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폐해는 어디까지 미치나? *..역........사..*



연산군 때의 일입니다.

경기 관찰사 홍귀달은 손녀를 궁으로 들이라는 명을 받습니다. 세자빈 간택 때문이었죠. 홍귀달의 5남 홍언국의 딸을 홍귀달이 잠시 집에 맡아 두고 있었습니다.

홍귀달은 이를 거부합니다. 손녀가 병이 있어서 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는데, 이 일은 연산군의 진노를 부르게 됩니다. 홍귀달은 본래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입신양명한 케이스입니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한 적이 없고 남이 자기 흉을 보아도 화를 내지 않는 큰 아량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산군이 자꾸 빗나가는 것은 신하된 도리에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충언을 올렸고, 그 결과 이조판서에서 좌천되어 경기 관찰사가 되었죠.

더구나 경기 관찰사를 하는 중에 연산군의 애첩 장녹수의 연줄을 가지고 고지기를 시켜달라는 청탁이 들어왔는데, 원칙주의자였던 홍귀달은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청탁을 한 사람이 바로 연산군 자신이었다는 점... (맙소사!)

연산군은 처남 신수근을 보내 부탁했는데, 홍귀달이 그걸 잘라버렸던 겁니다. 그래서 어디 한 번 두고보자며 이를 갈고 있는데 감히 공식적인 왕명을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자 연산군은 바로 폭발해버리게 되죠.

홍귀달은 바로 귀양에 처해지고 홍귀달과 친한 사람들도 불똥을 맞아버립니다. 아들 홍언국도 바로 유배형에... 그리고 이 정도로 분이 안 풀린 연산군은 끝내 홍귀달에게 사형을 내립니다. 목을 매달아 죽이지요. 그리고 봉분도 세우지 못하게 평장을 하라고 명령하죠.

남편의 귀양으로 충격을 받은 홍귀달의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들 홍언국도 거제로 보내 노비를 만들었는데, 생각나면 불러들여 곤장을 치고 다시 내려보냈습니다. (홍귀달은 함경도 경원으로 보냈으니 부자를 극과 극으로 찢어놓은 것입니다.)

권불십년. 연산군이 쫓겨나고 광명이 돌아왔습니다. 홍귀달도 신원이 되었지요. 그렇게 해피엔딩을 맞이했을까요?

아닙니다.

아들 홍언국에 대한 탄핵이 올라옵니다. 아버지가 죽어서 상중인데 거제도에 유배 있던 홍언국이 주색을 밝히고 매사냥을 다녔다는 것이었습니다. 홍언국은 억울하다고 탄원합니다. 이웃사람들도 모두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하는데 어찌 이런 죄를 만드느냐는 것이죠.

"김세필(金世弼)·박수위(朴守緯)는 신과 울타리를 두고 서로 이웃하고 조석으로 상종하였으며, 신의 하는 일은 비록 음식 같은 작은 일이라도 서로 알지 못함이 없습니다. 하물며 이런 강상을 어지럽히는 큰 일로 세상의 이목을 놀라게 하는 일이겠습니까? 사냥에 관한 연루자도 경차관(敬差官)으로 추고하게 하여 2차나 형문하였으나, 가까운 이웃 사람들이 모두 ‘전혀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하였습니다. 매와 개로 사냥하는 것은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보는 데서 길들이고 놓고 하는 일이지, 방안에 숨겨 두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실지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듣고 보고 하였을 것인데, 하물며 가까운 이웃사람이겠습니까? 가까운 이웃사람들이 자기가 범한 일이 아닌 것을 가지고, 또 신의 노복이 아닌데도, 재차 형장을 참아 가면서 끝내 승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신이 사냥을 즐기지 아니하였다는 것이 또한 명백합니다."

하지만 대간들은 물러나지 않습니다. 홍언국이 의녀 덕금을 간음했으며 매사냥을 다닌 것이 분명하니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불러들여 조사해야한다고 주장하죠.

중종 10권, 5년(1510 경오 / 명 정덕(正德) 5년) 2월 22일(무신) 2번째기사
헌부에서 김세필을 형장 심문할 것을 아뢰다

헌부가 아뢰기를,
“김세필이, 홍언국의 범행을 분명히 아는데 숨기고 자복하지 않으니, 형장으로 심문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이렇게 세 번이나 불러들이고 두들겨 패니 있던 일이고 없던 일이고 자백하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홍언국의 죄는 이렇게 확정되어 패상안敗常案에 오르게 됩니다. 패상안이란 삼강오륜에 어긋난 죄를 범한 사람들을 기록하는 명부입니다.

홍언국이 정말 상중에 주색을 밝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상중에 주색을 밝힌 죄로 사형에 처해진 뫼르소가 문득 생각나는군요.) 하지만 앞날을 알 수 없는 공포의 나날, 부모님이 비명횡사하고 남겨진 청년의 슬픔에 대해서 한 치의 인정도 보이지 않는 저 시대가 참으로 갑갑해 보이는군요.





이런 아픔은 민담으로 치유를 하게 됩니다. 홍귀달에게는 이런 전설이 붙어 있습니다.

홍귀달이 사약을 받은 곳은 황해도 용천역이라는 곳입니다. 송질(1454~1520)이라는 관원이 하루는 이 역사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몹시도 추운 겨울밤이었는데, 한밤중에 송질의 이름을 누가 불러서 나가보니 홍귀달이 서 있더란 것이죠. 얼른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니 홍귀달이 청을 하나 했습니다.

"내 죽던 날이 너무 추워서 아직도 추위에 떨고 있네. 따끈한 술 한 잔만 주게나."

송질이 바로 따뜻한 술을 올리자 홍귀달이 달게 마셨습니다.

"추위가 이제야 풀리는군. 그동안 술 한 잔 달라고 오면 관원들이 놀라서 바로 죽어버렸네. 내가 한 짓이 아니라 스스로 놀라 죽은 것 뿐이네. 자네는 앞으로 자손대대 복록이 무궁할 걸세."

송질은 홍귀달의 예언대로 영의정 자리에 올랐고 그 자손들도 크게 출세했다고 합니다.




물론 전설은 전설일 뿐이죠. 홍귀달이 죽은 것은 6월이었으니 추운 날이 아닙니다.

덧글

  • 무명병사 2013/01/08 14:03 #

    홍귀달과 송질의 일화는 용재총화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아니, 그런데 홍 대감님. 귀신을 보면 누구라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검은하늘 2013/01/08 14:17 #

    ....죽어서까지 가문을 말아먹고 싶었군요.
  • draco21 2013/01/08 14:46 #

    그야말로 말세.. T.T
  • 러움 2013/01/08 14:49 #

    크롬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계속 악성코드가 있다고 해서 못 들어왔는데 익스로는 잘 들어와지는군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초록불 2013/01/08 14:52 #

    크롬의 경우, 고급이라고 쓰인 것을 누르고 "계속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본인이 감수함"을 누르면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대체 언제나 고쳐질는지... ㅠ.ㅠ
  • 2013/01/08 15:0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8 15: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가면대공 2013/01/08 15:33 #

    음, 잘 봤습니다. 오늘도 재밌네요.
  • 셔먼 2013/01/08 17:43 #

    폭군은 죽어서도 민폐군요.
  • 역사관심 2013/01/08 18:07 #

    연산군은 진짜 제대로였다는 걸 알면 알수록 깨닫게 됩니다...(네거티브한 쪽으로).
    그리고 더 쓰레기는 그 밑에서 빌붙어 날뛰던 인간들...
  • 오그드루 자하드 2013/01/08 18:20 #

    아니 아버지는 처형 당하고, 노비 생활까지 하다가 막 복권된 사람에게 무슨 매사냥을 즐길 여유가 있었을지....;;;
  • 초록불 2013/01/08 18:35 #

    매사냥 이야기는 유배 중에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더 어이없죠...
  • 오그드루 자하드 2013/01/08 18:39 #

    형벌을 받아 '노비' 신분이 된 사람이 말이죠? 허허 참;;;;
  • 마무리불패신화 2013/01/08 21:04 #

    홍언국에게 정적이 많았었나...;;;
  • 초록불 2013/01/09 10:07 #

    그 친구 자체는 벼슬도 낮아서 그럴 일도 별로... 성균관에 선생으로 임명되었다가 끌어내리려고 일어나는 소동입니다.
  • 마무리불패신화 2013/01/10 21:59 #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나요??
  • 초록불 2013/01/11 10:57 #

    어떤 사례에 대한 말씀인지 잘...

    강상을 바로 잡기 위한 이런 식의 탄핵은 많았습니다만...
  • DeathKira 2013/01/08 22:46 #

    연산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종대엔 대체 왜..
  • 초록불 2013/01/09 10:08 #

    이데올로기 확립기에 시범 케이스로 찍혀서 당한 것 같습니다.
  • moduru 2013/01/09 16:20 #

    사헌부 탄핵에 뻘짓이 많죠.
    권세가에게 부화뇌동하는 것 헌부가 나서서 하는 경우도 있고...
  • 초록불 2013/01/09 16:45 #

    씁쓸한 이야기군요.
  • 누군가의친구 2013/01/10 10:51 #

    폭군이 불행을 안기고 뒤에는 혼란상을 만들어대니 말 다했죠. 연산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참...(...)
  • 초록불 2013/01/10 11:25 #

    어떤 상처는 원인이 소멸된 뒤에도 피를 흘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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