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되는 이유 *..시........사..*



고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면 마침 그 무렵 해서 읽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덕분에 일본에 대한 저주의 글이 좌라락 적힌 대목이 있다. 그때로부터 대학 3학년 정도까지 나는 확실히 민족주의자였다고 하겠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느낌은 현대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식민사관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면서 자신이 연구하는 나라의 역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에 참으로 기괴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특수한 분야의 연구는 이러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단계를 넘어서 버리기도 한단다. 북한 연구를 하다가 북한에 동조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는 학자도 있다고 하니...)

이런 인식에 금을 가게 한 책이 하나 있었다.

1985년에 나온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도서출판 한울림에서 나온 책으로 당시 가격은 2200원. 지은이는 이게 사람인지 아닌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던 岩波... 물론 지금은 이 한자가 이와나미 문고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거기에 역자도 없다. 그냥 편집부 옮김으로 되어 있다. 이 당시에는 이런 식의 책도 흔했으니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보다 그 내용이었다.

이 책을 설명하고 있는 후기의 한 대목을 옮긴다. (이 후기는 김지하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진 다음에 쓴 글을 옮겨놓은 것이다. 글을 쓴 이는 쿠라쓰카 타이라 메이지 대학 교수이다.)

1972년 10월, 계엄령을 발포하고 박정권이 집권한 이래, 한국에서는 입을 열면 꿰메고, 귀를 기울이면 자르고, 눈을 바로 뜨면 찌르는 삭풍이 불고 있다. 사태는 날로 격화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나라 최고의 식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황량한 툰드라 하에서도 민족의 양심은 얼지 않고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것을 극명하게 증언한 것이 바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다. 이 책은 불퇴전의 결의를 가지고 싸우는 한국민중의 집합적 노력의 결정이자 일본의 민주주의자에 대한 양심적인 호소이다. -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 유신선포에서 민청학련까지, 한울림, 1985, 160쪽

이 책은, 세까이[世界]라는 일본의 잡지에 연재되었던 컬럼을 모은 것이다. 이 컬럼은 당시에는 TK生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사람이 쓴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2003년에 지명관 교수가 자신이 TK生이라고 밝혔다.

후기의 한 대목을 더 읽어보자.

김대중 사건의 경위나 2명의 일본인 피고를 둘러싼 거래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한일양국정부는 추악한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관계가 존속하는 한 우리들은 분노한다든지 동정한다든지 하는 것으로는 허용될 수 없는 중대한 책임을 한국국민에게 지게 되는 것이다. 즉, 일본정부의 대한정책을 규탄하고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할 이런 연대에 대신하여 참된 민주주의적 연대를 확립해야만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중략)

일본정부가 전전의 식민지배와 전후에도 계속된 재일한국인 차별에 대하여 만약 조금도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고, 나아가 깊어져만 가는 경제침략에 대하여 위구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서 필자의 작업에 따라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것을 통하여 공동화해가는 일본의 민주주의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재미있는 것은 지명관 교수는 한일회담반대 데모를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일본으로 망명해서 일본의 유수한 잡지에 한국의 실정을 알리는 컬럼을 익명으로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3년 9월 세까이 지에서는 지명관 교수와 오까모또 아쯔시 편집장의 대담이 실렸는데, 거기에서 편집장은 이런 말을 한다.

특히 73년부터 실리던 TK生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통신]을 읽고 있었으니 이를테면 공통적인 시대인식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잔인한 탄압에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하며 발언을 계속하는 한국인들의 용기와 행동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요. 강한 존경심을 품었던 것도 이 [통신] 덕분이지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ㅇ입니다. 이 글은 당시 일본인의 한국 인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지명관, 창비, 2008, 407쪽(이 책은 위에 이야기한 한울림에서 나온 번역본과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한국 내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해외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지지를 받고 그것은 다시 한국 정부에게 압력으로 작동했다. 민주화의 기본은 연대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전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지지받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칭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사람이 북한의 독재 체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거나, 북한에는 북한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시 세계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정권에 대해서 침묵으로 동조해서는 안 된다.





[사족]
지명관 교수를 세까이 지에 소개한 사람은 조선일보의 주필이자 소설가였던 선우휘다. 지명관 교수가 사상계 주간이던 시절 일본 우익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왔고 방문기 한 편을 써주었는데, 이 우익이 내는 잡지에서는 지명관 교수의 글을 왜곡해서 한일협정 반대운동은 잘못되었던 행동이라는 식으로 실어놓았고, 이 글을 본 세까이 지의 편집장은 지명관 교수를 겉과 속이 다른 한심한 인물로 여기고 있었다 한다. 이 인식을 바꿔준 것이 당시 도쿄에 유학 중이던 선우휘였다.

사족의 사족으로 써본다면...

86년에 죽은 선우휘를 누가 그리 알겠나 싶어서 이런 사족을 왜 달았나 싶다.

[사족2]
한울림의 번역본은 민청학련까지만 다뤘지만 이 통신은 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화대항쟁까지 계속 되어 1988년에서야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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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adcin 2013/02/01 22:15 #

    김씨 왕조가 무너질때까지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되죠. 아니면 적어도 김씨 왕조를 옹호하는 짓은 해서는안되죠
  • 긁적 2013/02/01 22:28 #

    그런 의미에서 좀 유치하지만.
    http://smallhuman.egloos.com/2914601
  • anaki-我行 2013/02/01 22:32 #

    소위 지식인이나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정치인'이라면 좀 다르게 생각할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물론 '종북주의'와는 다른 개념으로요)
  • 사과계피 2013/02/02 01:46 #

    정치인으로서의 접근이라도 우선 다른게 아니라 틀린거라는 전제 하에 대화의 상대로 봐야겠죠.
    삼대세습이나 독재, 정치범수용소 등을 다름으로서 인정하라는 정신나간 소리들이 요즘 너무 많아요;
  • 을파소 2013/02/01 23:15 #

    선거로 뽑힌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욕하면서 북한의 부자세습은 옹호한다면 최고의 모순이죠.
  • 초록불 2013/02/02 09:29 #

    그건 말도 안되는 이중잣대죠...
  • 2013/02/02 01: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2/02 09: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2/02 07: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2/02 09: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3/02/03 09:21 #

    예전에도 학교 시험문제에 답하기도 했고 블로그에도 한번 간단히 쓴적 있었는데 북한문제는 민족이니 하는 특수성이 아닌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이 시리아나 이란등에 무기와 기술을 제공하고 하는걸 보면 특수성으로 접근할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밖에요.
  • 초록불 2013/02/03 14:13 #

    특수성으로 봐도 당연히 뭐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암호 2013/02/04 00:19 #

    참, 어느분댓글에도 어제 썼긴 했지만, 한비야가 계속해서 욕먹는 이유 중 하나가 북을 방문했을때, 왜 이러한 형국까지 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관련 책자 어디에서도 없다는 것이 가히 증오 밖에 나오더군요. 그래놓고, 국제 구호라는 요란한 말을 전에 배운 회사에서 잘 익힌 것에는 신정아가 따로없습니다....
    테레사 수녀도 한비야와 비슷한 일을 국제적인 망언으로 내는 바람에 성인 칭호까지는 못 받았지요. 중남이에서 불쾌하게 여길 독재자를 칭송했으니 말입니다.

    위 농업에 관련된 글을 쓰다보니, 개인적으로 우장춘 박사께 미안합니다. 문화가 아닌 기초적인 먹을거리 앞에서도 헛소리나 늘어놓은 종교쟁이들을 자기 권력을 위해 손 잡은 경제개발 신화라 추앙받는 사기꾼 딸이 그 따위 사기에 굴복한 정치꾼들 밖에 없어, 당선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러한 기초적인 문제를 어느정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 부정하는 스탈린을 딱 닮은 박유신에 우장춘 박사가 잡든 곳에 자리잡았고, 이제는 전주로 가려는 농진청에 많은 인재들이 그 뜻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옥수수 박사 김순권이 있지요. 김순권 쪽 저서에서만 나와 속단하기 힘들지만, 박유신이 그렇게 추진하는 통일벼에 대해 저항력 문제로 실패한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현재, 통일벼에 관여한 연구자 그 자녀가 근무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갈등은 커질 듯 합니다. 마리 퀴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남편과 남편 형이 되는 이가 프랑스에서 대접받는 과학자임에도 자기 딸대에서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푸대접 받은 것이 김순권 박사가 농진청에서 나와 아프리카로 간 이유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 초록불 2013/02/03 23:56 #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네요.

    한비야가 북한에 방문한 일도 있었군요. 김순권 박사가 아프리카에 갔다는 것도 잘 모르는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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