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와 하수 *..만........상..*



바둑에 한참 재미를 붙일 때였다.

마침 지방에서 올라와 우리집에서 대학을 다니던 사촌형이 3급을 두고 있어서 바둑을 배울 수 있었다. 바둑에 흥미가 당긴 나는 형을 볼 때마다 한 판 두자고 했는데, 형은 나와 바둑을 두는 걸 그리 즐기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촌형도 바둑을 꽤 좋아해서 기원에 나가서 둘 때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너무 하수였다는 데 있었다. 사촌형은 이런 말을 했다.

"하수랑 자꾸 두면 수가 줄어."

바둑은 꽤나 치열한 머리싸움이다. 자신과 비슷한 능력의 상대와 만나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런데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하수와 만나면 그렇게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최선을 다 할 필요없이 상대가 실수하기만 기다리면 된다. 심지어 실수를 유도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것이 바로 "꼼수"다.

꼼수를 두어도 하수는 눈치를 채지 못한다. 고수는 점점 머리를 쓰지 않게 되고 꼼수를 던져서 쉽게 승리를 낚으려고 하게 되는데, 이게 버릇이 붙으면 동수와 붙었을 때도 그만 꼼수가 나와버리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도 이렇게 되면 대번에 그 게임을 망쳐먹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하수와 맞붙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어디 바둑에만 일어나겠는가.

전문 분야의 일을 너무 모르는 사람과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설명하기 쉽게 비유를 들거나 상황을 지나치게 간단하게 축약해서 이야기해주면 탈이 나는 경우가 있다. 꼼수가 사단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공부해서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에 부딪치면 꼼수에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문제는 그 사람을 납득시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 경우에 발생하는 새로운 상황이다. 술자리에서 말로 나누는 이야기야 상관이 없다. 그것은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글로 써놓은 경우는 문제가 달라서 그 글의 문구에만 매달리는 사람이 등장해서 말하게 되면 새로운 문제가 된다. 이 점을 생각하다보면 인仁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마다 다르게 설명한 공자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그 사람에 맞춰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글은 그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고수의 글쓰기란 이래서 어려운 것 같다.

덧글

  • daswahres 2013/04/29 00:12 #

    그래서 의사들은 지금도 고민,고민하고 있지요.
    이걸 설명하자니 '환자 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을까...', 또 설명을 안 해주자니 불친절로 찍히니 이걸 우짜면 좋나..라는 딜레마에..ㅋㅋㅋㅋ
  • 초록불 2013/04/29 23:35 #

    사람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라 한층 더 그렇겠습니다.
  • leestan 2013/04/29 07:28 #

    우와 진짜 엄청 공감됩니다.
    저희 쪽 같은 자연과학 분야도 소위 저런 '꼼수'식 설명이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정확한 디테일을 이야기하자니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되고, 적당한 줄타기식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있지요. 간혹, 정말 어려운 개념을 명쾌히 설명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초록불 2013/04/29 23:35 #

    네, 정말 알고 있다고 해서 다 설명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 고지식한 루돌프 2013/04/30 15:21 #

    그렇습니다... 저도 주제에 동양사학과 학생이란 이름을 가진 바람에 가끔 사람들이 그런걸 물어보면 곤란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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