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가 17세기에 쓰인 것이라면... *..역........사..*



『규원사화』는 쓰인 연대를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쓰여진 것은 분명하고 서문 말미에 上之二年 乙卯라고 나오고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조선 왕 재위 중 2년과 을묘가 일치하는 때는 숙종 때이므로 이 책이 1675년에 쓰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안에 나오는 내용은 도무지 17세기의 사고 인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정말 『규원사화』가 17세기에 쓰인 것이라면 아래와 같은 모순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말갈靺鞨 -
대저 말갈은 옛 숙신肅愼의 후예로서 이 또한 단제檀帝의 남은 족속이다. 뒤에 점차 쇠퇴해져 선조의 옛 강역을 모조리 다른 사람의 손에 던져 주고는 구구하게 말갈의 일족이 되어서 여전히 고향 땅에 깃들어 살았었다.


말갈의 유래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나온다.

신지씨는 속진국에 봉함을 받으니, 땅의 기후는 모질게 한랭하여 오곡에 마땅하지 않았으나 넓은 지역에 사람이 드물어 목축이 매우 적합하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활을 매고 검을 차고 유목과 수렵에 함께 종사하게 하였다. 후세에 그 백성들은 점차 흑수黑水의 땅으로 옮겨가 마침내 어로와 수렵으로 생업을 삼으며 고생하면서도 검약하니 건장하고도 억세어 졌다. 비록 용감하게 멀리 여러 나라로 나아갔으나 점차 글은 익히지 않게 되었는데, 후세에 한나라는 읍루挹婁라고 일컬었고, 북위 때는 물길勿吉이라 하였으며, 수와 당나라는 말갈이라 불렀으며, 점차 북쪽 끝의 야만인들과 서로섞이더니 점차로 그 풍속을 잃어버리고 한탄스럽게도 자못 쇠미해져 갔다. 가까이는 금나라와 여진女眞 등이 모두 그 후손으로 같은 족속을 달리 일컬은 것이다.

여기에 주의할 부분이 있다.

『규원사화』 저자 북애자의 주장을 따르자면, 결국 여진(말갈)과 우리는 한 족속이라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등한 존재는 아니다. 그 속내에는 위 글에서도 잘 보이는데, 구구하게 말갈의 일족이 되었다고 하거나 자못 쇠미해져갔다는 말에서 이들에 대한 우월감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위 인용문의 빨간 부분을 주목하기 바란다. 금나라와 여진... 금나라와 여진...

왜 "청나라"라고 쓰지 못하고 저렇게 썼을까? 저 구구하고 쇠미한 일족이 청에게 조선은 어떤 꼴을 당했다고 북애자는 쓰고 있었나?

일단 서문을 보자.

만약 한줄기 강물인 압록강을 넘어서기만 하면 거기는 이미 우리의 땅이 아니다. 슬프다! 우리 조상이 살던 옛 강토가 남의 손에 넘어간지 이미 천 년이나 되었다.

이렇게 슬픔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고려 이후에 조공 바치는 사신을 수백 년 동안 보내면서도 이를 한스럽게 여기지 않다가 졸지에 만주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위 구절은 뒤에도 이처럼 되풀이 된다.

조공가는 사신들이 북으로 수백 년 동안 가면서도 한탄하지 않고, 겨우 남한산성의 수치만 떠들어내니 스스로 탄식할 뿐이다.

북애자는 이처럼 "만주"(여기서도 청나라라고는 차마 쓰지 못하고 있다)는 원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이미 수치를 당해왔는데 청나라한테 항복한 것쯤 어떠냐는 것이 이 글의 뒤에 깔린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관된 주장으로 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아, 슬프다. 하늘이 효종에게 10년만 더 살 수 있게 하였다면 군대를 심양으로 보내고 배를 산동으로 달리게 했을 것이다. 비록 패하더라도 시기만 놓치지 않았다면 근세에 보기 드문 통쾌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효종이 치려고 한 상대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청나라. 그것은 여진족의 청나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면 곤란한 청나라. 북애자는 자신도 횡설수설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뒤에 이렇게 써놓았다.

하늘이 임금의 천수를 빌려주지 않아서 마침내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다행인가 불행인가? 나로서는 그저 처절하게 여길 따름이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幸耶? 不幸耶? - 그야말로 북애자의 정신세계의 파탄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만주를 잃은 것은 한스러운데 그걸 되찾으려니 거기에 있는 것은 동족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는 청나라다. 이걸 어쩌랴? 아아, 공격을 못했으니 다행이로구나, 아니다! 공격해서 만주를 찾았으면 통쾌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으니 불행이다!

정말 처절하다.





북애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예전에 만주와 싸운 것으로 인해 조정에서 화친이니 배척이니 하며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이 또한 주나라 왕실을 높이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만주라 함은 청을 가리키는 것인데, 화친과 배척에 존주尊周, 즉 중국을 떠받드는 것이 배경으로 작동했다는 이야기다. 그럼 북애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동족인 청과 싸우려 한 척화파는 존주尊周 때문이었으니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차마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으니 그냥 "모르겠다"라고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애자의 이런 말은 또 어떠한가?

고려가 신라를 계승하였다고는 하지만 강토는 이미압록강에서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땅이 되었으며, 북방과 더불어 스스로 관계를 가지지도 않았었다. 또한 요나라와 금나라의 기세가 국경을 위세로 억누르니, 구구하게 압록강 이남의 수천 리 땅으로 다시금 웅혼하고도 거대했던 나라와 비교될 수가 없었기에 백성의 기세가 저절로 쇠미해짐이 옛날보다 심하게 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김씨[김부식]가 역사를 서술할 때는 이미 압록강 이북의 일에 대해 묻는 자가 없었다.

이 구절을 보면 금나라는 또다시 우리의 원수에 불과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일각에 불과하고 북애자는 청과는 달리 금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성을 넘어 변경[개봉]을 도륙한 뒤 휘종과 흠종을 사로잡아 북쪽으로 보내고 고주[송 고종]를 꾸짖어 남쪽으로 귀양을 보냈으며, 유주와 연나라 땅을 넘어 중원의 선비들을 매질하였다. 그러자 조가趙家의 군신들 가운데 정성과 성의를 보내며 신하를 자칭하고 조카라고 스스로를 일컬어 남아 있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진회秦檜와 한윤韓胤의 무리는 모두 엉금엉금 기면서 아첨을 떨었으니, 이는 진실로 천고의 쾌사이며 동방 제후의 자랑이다.

그럼 청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지금에 무릇 애친씨愛親氏는 혁도아라赫圖阿羅 사람이다. 그 선조는 멀리 속진의 후예에서 나왔고 그 백성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무리 중에서 많이 이어받았으니, 이들이 남아 있는 단씨[단군]의 후예가 됨을 거의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뽐내고 있으니, 만주가 우리와 친척됨을 긍정하고 인정하려 하겠는가? 저들 등이 여진을 대함에 있어서도 이미 오랑캐로 여기고 그들을 배척하고 있으니, 우리가 만주를 대하며 욕하고 배척하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만 하겠는가! 또한 저들 등이 조선과 더불어 대립한 지가 이미 오래이며, 뭇 오랑캐와 더불어 서로 섞인지가 오래이니, 그 형세가 어찌 능히 다시 합치고서 오랫 동안 갈라져 있었음을 후회할 수 있겠는가! 이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혁도아라"라는 것은 赫圖阿拉을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의 요동 동부지역으로 태자하의 상류지방이다. 위 글을 보면 북애자의 생각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부분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비록 밤낮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에 대해 이빨을 갈면서 임진년에 신통치 않게 도움을 받은 의리로 명나라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지만, 내가 보장하건대 1백년 안에는 기필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무릇 변변치 못하게 압록강 이남의 수천 리 땅에서 적은 숫자의 무리로 이미 스스로가 절박함에 매달려 있으며, 또한 스스로 여진을 오랑캐로 여겨 물리치고 만주를 오랑캐로 여겨 배척하며, 동쪽으로는 왜놈들에게 손발이 묶인 채 서쪽으로 명나라를 그리워하고자 하니, 백성들이 다시 어느 겨를에 능히 힘을 기를 것인가!

이것은 17세기의 국개론인가. 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북애자는 여진 오랑캐를 이등국민으로 여기는 심성이 있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여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청나라는 반드시 떠들기 잘하는 선비에게 망할 것이다.

이 다음 대목이 압권이니 옮겨보자.

만약 하늘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수백 년 뒤로 놓아두기만 한다면, 곧 나는 우리나라 옷을 입고 청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앉아 청나라 황제를 설복하여 우리가 같은 조상임을 얘기하고 그 이해 득실을 나열할 것이니, 조선과 더불어 요만遼滿 유영幽營의 땅에 나란히 웅거하여, 북으로는 야인野人을 꾀어 선봉으로 삼고 동으로는 왜倭와 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남쪽의 비루한 종족들을 휘어잡게 하자고 할 것이다. 무릇 그러한 후에야 조선의 강성함은 다시 살아날 것이요 한나라의 거만함은 좌절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조선의 형세가 저무는 해를 따라가듯 하기에 단지 허약함만을 돌보아서는 떨치고 나와서 힘을 쓰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볼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은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다시 패망할 것이니,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누가 능히 지탱하겠는가!

사실 이 대목을 보고도 『규원사화』가 17세기에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인지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체 이 책이 쓰였다는 1675년이 언제인가? 강희제 14년이다. 강희 초년에 설치던 삼번의 난을 진압한 것이 2년 전인 1673년. 강희제의 위엄이 천하를 뒤덮고 있던 시점이다. 이로부터 8년 후에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는다. 이런 시점에서 청나라가 망한 뒤의 상황을 상상해서 조선과 힘을 합해 한족을 몰아낸다는 구상을 하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재주로 소설을 썼으면 성공했으리라.)

저 대목에서 보이는 "왜와 연합"이라는 대목은 또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북애자는 왜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왜倭는 바다 1만리의 크고 작은 섬에 제각기 살면서 유사시에는 쉽사리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무사하면 곧 순풍에 배를 몰아 마음대로 와서 노략질을 하니, 마치 마루 아래의 등에가 항상 골치인 것과 같다. 만약 우리가 항상 강하여 쇠퇴함이 없으면 곧 한나라 선비들을 눌러 그 땅에 군림하고 왜구를 배척하여 그 바다를 봉쇄할 것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주머니 속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배척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왜"인 것이다.

드디어 북애자의 "예언"은 이 지경에 이른다.

후세에 만약 강한 이웃이 있어 청나라를 이어서 일어난다면, 곧 반드시 우리의 임금을 협박하고 그 신하를 꼬여 이 땅에 군림하며 이 백성들을 노예로 부릴 것이다. 오늘날 안일함에 빠져서 우두커니 아무일 없이 있는 것이 어찌 뒷날에 주리고 춥다고 울부짖는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패하고 말 것이라고 내가 일컬은 것이 어찌 지나치게 과격한 말이라고만 하겠는가. 오호라 슬프도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다녀온 듯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당장의 강한 적은 청나라인데, 그 강한 적이 사라지고 난 뒤의 일을 예언하며 슬퍼하며 오버하는 것이 위의 말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규원사화』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내가 살펴보건대 인심은 분열되고 백성의 사기는 소침하니, 이에 붓을 던지고 길게 탄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오호라 환인桓因이여! 오호라 환인桓因이여! 지금의 한 조각 진역震域과 한 줄기 유민遺民은 장차 어찌될 것인가! 장차 어찌될 것인가!

초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범위를 넓게 설정해서 여진, 선비, 몽고, 흉노 등 동북아시아 제종족을 모두 우리 민족과 동족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진족의 금나라도 물론 우리 민족의 하나로 보고 아골타나 누르하치도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이런 초기 민족주의 사학의 영향이 『규원사화』 안에는 고스란히 들어있다. 공통점을 일일이 찾기도 어려울만큼 많은데, 『규원사화』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영향 관계가 『규원사화』로부터 민족주의 사학자에게 끼쳐진 것이라고 말한다. 17세기에 20세기 초의 사상이 깃들어 있어서 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싶다.

더구나 북애자에게 실질적인 문제는 성리학을 배격하고 상무적 기상을 기르는 것이었기에 그를 위해서 만주를 회복하고 자신이 허황되다 생각하는 성리학을 만든 한족을 무찔러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역설하지만, 그가 설정한 시대의 주인공이 (실제로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패망한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라는 문제에서 자가당착을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만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진족이 한족을 무찌른 것을 칭송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딜레마를 헤쳐나갈 방법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덧글

  • 푸른미르 2013/02/09 21:18 #

    옛날 사람들도 믿을 게 못되는군요~
  • 초록불 2013/02/09 22:02 #

    당연히...
  • 잠본이 2013/02/09 21:29 #

    저자가 여러명인데 편집을 개판으로 한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용이 널을 뛰는군요(...)
    게다가 시간을 달리기까지 하다뉘 OTL
  • 초록불 2013/02/09 22:03 #

    사실 그보다는 역사소설을 쓰면서도 흔히 겪는 문제인데, 과거의 인물인 척 하면서 현대의 사상을 이야기해야 하는 대목이 오면 굉장히 난감해지죠. 바로 그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 검은하늘 2013/02/09 21:36 #

    소설이든가, 미친 놈이 썼던가 인거죠?
  • 초록불 2013/02/09 22:03 #

    뭐, 글쓴이 자신은 우국충정이 넘쳐서 만든 거긴 할 겁니다.
  • bergi10 2013/02/09 21:36 #

    "17세기에 20세기 초의 사상이 깃들어 있어서..."

    뭐.. 그럴수도 있죠. ㅎㅎㅎ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겁니다.
  • 초록불 2013/02/09 22:04 #

    뇌라는 건 그저 열을 식히는 도구일 뿐이죠...
  • 야스페르츠 2013/02/09 21:55 #

    《규원사화》의 저자가 20세기 초반 사람이라고 한다면, 저 내용은 그야말로 중2병의 결정체가 되는군요. "내가 높은 자리에 있었으면 이렇게 안됐어!"라는 주장이니...
  • 초록불 2013/02/09 22:04 #

    정답입니다.
  • 엘레시엘 2013/02/09 22:25 #

    사실은 21세기 이고깽이 어쩌다가 판타지 세계가 아닌 17세기 조선에 떨어져서 보물과 드래곤하트를 갖다바칠 드래곤이 없으니 울분에 차서 정신승리로 싸지른 소설입니다. ...써놓고 보니 뭔가 설득력이...
  • 초록불 2013/02/09 22:27 #

    그러기에는 재미가 없어요... 재미가...
  • 零丁洋 2013/02/09 22:48 #

    북벌론이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현재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대청 복수의식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어떻게 이런 글이 당시에 가능했을까 이해하기 힘들군요.
  • 초록불 2013/02/09 23:57 #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위작인 거죠. 엄밀히 말하면 위작이라 할 것도 없는게 딱히 연대 표시를 한 것도 아니니...
  • 아인하르트 2013/02/10 05:30 #

    옛_사람의_허세_블로그질_.jpg(...)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 초록불 2013/02/10 22:57 #

    헛된 허세입니다...^^
  • 한도사 2013/02/10 09:55 #

    옛날에도 정신승리가 있었군요. 유구한 역사네요.
  • 초록불 2013/02/10 22:57 #

    유구하죠...^^
  • 부여 2013/02/10 19:16 #

    민족의 범위를 확대시키려는 설정은 언제나 개념적 정의인 '주'와 '종'을 설정해야만 하고, 그것이 뒤집힐 경우에 대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이 여기에 딱 걸린 케이스고요. 유교를 죽어라 까는 이들이 정작 유교적인 종법질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세계관 하나 구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아이고.
  • 초록불 2013/02/10 22:57 #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게 유교의 위력입죠.
  • 2013/02/10 23:5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2/10 23: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굔군 2013/02/12 07:52 #

    上之二年乙卯를 가지고 소설 한 편 써 보았습니다.

    http://kyonkun.egloos.com/2919933
  • 초록불 2013/02/12 10:08 #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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