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쇠말뚝 이야기 *..역........사..*

쇠말뚝 때문에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다는 이야기.

누가 처음 했을까요?

현재까지 발견한 바로는...

정조대왕님이군요...-_-;;

정조 21년(1797) 6월 24일의 일입니다. 정조는 우의정 이병모(1742 ~ 1806)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 인재가 점점 옛날만 못해지고 있소. 명나라 초에 도사 서사호徐師昊가 우리나라에 와서 산천을 구경했는데, 단천(함경남도) 현덕산에 이르러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다섯 개의 쇠말뚝[鐵杙]을 박아놓고 떠났으니 북쪽에 인재가 없는 것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오."

이 현덕산이 어떤 산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현재의 단천시는 마천령 산맥이 지나는 곳으로 높은 산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제일 끝에는 백두산이 있고요. 북청 쪽 경계로 검덕산이 있는데, 이게 혹시 현덕산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도사 서사호는 『고려사』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공민왕 19년(1370) 4월에 명나라 황제가 파견하여 고려에 온 인물입니다. 명태조 주원장이 자신의 덕을 고려의 산천에도 고하겠다는 뜻이었죠. 공민왕은 서사호가 압승술(전 포스팅에서 나왔지요? 주술로 화복의 기운을 내리누르는 것입니다)을 쓸까 두려워 마중나가지 않았습니다. 즉, 이 시기에도 이미 이런 풍수적 미신이 있었던 거네요.

서사호는 비석도 하나 세우고 갔는데, 비석에

"신령께서는 이 제물을 흠향하시고 반드시 고려국왕을 잘 보호해 대대로 그 강토를 보전하게 해 주시며 절후에 맞추어 풍우를 내려 줌으로써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안정을 누리게 해 주소서."

라고 고려의 안녕을 기원했으나 22년 후에 고려는 멸망하고 마니 아무 소용이 없었던 거네요.

그런데 정조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서울에 내려온 맥은 삼각산이 주장이 되는데, 과인이 듣기로 수십년 전에 북한산성 아래에 소금을 쌓고 그 위를 덮은 뒤 태워서 소금산[鹽山]을 만들어 맥을 멈추게 하였으니 서울에 인재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 아니라 할 수 있소?"

그리고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말이 비록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이치로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소. 그렇다면 그 소금산을 헐어버리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겠소."

그래서 소금산을 헐어버리려고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수십년 전이라고 해봐야 이미 정조 21년... 그렇다면 영조 때 누군가가 이런 일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누가? 왜?

이런 당연한 의문을 이병모는 제기하지 않고 그냥 대뜸 찬성의 발언을 합니다.

"이것 또한 천지의 도를 도와주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단서는 개뿔...-_-;;

하지만 이병모의 말에 고무된 정조는 조심태(1740 ~ 1799)를 불러들입니다. 정조의 오른팔 격인 무관이죠.

"소금산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조심태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름은 안 나오지만 다른 이들도 불러다 물어본 모양입니다만 다들 본 적이 없다고 하는 통에, 소금산을 헐어서 인재를 구하겠다는 정조의 원대한 꿈(?)은 실현되지 못합니다. (정조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것입니다.)





[추가]
가끔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아하, 그래서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는 거구나"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어이 가출로...

덧글

  • Niveus 2013/03/17 23:29 #

    ...전날밤 술을 너무 과하게 드셨던가!!! OTL
  • 초록불 2013/03/17 23:31 #

    그런데 우의정 이병모는 이 전에 함경도 관찰사였기 때문에... 서사호 이야기를 들려준 인간이 이병모일지도... (먼산)
  • 셸먼 2013/03/17 23:46 #

    얼마나 눈에 차는 인재가 없었으면 저런 것까지 탓했겠습니까(...)
  • 초록불 2013/03/17 23:56 #

    그 심정 이해는 갑니다만...
  • 파랑나리 2013/03/17 23:57 #

    쇠말뚝 떡밥이 사실은 뿌리가 깊은 설화군요. 이 설화의 원형은 언제 어떤 이야기였을까요?
  • 초록불 2013/03/17 23:59 #

    원형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중국 쪽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파랑나리 2013/03/18 00:09 #

    이거 원조는 중국설화인가요?
  • 초록불 2013/03/18 00:11 #

    그런 것 같습니다. 찾아보지 않았으니 확언은 할 수 없습니다.
  • 零丁洋 2013/03/18 00:15 #

    현재 기호지방 그렇게 풍수에 집착하지 않는데 영남은 다소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미신이라고 하나 그래도 풍수가 좋은 곳이 좋더군요.^^
  • 초록불 2013/03/18 00:15 #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서울이 가장 심한 것 같습니다만...
  • LVP 2013/03/18 00:15 #

    이래서 암염광산이랑 소금공장(=소금산) 화재예방이 졸라 중요합니다...엏!? (!?!?!?)
  • 초록불 2013/03/18 00:15 #

    암염광산에 특히 화재예방이 중요한가요?
  • 零丁洋 2013/03/18 00:24 #

    지맥을 끊는다는 말은 사기 몽염전에 처음 등장하는 것 같은데 땅을 다치게 했다는 의미지 그로인해 사람이 다쳤다는 주장은 없어보입니다.
  • 놀자판대장 2013/03/18 03:22 #

    사실 그 소금산은 고산국의 소금산!
  • 2013/03/18 04:1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뚱뚜둥 2013/03/18 07:02 #

    LVP님의 덧글에 사족을 답니다.

    암염광산의 경우에 화재예방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석탄광산의 경우에 나무를 이용해서 광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하고 있습니다. 암염광산도 마찬가지로 나무를 이용해서 지지대를 만들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할수 밖에 없습니다.
    지하에서 작업하다보니 횃불은 필수고 여기저기에 나무가 널려있으니 불이나기 쉬운 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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