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손 살해 사건 (후편) *..역........사..*



조선 후기에 쓰인 한문소설 중에 『백거추전』이라는 게 있습니다. '추'의 한자가 秋라서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백거추鰍와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 오타는 흔한 것이고, 두 사람의 시대가 모두 조선 중엽으로 같은 것과 무과에 급제한 인물이라는 점도 동일하기 때문에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내려오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백거추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백거추가 추노를 하여 재산을 압수하여 서울로 돌아오다가 어느 깊은 산속을 지나갈 때 해가 졌습니다. 머물 데가 어디 없나 싶은데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고래등 같은 집으로 안내를 해줍니다.

집이 호사스럽고 음식도 진수성찬이 나온데다가 하녀들도 천하절색. 더구나 그 중 하나를 골라 밤시중까지 들게 해줍니다. 그런데 백거추의 밤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는지(이런 이야긴 없다고!) 여자가 "아깝다"며 한숨을 쉬는 게 아닌가요. 뭐가 아깝냐고 하니까 대단한 인물 같은데 오늘 죽을 거니 아깝다면서 여기는 사실 도둑 소굴이고 여자들도 모두 양가집에서 잡혀온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무술 실력 하나는 자신있는 백거추는 무기도 없이 나가서 졸개 하나를 때려눕히고 칼을 빼앗아 집안을 도륙칩니다. 두목을 쓰러뜨리고 쌍검을 휘두르니 당할 자가 없습니다. 결국 모든 도적을 죽여버린 뒤 도적의 창고를 털어서 잡혀온 여자들에게 한 재물씩 주어서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같이 잔 여자가 첩으로 삼아달라 애걸하지만, 양가집 처자를 어찌 첩으로 두느냐며 여자의 집까지 안전하게 호송. 부모에게는 비밀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하고 적당한 남자를 골라 시집보내라고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전개냐?)

아무튼 이 소설의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백거추는 무과에 장원급제했다. 이후 여러 번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명성이 나라 안에 널리 퍼졌으므로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조차 백거추의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이 소설이 실려 있는 책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책"이 그 이름인데요, 우리말이 아니고 한자입니다. 『利野耆冊』... 책 이름 참...

번역본으로 이 책을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책이니 이런 무협담에 흥미 있는 분은 한 번 보세요.

기인과 협객 - 10점
박희병.정길수 엮음/돌베개


자, 이미 전편을 보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바로 이 백거추가 심사손과 관련이 있습니다.

백거추의 무술 실력이 특출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심사손도 백거추의 그런 재주를 사랑해서 특별히 총애했습니다. 심사손이 나무를 하러 간 날 백거추는 몸이 아파서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심사손이 변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종 하나는 만포 병영으로 달려와 위급을 알렸습니다. 백거추는 활과 화살이 없다고 말해서 하인이 얼른 챙겨주었으나 가다가 다시 돌아와 배가 고파서 못가겠다고 말하는 통에 여종이 살 한 되와 약과 대여섯 개 등을 챙겨주었습니다.

심사손이 사고를 당한 때는 사시巳時였습니다. 조선 시대의 이 시간 단위는 두 시간이기 때문에 사시라 함은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죠. 보통 이렇게 쓰지만 오전 10시경이라 이해해도 됩니다. 그리고 종이 달려와 알리게 되는데 이때 걸린 시간을 한 식경食頃 걸렸다고 합니다. 한 식경이라 함은 약 30분을 가리키죠. 즉 사고지점에서 진영까지는 달려서 30분 정도 거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을 달려서 간다면 당연히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지요.

종이 알린 시간은 아직 사시가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백거추는 활을 가져오라는 등 시간을 허비하다가 오시(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움직였습니다. 활을 챙겨서 나갔다가 다시 한 식경만에 돌아와 먹을 걸 달라고 했다죠.

심사손의 시체는 성 밖 1리 지점에 있었다고 합니다. 1리면 4백 미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까운데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일까요? 저 성 밖이라는 것은 압록강 건너를 잘못 쓴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1리라면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인데 한 식경을 나가 있던 백거추가 시신을 못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이 사건의 증언은 각각 이런 루트에서 나왔습니다.

(1) 평안도 병사 정윤겸의 증언
정윤겸의 증언은 처음으로 사건을 보고한 최초 보고서에 나오는 것입니다. 야인이 말을 타고 달려와 첨사는 그곳에서 즉사하고 조방장 송인겸은 무릎에 화살을 맞았다라고 했습니다. 현장에 없던 희천군수 등이 등장하는 등 부실한 증언(송인겸은 나중에 화살을 맞았다는 말은 없고 칼에 얼굴을 맞았다고 합니다)이지만 심사손이 현장 근처에서 바로 살해당했다는 정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2) 현장에 있던 송인강의 증언
송인강은 적들이 나타나자 말 없이는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허둥지둥 말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 심사손은 두 번이나 말에서 떨어져서(흔히 하는 농담처럼 곰에게 안 먹히는 방법은 친구보다 빨리 뛰는 거죠) 야인들에게 붙잡히고 마는데, 잠깐 같이 말을 달리다가 양편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심사손은 서쪽으로 송인강은 동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송인강은 적들이 20여 보 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1보는 대강 1.5미터를 가리키므로 20여 보라면 30미터 전방에 적들이 돌연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위치는 강에서부터 5백 보 쯤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6백 미터 정도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거기서 50보를 강쪽으로 달아나다가 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즉 강에서 54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해된 것입니다. 앞서 1리는 400미터라 했으니 대강 백거추가 시체를 발견한 곳과 일치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이때 송인강도 적에게 칼을 맞는 등(활을 맞았다고도 하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송인강은 몸을 뒤로 돌려 활도 한 번 못 쏴보고 죽어라 달아났는데, 이때 수호군관이 달려오기에 자신도 달려가서 적들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 수호군관이 누구였는지 송인강의 증언에 나오질 않습니다.

심사손은 말에 오르다 두 번 떨어졌다 했으니 어떻게 송인강과 같이 달아날 수 있었을까요? 송인강은 일찌감치 달아난 것으로 보는 게 맞겠죠. 같이 있다 달아난 다른 군관들은 잘못했다고 했는데 송인강만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겁니다.

더구나 송인강은 첨사가 살해된 뒤에야 공을 세워 죄를 면하려고 바로 추격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 백거추의 행적에 대한 부분과 일치하는데, 조정에서는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음날 이웃 고을의 병사들과 함께 진격하였고, 그나마 공을 세우고자 욕심을 내서 무리하게 군사들을 적지 깊숙이 내몰게 되는데, 이것을 다른 지휘관이 반대해서 대패를 면할 수 있었음이 뒤에 밝혀집니다.

송인강이 달아난 것은 사실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재빨리 달아났다면 심사손도 목숨을 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사손은 싸우려고 들었고, 아마 송인강 등이 싸움을 선택했다면 몰살 당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갖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좀 그렇군요.

(3) 심사손의 하인 증언
심사손의 옷이 벗겨졌다는 것과 강변에 있던 군사 셋이 고람을 지르며 달려왔다는 증언은 심사손의 하인인 천동이 증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최초의 보고에서는 아무도 심사손을 구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갑자기 세 사람의 군사가 심사손을 구원코자 했던 것으로 바뀐 것이죠.

이 종의 증언 중 뒷부분의 것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정은 자기 집 종이 목격한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이라는 점을 말미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세 명의 군관 중 김자례는 거짓을 고한 죄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이 증언에는 허점이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송인강의 증언대로라면 말을 타고 쫓긴 순간부터 되돌아선 순간까지 그 거리가 기껏 5~6백미터 왕복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과 몇 분 사이의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때 김자례 등이 구원한 것은 심사손이 아니라 송인강이었을 것 같습니다. 송인강은 압록강변까지 도망쳤고 그곳에서 군관들을 만난 것이겠죠.

그리고 이들은 그 뒤에 백거추와 만나 시신을 회수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심사손은 백거추 말고도 이추라는 친척도 가까이 두고 아꼈는데, 이추도 사고가 터졌을 때 병기를 나눠줘야 한다며 출격하지 않다가 나중에 나가, 심사손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오기만 했습니다.

백거추는 초반에는 말발굽을 갈아 끼운다는 핑계를 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애초에 심사손이 시켰던 일로 변고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중지했던 일이었습니다. 왜 처음에는 백거추가 말발굽 핑계를 대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나중에는 백거추가 활을 달라, 먹을 걸 달라 하는 것으로 지체했다고 이야기가 바뀌었을까요?

중종이 한 말에 이 변경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 계본을 보니 지극히 놀라운데, 전일의 원계채(元繼蔡)의 계본과는 매우 다르다. 원계채의 계본에는, 말굽에 편자를 붙이느라 지체되었다는 일들을 모두 해명했기 때문에, 그의 죄를 그렇게 논하여 정했던 것이다. 지금 이 계본에는, 진무(鎭撫)와 관비(官婢)들이 모두 이미 승복(承服)하여 고의로 지체한 상황이 판연(判然)해졌으니, 지극히 과오(過誤)가 심한 짓이다. 전후의 두 계본이 너무도 서로 같지 않으니, 생각건대 원계채가 분명하게 추국(推鞫)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어느 계본을 따라야 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이 계본을 병조(兵曹)에 머물러 두고서 귀일(歸一)되기를 기다렸다가 정죄(定罪)해야 한다."

말발굽 문제로 지체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벌이 낮은 것(낮아봐야 장 100대에 충군형)이지만 고의로 지체한 것이라면 이건 중죄이므로 벌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증언이 바뀐 일에 관계된 사람이 모두 심정 가문의 종이라는 사실은 찜찜하게 보입니다. 심정이 죽은 아들에 대해서 백거추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심사손이 활을 쏘아 적병 하나와 말 하나를 맞췄다는 이야기도 사건이 벌어지고 몇 달 후에 이야기가 나오는데, 말을 탄 적병이 쇄도하는 가운데 활을 최소한 두 방 이상 놓고 말을 타려다 두 번 떨어지는 등의 일이 가능할지 좀 의심스럽습니다. 더구나 심사손은 술이 취한 상태였다고요!

물론 송인강은 심사손이 활을 쏘았는지 어쨌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송인강과 군관이 주장을 보호하지 못한 죄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장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참작의 여지는 있겠지요. 그리고 백거추의 경우는?

이들의 사면복권은 6년 후에 이루어집니다. 그만 용서해달라는 정승들의 주청으로 중종이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마지못한 듯 들어준 것입니다. 사면이 되자 사간원에서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상소가 올라옵니다. 이에 대한 중종의 답변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인강의 일은 내가 죄입을 당시의 전말을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인강은 본디 조방장(助防將)으로 만포(滿浦)에 간 것이니 실상은 군관(軍官)의 예가 아니다. 심사손(沈思遜)이 취하여 말을 탈 수 없었으니 인강이 혼자서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조정은 인강을 중죄인이라 하였고 심정도 분개하여 아뢰었으므로 형벌을 매우 많이 받아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마침내 충군(充軍)하는 것으로 정죄했다. 인강은 군관에 비해 죄가 실상 차등이 있고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지금 상언을 인해 특명으로 방면한 것이니, 윤허하지 않는다."

중종은 이 당시에 이미 송인강의 죄가 과하게 가해졌음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 실세인 심정이 노발대발하고 있으니 그냥 그 말을 들어주었다는 거죠. 심정은 1530년에 몰락하여 1531년에 12월에 사사됩니다.

심사손의 살해사건 이후에 문관은 만포첨사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군요.




백거추는 이후에 한성부 훈련원 참군을 지낸 모양입니다. 정7품으로 그리 높은 지위는 아닙니다.

이 백거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백거추에 대한 남은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Niveus 2013/04/20 23:45 #

    다시금 다음 이시간에!?
  • 초록불 2013/04/21 00:25 #

    장담할 수 없습니다...^^
  • windxellos 2013/04/21 13:40 #

    '利野耆冊'이라니, 이두보다 직관적이라 보기 좋네요.(어이)

    그나저나 힘있는 집 자제가 피해자가 되면 그 목숨값이 더 크게 계산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역시나 다를 바가 없군요.
  • 초록불 2013/04/21 22:47 #

    인류의 유구한 법칙인 것 같습니다...^^
  • 2013/04/21 22: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21 22: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22 03:2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22 08: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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