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있어서의 민족주체성 *..역........사..*



첫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각 지역의 민족의 형성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랜 것이지마는, 민족의식이나 민족관념은 그 민족 형성 뒤에 오는 것이며, 특히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양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진출의 결과로서 그 자극을 받아 발생 내지 발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까닭은 주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민족주의가 서양의 근대近代와의 접촉에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결과로 우리의 오랜 역사적 전통 속에서 민족주의의 근원을 찾고, 또 민족적 주체성의 기원을 찾으려고 하여, 우리의 역사와 전통 자체를 그릇되게 이해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찾으려고 하는 민족주의 또는 민족 주체성을 올바로 찾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쉬운 것이다.

민족주의가 서양근대와의 접촉에서 또는 서양의 근대를 본딴 다른 이웃나라와의 접촉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시아의 민족적 자각은 서양에 있어서와 같이 우리가 근대문명 - 물질문명을 포함하여 - 을 즐기고, 또 서양에 있어서와 같이 인권과 자유를 확립하려고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배타적인 국수주의에 빠지게 되며, 우리가 남에게서 배워야 할 것을 솔직하게 배우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우리가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일 때에, 저들의 근대 문명에는 많은 결점이 부수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점도 동시에 도입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결점 때문에 많은 장점이 있는 서양 문명 자체를 배척한다는 것은 명백히 그릇된 태도인 것이다. 민족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이와 같이 외부로부터 문화를 수용하는데 있어 그 판단을 그르치게 할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전체주의로 흘러가기 쉬우며, 따라서 인권과 자유의 확립에 역행하게 되는 것이다.

- 전해종, 아시아에 있어서의 민족주체성, 1971년 11월 '동남아시아 기독교지도자회의'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








이로부터 몇 년 후에 배타적 국수주의이자 전체주의의 결정체인 유신에 돌입한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일종의 아찔한 예언 같이 보인다. 본 김에 전해종 선생님 글 한 대목을 더 보자면...



중학교의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려고 하는 논의가 이따금 문교당국으로부터 흘러나온 일이 있지만, 이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동양사와 서양사는 물론 한국사에 대해서도 매우 불충분한 것이며, 더우기 편파된 방향으로 그릇되게 이끌어질 우려가 많다. - 전해종, 한국사학계의 동향, 1971년 6월, 전국역사학대회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



하지만 이런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1974년 국사는 국정교과서가 되어 전국에 배포되었다.

덧글

  • 네리아리 2013/05/06 11:02 #

    어라???? 기독교지도자 회의??!?!?! 이거 흥미롭네요?!
  • 초록불 2013/05/06 15:08 #

    뭐, 기독교와는 별 관련이 없었을 겁니다.
  • 스피노자의 정신 2013/05/06 17:52 #

    저런 분이 계셧군요.....
  • 초록불 2013/05/06 17:59 #

    동양사에서는 매우 유명한 분입니다...^^
  • 잠본이 2013/05/06 20:44 #

    언제나 선각자는 외로운 법이군요(...)
  • 초록불 2013/05/07 09:40 #

    유사역사학자들에게 갈굼도 제일 먼저 당하신...
  • 객관적진리추구 2013/05/06 22:14 #

    전해종 교수님은 나이 엄청 많으신 분으로 알고있어요...본격적으로ㅡ알게된것이 초록불님께서 유사역사학시리즈의 동이관련 포스팅이었지요 ㅎㅎㅎ동이전의 문헌적연구 쓰신분 아닌가요???
  • 초록불 2013/05/07 09:40 #

    몇 년전에 구순이셨으니...

    제목이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 맞을 겁니다.
  • draco21 2013/05/07 10:19 #

    혜안이시네요. 무시무시한....
  • 초록불 2013/05/08 09:54 #

    이 글들을 이제야 보긴 했지만, 제가 공부한 학맥이 어차피 이 계통이라 매우 익숙하게 들리는군요.
  • 零丁洋 2013/05/07 16:48 #

    민족 주체성?

    근대화를 위해 시민동원에 매우 유용한 것이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민주주의를 해치는 즉 시민을 힘들게 하는 칼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13/05/08 09:54 #

    그렇습니다.
  • 고리아이 2013/05/08 00:15 #

    마거릿 맥밀런은 '민족적 국수주의'로 표현하더군영
    _≪역사사용설명서: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권민 옮김, 2009, 25쪽^_^))
  • 초록불 2013/05/08 09:54 #

    좋은 책이죠. 저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 고리아이 2013/05/08 11:37 #

    저는 의정부정보도서관에서 지난 주에야 만났습니다영^_^))
  • 채널 2nd™ 2013/05/08 00:41 #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셨군요. 초등/중등/고등 교육까지는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ㅎㅎ ;;;


    민족의 개념이 없었다는데, 왜란이랄까 호란같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궁금합니다.

  • 초록불 2013/05/08 09:53 #

    "아시아에 있어서 각 지역의 민족의 형성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랜 것"이고, "특히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으로 민족과 민족주의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 레드칼리프 2013/05/12 21:11 #

    이제라도 다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국사교과서를 만날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ㅜ.ㅜ
  • 초록불 2013/08/02 13:04 #

    점점 더 나아지겠죠.
  • 샤먼 2013/08/01 13:58 #

    이 글을 보고 관심이 생겨 찾아봤더니
    지금 국사교과서는 '한국사'로 되어 검정교과서가 돼었더군요.
    저때만해도 국사 국정교과서로 배웠었는데 아마 8차교육과정에서 바뀐듯 하네요.
    다만 요즘의 국사 필수 교육론에서 등장하는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이 또다른 국정교과서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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