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에 대한 환상 *..역........사..*



때로 기생과 창녀를 구분하여 조선 시대 기생은 재예를 갖춘 예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많이 보는데요. 함부로 몸을 팔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물론 그런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기생도 있었겠지만, 그런 기생들은 말하자면 10%에 해당하는 최상층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시어도어 스터전의 "SF의 90%는 쓰레기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다"라는 말이 여기도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간옹우묵 - 10점
이기 지음, 신익철.조융희.이철희 외 옮김/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기(1522~1600)라는 선조 때 이조판서까지 지낸 양반이 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주 사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사또는 잘 대접하고 기생을 시켜 수청을 들게 했습니다. 손님이 매우 기뻐하며 운우지락을 나누려 하였는데, 이 기생이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손님은 매우 화가 나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에 사또에게 따지러 갔습니다.

"관아의 '물건'이 관의 명을 따르지 않고 정부情夫에게로 도망쳤는데 어찌 곤장을 치지 않는 것입니까?"

사또도 놀라서 기생을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잡혀온 기생이 사정을 했습니다.

"원컨대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공주는 삼도로 통하는 길목에 있어서 크고 작은 손님들이 늘상 들락거립니다. 이 때문에 저 같은 천한 몸은 한 달에 이삼 일밖에 쉬지 못합니다. 집을 떠나온 남자는 밤새도록 음행을 자행하니, 미천한 이 몸이 비록 금수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운우지락은 커녕 고통 밖에 없습니다. 견딜 수 없어 집으로 도망쳐 쉬었을 뿐이지 정부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사또는 기생의 말을 듣고 벌을 면해 주었다고. 하지만 소갈머리 좁은 손님은 발끈했다고 합니다.


덧글

  • 아빠늑대 2013/07/28 18:43 #

    그러고 보니 남편 있는 관기도 수시로 불려갔다더랬죠? 어디 있었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 초록불 2013/07/28 20:29 #

    파이팅!
  • 5thsun 2013/07/28 19:24 #

    기생 판타지도 이제 슬슬 붕괴하겠군요. ㅠ.ㅠ

    그러고 보니 기생은 절대 창녀가 아니다. 한국에는 일제 시대에 집창촌이 발생하기 이전까지 창녀가 없었다는 역사서를 내시는 분도 계셨었는대 ㅠ.ㅠ
  • 초록불 2013/07/28 20:29 #

    아니, 그런 사람이...
  • 앨런비 2013/07/28 19:29 #

  • 초록불 2013/07/28 20:30 #

    증거는 차고 넘칠 거라 생각하는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횡행하니 참...^^
  • 공간 2013/07/28 20:23 #

    세네요
  • 초록불 2013/07/28 20:30 #

    그렇죠.
  • 하늘여우 2013/07/28 21:09 #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성노동자들 직업 현실이 현대만큼 좋아진 경우가 없을텐데...
  • 초록불 2013/07/29 09:34 #

    그 점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Niveus 2013/07/28 21:16 #

    역사상 어느 권력자도 척결하지 못한 최고(古)의 직업인데 무슨 환상을 가지고 사는걸까요(...)
  • 초록불 2013/07/29 09:35 #

    가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 Some Other Time 2013/07/28 21:54 #

    일본의 저급한 성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는 그냥 환상에 불과할 뿐인가요?
  • 초록불 2013/07/29 09:35 #

    일본의 저급한 성문화를 잘 몰라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 루드라 2013/07/28 22:27 #

    남사당에 대해서도 많은 환상이 퍼져 있더군요. 매춘을 하지 않고 남자들만 모인 재주꾼 집단으로만 아는 분들이 꽤 많던데 사당이 무슨 뜻인지 알면 저런 얘기가 안 나올 건데 말입니다.
  • 초록불 2013/07/29 09:35 #

    사당에 뭔가 특별한 뜻이 있나요?
  • 루드라 2013/07/29 12:57 #

    사당패는 매춘집단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남사당은 남색을 파는 사당패입니다. 재주 부리는 건 본업을 광고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을 뿐이고요.
  • 초록불 2013/07/29 12:58 #

    그건 알고 있는데, "사당"이라는 낱말 자체가 따로 그런 뜻으로 쓰인 건가 해서 여쭤본 겁니다.
  • 까마귀옹 2013/07/28 23:09 #

    '나의 기생은 그렇지 않다능!'

    이게 기생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가짐(?)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가 이런 판타지가 구축된 걸까요?
  • 초록불 2013/07/29 09:36 #

    저도 좀 궁금합니다. 10%의 이른바 "예인"에 대한 생각이 발전한 것 같기는 한데, 언제 어떻게 이런 관념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 잠꾸러기 2013/07/28 23:16 #

    옛날의 권력있는 남자가 여자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는데 그 여자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을거라는....-_-
  • 초록불 2013/07/29 09:36 #

    그렇겠죠...
  • 솔롱고스 2013/07/28 23:18 #

    간옹우묵. 이 포스트에서 소개하신 책이 지은이가 생전에 살았던 시대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었을 거다고 짐작합니다. 후세에 사는 이들이 '기생'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것과 반대되면서요. <환상을 품지 말고 차분하게 직시하자>. 이 책을 소개하신 의도를 어렴풋미나마 짐작합니다.
  • 초록불 2013/07/29 09:37 #

    이 책에는 당시 시대상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몇 가지는 향후 포스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3/07/29 00:19 #

    잘 읽었습니다. 음 항상 궁금했던 부분인데 게이샤와의 차이는 있었을지도 궁금합니다. 얼핏 느낌에는 비슷했던것이 아닌가도 싶구요. 말씀하신10%예인설도 비슷할것 같구요. 다만 일본에서 게이샤가 하나의 예인문화가 되니 우리도 기생문화를 재조명하는 흐름에서 무릿수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소의 생각입니다만-근거없는...

    사실 어떤 분야건 오래된 것은 미화를 피하지 못하는것이 하나의 일반적 과정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윗댓글처럼 남사당패도 그렇고 다른나라들도 경우도 그렇고. 문제는 왜곡수준에 달하는 정도겠죠.
  • 초록불 2013/07/29 09:37 #

    제가 게이샤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저도 궁금합니다.
  • 역사관심 2013/07/29 09:55 #

    그나저나 요즘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해 고전번역원등 여러 고전편찬관련 기관들 (동북아역사재단도 그렇고)에서 참 읽을 책들 쏟아져나오네요...저처럼 한문을 잘 못해 언감생심이던 책들이 한글로 번역되 나오니 정말 반가운 현상입니다. 연구자들도 대단하고 (조금있으면 김시덕선생의 징비록도 완역본으로 나오더군요).
  • 초록불 2013/07/29 09:38 #

    아니.. 식덕 선생이라니요...^^ 묘한 오타가 났네요...^^
  • 역사관심 2013/07/29 09:55 #

    -_- 수정합니다...;;;
  • 헤르모드 2013/12/03 00:38 #

    저런 ㅎㅎ
  • 역사관심 2013/12/03 03:38 #

    ㅎㅎㅎ (헤르모드님, 따땃한 연말 되시길~)
  • 매시야 2013/07/29 09:18 #

    등록된 기생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서까지 매춘 인신매매가 성행했던 나라에서 기생이 다른 나라와 달랐다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죠. 많은 근현대 문학에서 서민에서의 매춘 인신매매가 등장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애들 동화 설화에서는 간혹 보이는 인육 이야기까지 말이죠.

    사대부의 후손이 창피해야 하고 면목이 없어야 하는데 전국민이 자신이 사대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니 역사가 바로 서겠습니까?

    기생에 대한 성적 환타지의 본질은 사대부에게만 허락한다는 것 그것 외에 전혀 없죠.
  • 초록불 2013/07/29 09:38 #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jjangso 2013/07/29 12:49 #

    '기생ㅡ황진이ㅡ예인'의 연결고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진이라는 인물은 일반적인 기생과는 다를텐데, 그녀가 기생의 대명사처럼 다루어지고 있다보니 그 이미지가 커진 것 같아요
  • 초록불 2013/07/29 12:55 #

    황진이면 탑 오브 더 월드...급이니, 참...
  • Scarlett 2013/07/29 14:50 #

    차분하게 직시해야 할 역사적 사실조차 일본의 음모라고 치부하며 외면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더라구요. 사실 이 사안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인데....
  • 초록불 2013/07/30 10:52 #

    그런 이야기도 있나보군요. 일본에 대해서는 너무 감정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 零丁洋 2013/07/29 18:28 #

    관기를 두는 이유가 지방관의 식솔을 볼모로 잡고 이들을 위로하고자 했다고 하니 본래 목적이 예악이 아님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도 각종 잔치에 불려가 가무를 선보인 것을 보면 예인으로서의 기능이 있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 초록불 2013/07/30 10:52 #

    두루두루 다용도인 것이죠.
  • swordprime 2013/07/30 14:42 #

    뭐 수많은 AV배우 중 유명세 타서 아오이 소라처럼 광고하고 많은(?)사람들이 아는 케이블혹은 지상파 연예인이 되는 것처럼 수많은 기생들 중에 특출나면 예인이 되는 거군요... (하필 예를 이걸로 들다니 orz...)
  • 초록불 2013/07/30 17:33 #

    하하... 적절한 예가 될 것 같네요. 저는 아오이 소라를 무슨 케이블 방송에서 영화 나온 걸로 처음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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