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 시장 *..역........사..*



고려사를 보다가 발견...

명종 3년(1173) 계사년 (국역 고려사, 2008.8.30, 경인문화사)
병자일. 무당을 모아 비를 빌게 하고 근신을 나누어 보내 각 산천(山川)의 신령들에게 비를 빌게 했다. 당시 정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 내와 우물이 모두 바닥을 드러내고 벼와 보리가 말랐으며, 전염병마저 발생해 굶주려 죽는 자가 많았고 심지어 인육(人肉)을 매매하는 일까지 있었다.(至有市人肉者) 또 화재가 잦았으므로 사람들이 크게 근심하며 한탄했다.


이외에 흉년에 사람 먹은 이야기는... 예종 12년 8월, 충렬왕 13년 3월에도 찾을 수 있음.

덧글

  • 마에스트로 2013/07/17 14:33 #

    상황이 워낙 어렵다보니 그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십자군 전쟁 때의 인육 기록을 보면......ㄷㄷㄷ
  • 초록불 2013/07/18 11:33 #

    어이쿠...
  • 위장효과 2013/07/17 17:31 #

    저것만 보고 "조선 시대에는 인육을 상식했다!"라고 드립질치진 않겠죠. (어쩌다가 철경록이 인육요리책이 되어 버렸냐...)
  • 이런십장생 2013/07/17 18:09 #

    비슷한 사례라고 해야하나, 국내에서 조폭들이 횟칼을 사시미라고 부르며 "사시미 떠버린다" 라며 애용하니 이것이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말인줄 알고 사시미 = 인육으로 인식. 일본인은 인육을 즐겨 먹었다, 라는 소리로 발전하며 과거 일본에서 위와 같은 재해가 있을때 인육을 먹었단 기록을 근거로 삼는 지경에 이르르게 되더군요.
  • 초록불 2013/07/18 11:34 #

    그런 주장에 대한 반증 사례를 제 해당 포스팅

    http://orumi.egloos.com/1757490

    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내용도 들어갔습니다...^^
  • 2013/07/17 18: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18 11: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빠늑대 2013/07/17 18:49 #

    그런데 저걸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모르겠어요. 우리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나라가 혼란하고 가뭄이 들면 꼭 나오는 말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었다라는 것인데 이게 관용적 어구인지 아니면 정말로 인육을 팔고 먹은 일을 보고 기록한 것인지... 좀 의문스러워서요.
  • 초록불 2013/07/18 11:17 #

    고려사를 통틀어서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서너번 밖에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관용적인 표현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 위장효과 2013/07/18 16:51 #

    관용적 어구라고 적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라서요. 어쩌다 인육요리전문서적(...)이 된 철경록만 해도 원 왕조의 법령제도및 홍건적의 난 이후 반원운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인데 그 오해받게 된 부분을 보면-아빠늑대님도 읽으셨겠지만요-요리하는 방법을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걸 저자인 도종의 선생의 창작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경신대기근이나 텐메이대기근같은 좀더 후대-우리와 가까운 시대-의 대재앙당시 기록들이 상당히 자세하게 남아있는 걸로 봐선 신빙성이 높다고 봐야겠습니다.

  • Leia-Heron 2013/07/17 21:08 #

    인육값이 0원이라는 이영도씨의 말은 거짓이었슴다...(?)
  • 초록불 2013/07/18 11:18 #

    수요와 공급의 법칙...
  • 지크프리드 2013/07/18 10:25 #

    아즈텍 같은 인외마경은(골수 아즈텍 안티) 암만 막장이어도 안나올것 같았는데.. 그 당시가 참 제대로 시궁창이었군요.
  • 초록불 2013/07/18 11:18 #

    아무리 그래도 그 동네와 비교하기는 좀...^^
  • 솔롱고스 2013/07/18 12:18 #

    천수답. 이 용어를 씁쓸하게 떠올립니다. 가뭄이 심하게 들면 이 포스트에 잘 나타나듯이 한 해 농사가 단단히 망쳐버립니다. 그 때문에 인육을 사고파는 '막장'스런 상황으로까지 되었으니 쓰디쓴 기분이 크게 듭니다.
  • 초록불 2013/07/18 12:48 #

    고려 조정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합니다만 시대적 한계 상황이 컸지요. 이 시기의 가뭄은 전세계적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 루드라 2013/07/18 20:52 #

    그래도 고려시대는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가뭄에는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었죠. 이앙법이 그 수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당시의 날씨가 조선 후기와 달라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 초록불 2013/07/23 08:45 #

    고려 후기에 와야 퇴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니까 생산성이 낮은 것도 문제였을 거예요.
  • 미르 2013/07/23 08:42 #

    허...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