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고문 - 형문 *..역........사..*



조선 시대에 용의자를 잡았는데, 그가 죄를 실토하지 않으면 제일 먼저 가해지는 고문이 "형문刑問"이었습니다. "형문"은 "형신刑訊"과 거의 같은 말인데, 형신은 형문을 포함한 각종 고문을 모두 일컫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외에 "형추刑推"라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

원칙상 이런 고문은 하루 한 번만 시행해서 죄인이 죽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으나, 하루 한 번씩 수 차례 형문을 가하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과연 하루에 한 번만 했을지도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이 형문이라는 고문은 사람을 의자에 묶어놓고 정강이를 매로 때리는 겁니다. 이렇게요.

어디서 이걸 "압슬"이라고 써놓았는데 압슬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겁니다.


압슬은 그림처럼 시행하기도 했지만 아래 그림과 같은 형태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래 쪽에는 사금파리와 같은 뾰족한 것들을 깔아놓아서 돌을 얹거나 사람이 올라가는 순간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은 물론, 정신을 잃기도 했다죠.

형문을 가해도 자백하지 않으면 압슬을 시행하고 그래도 자백하지 않으면 인두로 지지는 낙형烙刑을 가합니다. 이렇게 쓰면 형문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쪼인트 까기"도 만만찮은 것이어서 형문을 받다가 죽어나간 죄인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론 정강이 뼈가 부러져서 죽은 건 아닐 것이고, 고문으로 인한 2차 감염으로 사망하는 것이겠죠.

이렇게 승복하지 않고 버티다가 죽는다고 해서 무혐의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 놈 참 독하다" 소리나 들었겠죠...-_-

덧글

  • MoGo 2013/06/05 14:36 #

    압슬 생각하면 박태보 생각납니다. 압슬부터 시작해서 벼라별 고문을 다 당하시고도 끝끝내 왕님아 너의 잘못을 알라 고고하게 버티시다 유배길에 형신 끝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죠. 가만 보면 선비도 못할 짓임..
  • 초록불 2013/06/05 15:56 #

    그렇죠.
  • 찬별 2013/06/05 14:55 #

    근데 요즘 형벌은 말로 해도 안 통하는 넘들에게 너무 신사적으로 대하는게 아닌가 싶을 떄가 많아요... 윤창중 같은 아저씨는 그저 그냥 묶어서 엎어놓고

    네 놈이 네 죄를 알렷다?
    뭐시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저 놈이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인턴에게 너무 과했던 것 같아 위로의 술자리를...)

    뭐시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저 놈이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단지 grab 했을 뿐이고...)

    뭐시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저 놈이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엉엉엉 사실 제가 죽일놈입니다)

    뭐시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저 놈이 죄를 자백했으니 매우 쳐라


    이런게 좋겠는데...

  • 회색인간 2013/06/05 15:06 #

    ......이거 고문인데요.....
  • 초록불 2013/06/05 15:57 #

    전에 내가 쓴 적 있지. 매 맞는 사회라고...
  • 놀자판대장 2013/06/05 14:55 #

    이순신 장군님이 압슬을 당하셨죠 아마...
  • 초록불 2013/06/05 15:57 #

    고건 잘 모르겠습니다. 을파소님에게 물어봐야 할 듯...
  • Leia-Heron 2013/06/05 18:53 #

    칼의 노래에서 압슬 당한 상처로 다리가 아프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 을파소 2013/06/05 23:15 #

    신구차의 내용으로 보건대 고문을 받긴 받았으나, 압슬인지 다른 고문인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난중일기에서 옥에서 풀려난 후 말을 타고 큰 무리없이 가는 걸 보면 압슬 같은 심한 고문까지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통제사 복직 후 곽란을 앓았다 같은 몸이 아픈 기록이 늘어난 걸 보면 크든 작든 고문이나 기타 옥중 생활 후유증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는 악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할 순 있죠. 수군 재건의 스트레스도 포함으로 봐야겠지만요.
  • 을파소 2013/06/06 09:23 #

    신구차 원문을 다시 보니 형신刑訊을 당했다고 나옵니다. 이것이 초록블님께서 말씀하신 '어디서 이걸 "압슬"이라고 써놓았는데 압슬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겁니다.'와 같은 오해를 거쳐 '이순신이 압슬을 당했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으로 봐야 겠습니다.
  • 초록불 2013/06/06 09:24 #

    형신을 당했다면, 위에 나온 것처럼 조인트를 맞았다는 이야기죠. 본문에도 쓴 것처럼 형신도 여러차례 당하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형벌이죠.
  • 을파소 2013/06/06 09:45 #

    그래도 말은 타신 거 같으니 치명적인 수준까진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좋은 건 없는 게 사실이죠. 간단히 트랙백 걸었습니다.
  • 셸먼 2013/06/05 15:23 #

    고문으로 죽은 뒤 혐의가 풀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냥복권되고 끝?
  • 초록불 2013/06/05 15:57 #

    복권만 되어도 대단한 거죠.
  • 셸먼 2013/06/05 16:18 #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해도 나중에 처벌당하고, 죽어도 복권이 힘들면 이건 뭐(...)
  • 쌔금팔이 2013/06/05 16:06 #

    사금파리를 연에만 쓰는줄 알았더니..
  • Ladcin 2013/06/05 17:05 #

    압슬이랑 주리는 흉악하죠. 주리는 앉은뱅이를 만들고 압슬은...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급이죠
  • draco21 2013/06/05 17:38 #

    ...... 뼈부러지는것은 예사지 싶습니다. OTL
  • 零丁洋 2013/06/05 18:38 #

    저런 형벌을 견디고 지조를 지키신 분들을 보면 대단해 보입니다. 남명조식의 제자 최영경 같은 분은 오히려 형리를 위로했다고 하더군요.
  • anaki-我行 2013/06/05 21:07 #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장난 친다고 대걸레로 주리 트는 흉내를 냈는데...

    대걸레 두 개를 교차시킨 후 살짝만 눌렀는데도 저도 모르게 '악'소리가 나면서 허벅지를 붙잡고 교실 바닥을 뒹굴었던 기억이 나네요...-_-;;;;
  • 파랑나리 2013/06/05 22:49 #

    우리들은 푸르다?
  • 파랑나리 2013/06/05 22:49 #

    고문은 예술입니다.(퍽!)
  • 초록불 2013/06/06 09:34 #

    그런 말씀은 농담이라도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jjangso 2013/06/05 23:12 #

    조선시대 형벌하면 왠지 태형이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
    바로 곤장을 맞는 건 아니었군요~~
    잔인하지만 뭔가 재미있네요!
  • 초록불 2013/06/06 09:34 #

    곤장은 조선 후기에 추가된 형벌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한 번 찾아볼까 합니다.
  • 초록불 2013/06/06 09:36 #

    아, 그리고 태형과 장형(곤장)은 다른 겁니다. 태형은 막대기로 때리는 거지만 곤장은 무시무시한 방망이로 때리는 거죠...^^
  • 누군가의친구 2013/06/06 00:34 #

    압술이 사실 상상외로 잔인하죠. 그러고보니 정조때 폐지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 초록불 2013/06/06 09:35 #

    현종 6년(1665년), 영조 1년(1725년)에 금지되었는데 실제로는 계속 행해졌다고 하는군요.
  • 마에스트로 2013/06/06 23:01 #

    제 추측입니다만 혹시나 한두 사람을 본보기로만 집행하여 악소문만 퍼트린 뒤 그뒤로는 대강 형집행한 것은 아닐까요?
  • 초록불 2013/06/07 11:15 #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형신 혹은 형문으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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