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조그는 고블린일까, 오크일까? *..잡........학..*



악당 두목 아조그


『호빗』 번역본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엘론드는 룬 문자에 대해서는 어떤 종류든 다 알고 있었다. 그는 난쟁이[드와프]들이 트롤의 굴에서 가져온 검을 보고 말했다.
"소린, 이건 곤돌린의 고대 문자로 '고블린을 베는 검'이라는 뜻인 '오르크[오크]리스트'라는 룬 문자요." - 호빗, 이미애 역,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2, 67쪽 (꺽쇠 부분은 내가 첨가했음)

여기서 '오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데, 검 이름이 오크인데 왜 고블린을 운운하는지 이상했다면, 그건 『반지의 제왕』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호빗』에서 고블린 왕이라고 나오는 이 친구도 사실은 오크의 왕.

아조그도 오크의 왕이다. 왕이 왜 둘이냐고 묻는다면 곤란. 인간 세계에도 나라가 여럿 있고 왕도 여럿 있지 않은가...

『호빗』에서는 고블린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자, 고블린이라는 족속은 천성이 잔인하고 사악하고 악한 것들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지 않고, 괴상한 것들만 잔뜩 만든다. 그들은 대체로 너저분하고 더럽지만, 노력하면 누구 못지 않게 갱도를 파고 채굴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망치, 도끼, 칼, 단도, 곡괭이, 부젓가락, 그리고 고문 도구들을 잘 만들었다. 아마도 훗날 세상에 문제를 일으킨 기계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죽이는 교묘한 장치들을 만든 건 바로 이 놈들이었을 것이다. 이 놈들은 바퀴와 엔진 그리고 폭탄을 언제나 좋아했다. - 위 책, 77쪽

사실 이런 묘사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크들보다 북구 전설에 나오는 고블린 종족에 더 어울린다. 워크래프트의 고블린도 위에서 나오는 것처럼 뭔가 만들어내는 발명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는 이런 게임을 기억한다든가...


또는 해리 포터의 은행장이라든지...


들녘에서 나온 판타지라이브러리 시리즈 중의 하나인 『환상동물사전』에서도 고블린과 오크를 분리해 놓았다. 나는 사실 톨킨이 『호빗』을 쓸 때는 별 생각없이 사악한 존재로 '고블린'을 썼다가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한 고블린이라는 어감으로는 『반지의 제왕』이 주는 무게감을 견디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오크'로 바꿔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톨킨의 세계관에서 오크라는 단어는 '로한어語'에서 온 것이며, 이들의 창조자는 위대한 정령인 발라의 하나였던 멜코르 - 타락한 후에 모르고스라 불림 - 였다. 이들은 덩치가 작은 편이지만 개중에는 큰 것들이 있는데, 이센가드와 모르도르 출신들로 이들은 '우루크'라고 불렸다.

이 멜코르의 부하 중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것들이 바로 부관이었던 사우론과 발록이다.

오크족은 사실은 엘프였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정확한 사실은 아니고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실마릴리온』에서 해당 대목을 읽어보자.

에렛세아의 놀도르족은 우툼노가 파괴되기 전에 멜코르의 손에 들어간 켄디[엘프가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들이 모두 그곳의 감옥에 가두어졌고, 서서히 잔인함에 물들어 타락하고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 실마릴리온, 강주헌 역, 다솜미디어, 1997, 68쪽

이 뒤에 이런 주목할만한 구절이 이어진다.

오크족은 일루바타르[최고신]의 자손들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어 생명을 가지고 번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크족의 생명은 독립적인 생명이 아니었고, 생명과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멜코르가 세상의 시작이 있기 전 아이누린달레에서 폭동을 일으킨 후 꾸준히 만들어오던 것이었다. 놀도르족은 그렇게 믿었다. - 위 책, 68쪽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위 두 개의 '전승'은 서로 다르고, 그 다른 것을 놀도르족[엘프 족의 한 갈래. 갈라드리엘이 이 종족임]이 믿었다는 이야기다.

톨킨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이 책 『실마릴리온』에는 고블린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써도 알 수 있다시피 톨킨의 세계관에서는 고블린과 오크는 동일한 존재이다. 오크의 창조주는 멜코르라는 타락한 발라며, 엘프를 타락시켜서 만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추가]
Wizard King님의 댓글을 보고 『호빗』의 서문을 확인했습니다. 예전에 읽을 때는 이런 걸 신경을 안 쓴 모양입니다...ㅠ.ㅠ 톨킨은 중간계 언어인 오크를 영어로 옮기면서 고블린으로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둘째, 오크[orc]는 영어 단어가 아니다. 한두 군데에서 그 단어가 나오기는 하지만 대개는 고블린(체구가 더 큰 종일 때는 홉고블린)이라고 번역되었다. 오크는 그 당시 호빗들이 그런 생물들에게 붙인 명칭이며, 돌고래류의 바다 동물을 가리키는 오늘날의 오크라는 단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 1966년 3번째 개정판 서문

위 말을 보고 생각난 사진 한 장...

덧글

  • Allenait 2012/12/30 22:43 #

    저 게임 스크린샷 오랜만에 보는군요. 전 모 잡지 공략으로 본 기억만 나는데..
  • 초록불 2012/12/31 10:00 #

    전 해봤습니다...
  • 검은하늘 2012/12/30 23:14 #

    ...그래서 생긴건 똑같은데 왜 오크랑 고블린이랑 다르지... 라고 했죠. 어제 밤에 봤습니다.
  • 초록불 2012/12/31 10:01 #

    결론 : 톨킨의 세계에서는 같은 겁니다.
  • daswahres 2012/12/30 23:29 #

    저는 체구가 작은 것들을 고블린, 체구가 큰 것들을 오크라고 생각하고 있습지요.ㅎㅎ
  • 초록불 2012/12/31 10:01 #

    결론 : 톨킨의 세계에서는 같은 겁니다. (2)
  • 비소무 2012/12/30 23:53 #

    HoME에 따르면 퀜타 실마릴리온은 곤돌린이 멸망한 뒤 요정 펜골로드가 역사서와 전설, 피난 온 요정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모아 쓴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어긋나는 내용, 혼자 트롤 몇십마리를 잡았다같은 과장, ~라고 전해진다같이 불확실한 서술이 많다는 설정입니다.
    더 이야기 하면 사우론때문에 이사온 곳까지 멸망하자 펜골로드는 배 타고 톨 에렛세아로 갑니다. 현실 역사 10세기에 뱃사람 엘프위네가 아만 땅으로 가는 뱃길을 가게 되고 거기 살던 펜골로드와 다른 요정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뒤 영국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고 톨킨 자신이 이걸 보고 다시 책으로 썼다고 합니다. 반지의 제왕이 붉은 책을 발견하고 쓴 책이라는 설정과 비슷하죠.
  • 초록불 2012/12/31 10:01 #

    자세한 말씀 감사합니다.

    HoME는 뭔가요?
  • 비소무 2012/12/31 11:31 #

    history of middle earth라고 초고와 출판하지 않은 부분을 추려 만든 책입니다. 비슷한 것으로는 UT(unfinished tales)가 있지요
  • 초록불 2012/12/31 11:35 #

    오호, 답변 감사합니다.
  • 2012/12/31 00: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31 10: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31 21: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Wizard King 2012/12/31 01:00 #

    인용하신 『호빗』의 저자 서문에서도 오크=고블린 등식을 명확히 하고 있죠.
  • 초록불 2012/12/31 10:02 #

    헐... 말씀 듣고 찾아보니 서문에 박아놓았네요...^^

    추가해 놓습니다.
  • 셔먼 2012/12/31 01:03 #

    워해머 시리즈 같은 데에서 보면 오크와 고블린의 종족이 워낙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혼동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하네요...
  • 초록불 2012/12/31 10:03 #

    보통은 다르게 나오는데, 톨킨의 세계에서는 같은 거예요.
  • 가면대공 2012/12/31 03:04 #

    전 책을 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오크라고 생각합니다. 번역본에서 오크=고블린이라고 했다면, 기원이 같은 종에서 분류했을 거라는 추측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타락한 모습이 두 종류로 갈렸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것들에 대해 애매한 정보밖에 없기 때문에 대충 고블린은 오크랑 같은 놈들이다. 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영화 속에서는 헷갈릴 정도는 아니었죠. 아참. 영화는 정말 재밌더군요. 딱 기대한만큼 재미있어서, 거의 끝나갈 쯤에 한 번 더 볼 생각입니다.
  • 초록불 2012/12/31 10:03 #

    결론 : 톨킨의 세계에서는 같은 겁니다. (3)
  • 굔군 2012/12/31 07:55 #

    아, 어쩐지...지하 동굴에 떨어지는 장면까지는 오크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골룸의 대사를 듣고서야 저 놈들이 고블린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맛대가리 없는 고블린 놈들~"
  • 초록불 2012/12/31 10:03 #

    결론 : 톨킨의 세계에서는 같은 겁니다. (4)
  • 마무리불패신화 2012/12/31 11:27 #

    둘다 같은 놈들이었군요. 전 큰게 고블린인줄 알았는데;;;
  • 초록불 2012/12/31 11:34 #

    고블린은 일반적으로 작은 괴물로 묘사되죠...^^
  • 키르난 2012/12/31 19:38 #

    저도 고블린과 오크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지라...(게임 탓이 크지요. 고블린은 작고 가냘프지만 오크는 덩치큰...-ㅁ-) 톨킨이 '번역'한 것이었군요.;
  • 초록불 2012/12/31 19:39 #

    사실 저는 톨킨이 그런 식으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합니다...^^
  • Wizard King 2012/12/31 21:50 #

    초록불님께서 "나는 사실 톨킨이 『호빗』을 쓸 때는 별 생각없이 사악한 존재로 '고블린'을 썼다가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한 고블린이라는 어감으로는 『반지의 제왕』이 주는 무게감을 견디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오크'로 바꿔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라고 해석하신 것이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톨킨의 작명에 대한 고민을 잘 보여주는 문서의 하나로 자기 작품의 고유명사 번역 방법을 권고한 "Guide to the Names in The Lord of the Rings"(http://demo.ort.org.il/clickit2/files/forums/471389549/245921236.pdf)가 있습니다.

    여기서 톨킨은 『호빗』에서 "고블린"이란 표현을 썼지만 『반지의 제왕』에서는 "오크"라는 표현을 쓰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but this word, and other words of similar sense in other European languages (as far as I know), are not really suitable.")

    하지만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에 나오는 "고블린"은 전설 속에 나오는 고블린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크"란 표현을 그대로 써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The orc in The Lord of the Rings and The Silmarillion, though of course partly made out of traditional features, is not really comparable in supposed origin, functions, and relation to the Elves. In any case orc seemed to me, and seems, in sound a good name for these creatures. It should be retained.")

    이 문서에서 톨킨도 밝히고 있듯이 "오크"라는 말은 어원적으로는 『베오울프』 등에서 "오우거"(ogre)의 의미로 쓰였고, 이 말은 다시 "지옥"을 의미하는 라틴어 오르쿠스(Orc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http://www.etymonline.com/index.php?allowed_in_frame=0&search=orc&searchmode=none).
  • sharkman 2013/12/19 14:29 #

    고블린의 이미지라면 헬보이 2에서 황금군단을 만든 고블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요. 와우하는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 초록불 2013/12/19 14:31 #

    헬보이2는 별로 재미있게 보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치롱 2014/02/16 19:35 #

    범고래 인간 ㅋㅋㅋ
    한때 Orc의 어원이 옥스포드 럭비 클럽의 약자라는 루머가 퍼진 적이 있답니다.
    톨킨옹이 옥스퍼드 대학 교수여서 퍼진 소문 같은데 전혀 근거 없답니다 ㅎㅎ
  • 초록불 2014/02/17 14:53 #

    그런 소문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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