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생각 *..자........서..*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누구나 그렇듯이 약간의 불안감은 가지고 있었다. 인원이 적은 곳일수록 성질 더러운 고참을 만나면 그만큼 더 고생문이 열릴 것이 뻔하니...

그런데 우리 부대의 왕고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었다. 부대 생활의 초반은 그렇게 쉽게 흘러갔다. 왕고는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으나 그 영향으로 후임 왕고도 그다지 빡세게 굴지 않았다. (다들 뭐하고 살는지...)

한 번은 전투체육의 날, 축구를 했는데 - 이것이 바로 여자라면 다 싫어한다는 군대에서 하는 축구 이야기...는 아니니 참고 읽어주기를 - 왕고는 운동신경이 나만큼 없어서 연속 개발을 날리고 그 우스꽝스러운 폼에 새파란 이병 주제에 킥킥 웃고 말았다. 후임 왕고는 - 이 양반도 나이가 꽤 들어서 군대를 온 케이스였다 - 우리(신병은 나와 동기 둘이었다)에게 꾸지람을 했다.

그러니까 본래 이 부대도 그렇게 당나라 군대는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그보다 엄청난 공포 분위기에 화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고 했다. 특히 왕고는 그 운동신경 덕분에 아주 심하게 얼차려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얼차려를 당하면서 왕고는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필요가 있는가, 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다들 당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자신이 "권력"을 차고 앉은 다음에 생각이 바뀌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바로,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나는 "요만한" 작은 일로도 그리 심한 수모를 당했는데, 너는 "이만한" 잘못을 했으니 그 정도 얼차려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여기서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나만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데?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마. 나한테 해꼬지를 한 그 놈은 아니지만,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너도 나중에 그러면 되잖아.

이렇게 되면 그저 악순환이 계속 될 뿐이다. 안 맞은 쪽 뺨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애꿎은 상대의 뺨을 때리지 않겠다고만 하면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게 인간이라는 게 서글프다.

그런 와중에 우리 왕고는 그것을 실천했다. 폭력의 악순환, 그 희생양을 자신으로 끝내기로 한 것이다. 군대라는 특성 상 이런 노력이 얼마나 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잘 해 주면 기어오르는 인간이 생기고, 그에 대해서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밖에 모르는 인간이 상관으로 앉아있을 수 있고, 그 때가 되면 좋았던 시절은 끝나게 될 것이니.

하지만 그것은 내가 없는 시간의 일일 것이니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무리일 터. 최소한 우리 부대는 내가 왕고를 마칠 때까지 선대 왕고의 희생을 통해 이룩한 평화가 유지되었다.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본전 생각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과 손을 잡으면 위험하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면서 과거를 가지고 이것은 괜찮아, 라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논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덧글

  • 아빠늑대 2013/02/26 01:22 #

    조금 다른 케이스가 있어서 소개해 봅니다. 부대에 고참이... '너무 잘났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삽질부터 시작해서 암기나 작업까지 척척 해내는 사람이었어요. 고참들은 좋아했죠. 문제는 후임이 들어오면서 부터입니다. 후임이 자기만큼 못한거에요, 그러다 보니 윗 선임들이 잘난 그 고참에 기준이 맞춰져서는 내리갈굼을 시작한겁니다. 큰 갈굼은 아니었지만 어쩄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고 그 잘난 고참은 자기 후임이 왜 그리 못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이 잘난 고참은 자기 후임이 게으름을 피운다고 생각했고 내리 갈굼의 특성상 아래로 갈수록 커져 버린 탓에 분위기가 살벌했죠. 제가 들어갔을 때 그 잘난 고참의 아래 아래 아래 기수였는데 (공군은 한달 단위인데 신설 비행단이라 윗 고참들은 각지에서 차출되었고 그러다 보니 차수폭이 커서 그 고참 상병일 때 제가 들어갔습니다)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지요.

    결국 후임 4명 중 3명은 못 견뎠는지 전출가거나 의가제대를 했고 한명이 남았는데 (가장 원흉) 이 사람이 병장되고 나서 결국 사고를 쳤죠. 하지만 부대 분위기가 그리 되었는지 그 잘난 고참은 몰랐을 겁니다, 제대했으니까요. 못나서 문제되는 경우도 있지만 잘나서 문제되는 경우도 있어서...
  • 초록불 2013/02/26 01:27 #

    부대라는 게 줄서기라서...^^

    제 고참 중 한 분은 대학원 다니다 온 분이었는데, 정말 행정병으로서는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만큼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책임감도 강해서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될만한 분이었죠. 하지만 누구도 그 분을 기준으로 잡지는 않았고... (사실 저는 좀 뺀질대는 타입이어서...) 그 분은 자기 일이 아닌 것까지 붙들고 해주었는데 - 그건 제대로 안 된 기안서류를 보면 본인이 괴롭다는 이유였으니...
  • Niveus 2013/02/26 01:24 #

    생각할만한 주제네요.
    ...제 후임이 딱 저 타입이었는데 -_-;;;
    제 선임은 저랑 1년 터울(..)이라 제가 오자마자 말년놀이를 해댔고 후임은 저랑 한달터울인데 처음에 선임이 있을땐 선임이 놀고먹는다고 불만이더니 선임이 없어지고 나니 전 무시하고 왕고놀이를 해대더군요(..)
    받은것보다 더 쳐먹겠다는거였는데 글을 보다보니 생각나게 됩니다.
  • 초록불 2013/02/26 01:28 #

    선후임 간격이 저와 같으셨군요...^^;;

    다행히 제 한달 후배(후임은 제가 부대 나올 때까지 안 왔고...-_-;;)는 그런 짓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 허안 2013/02/26 10:33 #

    나름 훌륭한 분이시네요. 초록불님도 훌륭하시고요. 제 후임들은 어찌볼지 모르지만 저도 나름 실천한 왕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후 사회생활하다보니 그게 잘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아직 미숙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초록불 2013/02/26 13:58 #

    폭력 추방은 언제나 좋은 겁니다. 잘 하셨습니다...^^
  • 가면대공 2013/02/26 11:56 #

    이 글을 읽고 오늘 저녁에 재입대하는 꿈을 꾸면 초록불님을 원망할 겁니다 ㅠ_ㅠ

    아참, 아이패드(16기가, 와이파이)를 구입했습니다. 뭘 주의하면 되고, 뭘 참고하면 좋은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 초록불 2013/02/26 14:01 #

    16기가면 동영상 같은 거 안 보시면 별 지장이 없을 겁니다. 전 음악도 안 담아다닙니다.

    유료 제품 중에 무료로 한시적으로 풀리는 게 있습니다. 이런 것들 찾아주는 앱들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불필요해보여도 일단 받은 뒤에 지워버리는 게 낫습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다시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이패드를 사셨으니... 확밀아를 까세요. 추천인 아이디는 45995 입니다...^^
  • 가면대공 2013/02/26 14:03 #

    아니-잇 ㅋㅋㅋㅋ
  • 초록불 2013/02/26 14:10 #

    어느 용도로 사신 건지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뭔가 창작 용도로 사신 거라면 한컴오피스(유료) 추천입니다.
    필기용 앱들은 무료는 한계가 있으니 유료로 사셔야 하는데, 유패드와 외국 제품이 추천할만한게 두 가지 있는데 - 기억은 안나네요(유패드를 유료로 샀기 때문에 다른 건 데모만 다뤄봤어요. 그런데 쓸만했음요).
    그냥 뷰어로만 본다면 한컴뷰어와 유료제품인 굿리더 추천입니다.
    프리젠테이션 용도라면 키노트는 반드시 사야하고요.



    게임용이라면 그냥 확밀아를... (먼산)
  • 가면대공 2013/02/26 14:24 #

    회사 업무 서브 모니터 겸, PDF 파일 교정 겸, 일기 겸, 창작 용도 쪼오오오금으로 구입 했습니다. 굿리더는 다들 추천하시군요. 확밀아는 서브를 돌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제 아이패드로만 해야 할 것인지 고민되는군요-_-; 그래서 오늘 은행으로 결제 카드 만들러 갑니다...........

    덧, 방금 생각났는데 새로 만들면 다른 아서 스토리를 볼 수 있군요. 좋은 변태신사력을 지녔다는 기교 아서라던가... 기교 아서라던가... 남자는 넷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으로 카드 배치가 되었다던 마법 아서라던가... 성 정체성 아서라던가... 그래도 마법 아서라던가...


  • 초록불 2013/02/26 14:25 #

    서브를 돌리면 나름 편하긴 하지만 - 내 각성 못 잡을 때 서브에 저장된 물약 동원해서 화력 집중...-_-;;

    아이패드가 서브라면 마음이 아플 듯 하네요. 화면이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라는 건 노안인 내 경우에만 해당되는 걸까요?)

    PDF 교정용이라면 굿리더 구입은 확정입니다.(이 앱은 아이폰/아이패드 별도 판매에요) 제가 실제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기 용도로는... 일기 앱들도 여럿 있지만 그냥 블로그 활용하는 것이... 그리고 블로그용으로는 제가 지금 쓰는 유료어플 Blooger+가 이름이 바뀐 걸로 알아서 추천하기가 어렵군요.

    드롭박스 꼭 설치하시고요. - 이게 있으면 아이패드를 유선으로 연결할 필요가 10% 이내로 줄어듭니다. 전 사실 언제 연결해봤는지 기억도 안 나요.
  • 가면대공 2013/02/26 14:45 #

    물약동원화력지원이라니....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현명하십니다.
    집에 있는 모니터가 좋다보니, 회사 모니터는 좋은 건 아니지만 문서 작업 할 때 동시에 다른 거 검색하거나 자료 보면서 입력할 때.... 확실히 저도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위력에 놀라곤 합니다. 정말 좋긴 하네요.

    일기 부분은 참고하겠습니다. 드롭박스 설치는 당연한 거더군요. 주변 지인들이 가장 먼저 깔아줬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