량은 지금의 전남 나주 출신으로 무신정변 때 살아남은 문신으로(무신들과도 친하게 지낸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음) 그 후에도 높은 벼슬을 역임하다가 1213년 은퇴하여 조용히 불법을 닦으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당대의 문필가 이규보가 묘지명을 지었는데, 그 묘지명에 이런 대목이 전합니다.

앞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죽어서 한 곳에 가니 궁전 누각이 매우 장엄한데, 지키는 자의 말이「여기는 유복야(庾僕射)가 올 곳이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 말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생각하면 공의 행적이 이미 부끄러울 것이 없고, 세상을 떠남이 이러하였으니 그 말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이 좋은 곳에서 살아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렇게 유자량은 죽어서 저승의 궁을 차지했으니,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딱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말은없습니다만...

두번째, 박우朴遇.

박우는 선조 때 문신인 박점朴漸의 증조부라고 합니다. 특별한 이력은 전하지 않습니다. 황해도 연안延安에 살던 사람 하나가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알고보니 동명이인을 잘못 잡아온 것이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염라대왕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 자식들이 서울 어느어느 곳에 사는데 살아나면 찾아가서 내게 도포 하나를 새로 지어 보내라고 하라."
"제가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한들 미친 사람 취급받지 않겠습니까? 증험할만 한 것을 알려주십시오."
"시전 3권을 보면 내 옥관자 조각이 있으니 그걸 알려주면 믿을 것이다."
"새 도포는 어떻게 대왕께 전할 수 있습니까?"
"도포를 지어서 내게 제사를 지낸 뒤에 불사르면 되느니라."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박우의 아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도포를 바친 사흘 후 모든 집안 사람의 꿈에 박우가 나타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답니다.

세번째, 김인후金麟厚(1510~1560).

김인후는 지금의 전남 장성 출신으로 이황과 동문수학하고 조정에 나왔으나 인종이 일찍 죽고 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에서 물러나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살았다는 유학자입니다. 천문지리와 역학에도 밝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김인후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김인후와 친하게 지내던 오세억吳世億이라는 인물이 죽었다가 반나절만에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세억은 저승에서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일흔일곱이 된 뒤에 보자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을 해준 이가 바로 으리으리한 자미지궁에 거처하는 김인후였습니다.

역시 엄밀히 말해서 자미지궁은 옥황상제가 있는 곳이고 김인후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을 뿐이므로 김인후가 염라대왕인지는 좀 불명확합니다. 다만 수명을 관장하는 명부를 가지고 있고 저승사자를 부리고 있으므로 염라대왕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박우는 그리 오래 염라대왕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거겠네요.

네번째, 김치金緻(1577~1625).

염라대왕으로 제일 유명한 인물입니다. 안동 출신으로 갖가지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죠. 진주대첩의 주인공인 김시민에게 입양되었으며 선조 말기에 등과해서 광해군 때는 대북파로 이이첨의 심복이었으나 광해군의 학정이 거듭되자 벼슬에서 물러났고 인조반정 전에 반정파와 통하여 처벌을 면했습니다. 천문과 역술에도 밝았다고 합니다.

김치가 흥덕현감을 하고 있을 때, 한 노파가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들 둘이 갑자기 죽어 너무나 원통하다,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데려가는 염라대왕을 불로 호통을 쳐달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어이없는 주장이었지만 7일 밤낮을 울어제끼니 김치로서도 더는 말릴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김치는 비법을 써서 호출장을 만들고는 사령 고장금(이 고장금이 제주 전설에서는 그 유명한 저승사자 강림입니다)을 불러다가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합니다.

고장금은 죽었다 생각하지만 현명한 아내의 도움(제주 차사 본풀이에서는 가신(집안신)들의 도움을 받죠)으로 염라대왕 호출에 성공합니다. 염라대왕은 동헌으로 와서 본래 그 노파가 무고한 손님을 잡아서 재물을 빼았고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 원혼들이 그 집안의 아이로 환생했던 것이죠.

김치는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하고, 그 아들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 아버지 염라대왕의 도움을 받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이 김득신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화가 김득신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자, 염라대왕이 우리 편이니 이제 걱정할 일은... (그럴 리가 없잖아!)

덧글

  • 월광토끼 2012/12/05 10:55 #

    아담이 아니라 아벨 아닌가요 [....]
  • 초록불 2012/12/05 11:29 #

    아, 그렇군요...^^
  • 회색인간 2012/12/05 10:55 #

    중국쪽 전승에는 포청천이 염라대왕이라죠. 요재이지를 쓴 포송령도 그 설화를 차용해 썼구요
  • 초록불 2012/12/05 11:30 #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중국 쪽 전설은 떠올리지도 않았군요. 제목 바꿔야겠네요.
  • Allenait 2012/12/05 10:57 #

    그러고 보니 금오신화에도 주인공이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네요
  • 초록불 2012/12/05 11:31 #

    실존인물이 아니어서 뺐습니다...^^
  • 루드라 2012/12/05 10:59 #

    아담이 아니고 아벨이라는 건 월광토끼님이 먼저 말했군요.

    위소보는 염라대왕이 한족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지 염라대왕의 국적문제로 강희제를 설득했고 그게 통했다고 뻥을 치죠. 난 염라대왕의 국적을 논할 때면 항상 이 위소보 이야기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
  • 초록불 2012/12/05 11:32 #

    아하, 그것도 있군요.

    제목이 부적절했습니다. 제목 변경했습니다.
  • 잠꾸러기 2012/12/05 11:01 #

    여러 일화를 종합해 볼때 염라국왕은 세습 종신임기제가 아니라 선출직인듯....(퍽!)
  • 초록불 2012/12/05 11:32 #

    임명직 같습니다...^^
  • 2012/12/05 11:1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5 11: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05 11: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5 11: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옵저버 2012/12/05 11:28 #

    지나가던 환빠: 염라대왕은 우리나라 사람이고 인도신화,중국신화에까지 등장하니 이것은 우리가 고대 인도까지 진출했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 초록불 2012/12/05 11:33 #

    오오... 누군가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 Wolfwood 2012/12/05 11:28 #

    사실은 각 지역별로 계약직 지방 공무원일듯. 지방검찰청, 지방법원..이런식으로(..)
  • 초록불 2012/12/05 11:33 #

    지옥도 종류가 많으니...
  • Warfare Archaeology 2012/12/05 11:31 #

    ㅋㅋㅋㅋ 이제는 신의 출신지도. ㅎㅎㅎ 잘 봤습니다~
  • 초록불 2012/12/05 11:33 #

    감사합니다!
  • 듀란달 2012/12/05 11:45 #

    마지막 김치의 일화는 주호민 화백의 '신과 함께'에서도 나오는 부분이군요.
  • 초록불 2012/12/05 12:06 #

    <신과 함께>에서는 강림이 주인공이어서 원님은 그냥 찌질한 친구로 나오지 않던가...
  • 진성당거사 2012/12/05 12:02 #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김득신 생몰년이 좀 이상한것 같네요.
  • 초록불 2012/12/05 12:07 #

    아, 오타네요...^^

    수정했습니다.
  • 을파소 2012/12/05 12:16 #

    국가별로 저승 구획을 나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을 임명하나 봅니다. 문화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법이니 염라대왕도 교체하며 업무의효율성을 높이는 것이겠죠.
  • 초록불 2012/12/05 12:44 #

    어떤 이야기에 보면 염라대왕 밑에 서무 보는 이가 선대왕으로 나오는데, 시기 상으로 보면 태종, 세종, 문종 중 하나여야 합니다. 이 생각을 해보면... (먼산)
  • 을파소 2012/12/05 13:55 #

    그럼 지금은 서거한 전직대통령 중 하나가 서무를 보고 있을까요? 아, 왕이야 다 일가였지만, 지금은 정치적 공정성을 위해 양쪽 정치성향에서 한 명씩 뽑아 두 명이 좌우에서 서무를 보고 있을지도요.(...)
  • highseek 2012/12/08 09:24 #

    가나안 신화의 판테온을 생각하면 비슷하지요. 최고신이 각 영역별로 담당신을 임명하는 식으로요.
  • 파랑나리 2012/12/05 15:12 #

    염라기 시왕 가운데 다섯째라는 것은 중국에서 변형된 전승일 겁니다. 원래 염라는 인도신화에서 죽은 자의 낙원을 다스리는 자인데 지옥을 다스리는 자로 중국에 가서 저승의 재판관으로 이렇게 달라졌지요. 우리나라의 염라대왕이라... 저승이 넓으니 염라대왕이 다 다스릴 수 없을테고 제후나 방백이 따로 있나 봅니다.
  • 검은하늘 2012/12/05 15:14 #

    뭐.... 윗 분들 말씀대로 그 나라의 사법체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임명직일 확률이 높은게.... 영혼이라고 스트레스르 안 받을리가...(엉?!)
  • 야스페르츠 2012/12/05 18:25 #

    어쩌면 서로 떠넘기려고 하는 복불복일지도... (응?)
  • 셔먼 2012/12/05 19:12 #

    어쩌면 염라대왕은 일정한 기간 동안 돌아가면서 하는 임기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 draco21 2012/12/05 22:01 #

    ...... 암만 그리 말씀하셔도 일단 죽어야 한다는 점에선... (먼산) ^^:
  • 아르니엘 2012/12/05 22:07 #

    중국식 염라대왕은 살아있읉때 덕을 쌓고 자격이 있는이가 죽어서 임명됩니다. 심지어는 살아있는동안에도 밤에 불려가서 저승일을 봤댜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포증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특정한 누구가 계속하는게 아니라 시간지나면 교체됩니다.
  • 굔군 2012/12/05 23:56 #

    릴리트는 죽지 않았나요?
  • 아르니엘 2012/12/15 18:54 #

    죽지는 않았어요. 추방되었을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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