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손 살해 사건 (전편) *..역........사..*



조선 중종 23년(1528). 삭풍이 불어대는 압록강변의 1월 24일.

만포진첨절제사(이하 첨사라 함) 심사손이 야인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이 일로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힙니다. 심사손은...

좌의정 심정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죠. 조선 중종 때를 대표하는 간신 중의 하나로 흔히 남곤과 함께 거론되는 그 사람입니다. 아무튼 이때, 심정의 권력은 정점을 찍고 있던 터라 그런 중신의 아들이 살해되었으니 발칵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죠.

심사손은 스물다섯에 급제해서 승문원 근무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하여 홍문관 직제학의 자리에 있다가 당상관으로 승진하면서 변방을 지키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첨사는 종3품의 직책이지만 만포와 경상도의 다대포는 그 중요성 때문에 정3품 당상관으로 임명했거든요. 이때 나이는 불과 서른여섯.

그럼 대체 어쩌다가 이런 고관이 야인들의 손에 죽게 되었을까요?





이 무렵 압록강변은 계속 소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변방을 다스리기 위해서 문치의 국가인 조선답게 문신 중에 무예가 뛰어난 자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그래서 심사손이 뽑혔던 거죠. 1525년에 심사손이 부임했는데, 그 전해인 1524년에 조선 장수 이함이 허공교(평북 자성군) 전투에서 전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때도 야인들의 목표는 첨사였습니다. 이함을 첨사로 오인해서 추격했던 것이죠. 이런 일로 기세가 오른 야인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학문이 깊은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이 허약한 나라로 여겨지지만 이 시기에도 여전히 조선이 갑이고 야인은 을인 상태였습니다. 국경을 순찰하면서 야인을 발견하면 "사냥"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노약자를 붙잡아가는 일도 있었고, 심하면 야인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때도 사냥을 나온 야인을 공연히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오거나 약탈을 하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방어 차원에서 응징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사냥을 나온 사냥꾼을 무단히 살해하는 일은 공분을 불러일으킬 뿐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이 발생한 상태였고 야인들은 공공연히 복수를 하겠다고 분노를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심사손에게도 이런 첩보가 당연히 들어왔지만 그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삭풍이 부는 동네인지라 당연히 땔감이 늘 필요했기에 심사손은 땔감을 구하기 위해 꽁꽁 얼어붙어 있는 압록강을 넘어갔습니다. 강 건너에 자라는 모과나무를 베러 갔답니다. 이런 일은 첨사가 직접 감독할 일이 아닌데도 심사손은 이런 면에서는 솔선수범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죠.

부하 70여 명을 데리고 넘어간 심사손은 땔감을 구해오라 하고는 자신은 만포조방장 송인강과 군관 이엽, 김중견과 함께 쉬고 있었습니다. 이때 심심해서 약주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적지로 들어간 대장이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니, 그야말로 날 죽여줍쇼 하는 격이었죠.

만포 첨사를 노리고 있던 야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1백여 명이 달려들었죠. 달랑 장수 넷밖에 없는 상황. 주변에는 군인은 없고 데려간 노복들만 몇 명 있었습니다.

심사손은 활을 잡고 응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막을 수 있다! 쏘아라!"

하지만 1백여 명(이 숫자는 나중에는 2백여 명으로 불어납니다)이 칼과 도끼 등을 들고 달려오는 모습에 기겁을 한 조방장과 군관들은 얼른 말을 잡아탔습니다. 이들은 나무하는 일을 감독하러 온 것으로 변변한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이것이 그들을 더 두렵게 만들었죠.

"어딜 가느냐! 응사하면서 버티면 된다!"

노복들도 재빨리 나무 덤불 사이로 몸을 숨겼는데도 심사손은 달아나는 군관들에게 돌아오라고 외쳤죠. 하지만 이미 공포의 날개를 단 군관들이 그런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심사손도 말 위에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술이 과도했는지 등자에서 미끄러지면서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었죠. 심사손은 말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결국 그 덕에 붙잡히고 말았죠. 심사손이 적들에게 둘러싸이는 통에 만포조방장 송인강은 무릎과 얼굴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야인들을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야인들은 심사손을 에워싸고 옷을 벗으라고 말했습니다. 옷에 피묻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훌륭한 전리품이니까요. 심사손은 흩어져있는 군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자신을 구원하러 오리라 생각하고 천천히 옷을 벗습니다. 하지만 벌거벗을 동안 아무도 구원을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수풀 속에 숨어있던 심사손의 하인 하나가 목격해서 알려졌습니다.

이때 달아난 심사손의 하인 중 하나는 진영으로 뛰어들어 위급상황을 알렸지만 장교들은 출동이 늦었습니다. 이들이 출동하여 간신히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심사손은 이미 살해된 뒤였죠. 그나마 나무를 하러 갔던 군관 김자례, 홍계종, 박성손 세 사람이 심사손의 위기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어서 시신의 훼손만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송인강 등이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심사손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송인강은 달아나서 비상을 걸고 복수를 하겠다며 다음날 출동하죠.

순천군수 안종탄, 고산리 첨사 유개, 강계 판관 변명윤, 창주첨사 이예간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넙니다. 이들은 적의 부락까지 도달하지만 눈비가 심해지고 적들을 찾기 어려워 회군하고 맙니다.

조선에서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큰 일이었습니다. 관련된 군관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고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야인들은 살인범의 아비를 묶어와 사죄하기에 이르죠. 그리고 십수 년이 흐른 인종 1년(1545)에 살인범 이아장합을 찾아내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로 처벌을 받은 인물 중에 뜻밖의 인물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덧글

  • 러움 2013/04/18 09:07 #

    앗 한참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데 다음편에;;ㅋㅋㅋㅋㅋ 으익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압록강에서 알몸..ㅠㅠ..... 어휴 칼맞기 전에 얼어죽겠어요;
  • 초록불 2013/04/18 09:52 #

    감사합니다...^^

    쓸 이야기는 다 정해져 있는데, 상중하가 될 지, 상하와 외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상중하가 되어도 외전은 외전대로 들어갑니다...^^;;) 어쩌면 외전이 제일 길지도...
  • 맘판 2013/04/18 14:31 #

    당상관으로 승진하면서 변방을 지키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첨사는 종3품의 직책이거든요.

    종삼품이면 당하관일텐데요.

    통정대부 - 정삼품 상계 - 당상관
    통훈대부 - 정삼품 하계 - 당하관

    이게 경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초록불 2013/04/18 14:51 #

    아, 제가 잘못 썼네요. 첨사는 원래 종3품으로 당하관이 맞군요. 그런데 만포첨사는 그 중요성을 인정해서 정3품이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 먹통XKim 2013/04/18 20:51 #

    아..심정이라면 나중에 사약을 먹지 않나요? 오래전 심정의 아우인 심의가 쓴 소설이었나...고전 문학이 있었는데, 거기 설명글을 보니 남곤과 심정이 하루는 집에 와있는데 갑자기 심의가 문을 열더니만 외치길"야!이 소인배놈들아! 또 누굴 죽이려고 작당질하는 거냐?!"

    남곤은 어이없어서 멍때렸는데 심정이 아무렇지않게

    "대감,우리 아우님은 그만 실성하여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심의는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척 한 거였고 하루는 형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형님, 자꾸만 사람을 계속 죽이시는데 그래봐야 돌고 도는 법이오. 그러다가 형님과
    일가가 모두 죽을 수 있소.그러니 그만하시오."

    심정- "아우님은 그대로 미친 척하시게. 이미 이 몸은 돌이킬 수 없다네."

    심의- "그러면 형님도 나처럼 미치면 되지 않소!"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역사가 전해지는 대로 심정에 대하여 잘 아실테고 심의는 미친 늠이라 하여 그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하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 초록불 2013/04/19 09:53 #

    전해지는 야사지요.
  • 2013/04/19 11:5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19 22: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먹통XKim 2013/04/22 21:06 #

    으음..역시나 야사였군요.
  • 초록불 2013/04/22 21:19 #

    이 이야기는 야사가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예요...^^
  • 다정이 2014/04/27 12:29 #

    재미지네요.ㅋ
  • 초록불 2014/04/27 14:30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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