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에 대한 이야기 *크리에이티브*



몇 달 전에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강원대 조은하 교수 소개로 온 메일이었죠. 내용은 스토리텔링 관련해서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 교수님에게는 고마운 일도 여럿 있고 해서 거절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만났는데, 제가 선택된 것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죠. 이 타이틀이 왜 잘못된 타이틀인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러자 인터뷰를 온 분은 매우 난감해져버렸습니다. 그 타이틀로 만나기로 한 건데, 만나러 온 목적이 부정당해버렸으니...

하지만 내막을 천천히 설명한 끝에 인터뷰로서의 가치는 인정 받은 모양입니다. 책에 이렇게 실렸군요.

스토리에 중독되다 - 10점
장예빛 지음/가쎄(GASSE)


책의 목차를 옮기면 어떤 분들이 인터뷰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한 분도 없군요...^^;;

11월에 내리는 비 31 소설가 이재익
팝하면, 탁! 53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
“모두 잘 될 거예요” 77 작사가 박채원
카피라이터? 캐치라이터 99 카피라이터 윤병룡
빠지기 쉬운 함정을 파다 125 시나리오 작가 황조윤
귀신도 아닌, 점쟁이도 아닌 141 음악평론가 이대화
책버섯을 키우는 남자 165 게임 시나리오 작가 이문영
‘버티어 나가는 힘’ 183 시인 박후기
8천 개의 펜 207 MBC아카데미 작가 노철균
하고 싶은 딱 한마디 241 PD 황경선


여기에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글쓰기는 재능인가. 노력인가"라는 질문이죠. 몇몇 분에게만 이 질문이 있었어요.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서 확고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청소년글쓰기 공모마당 이야기글 지킴이 7년을 하면서 확신을 가지게 된 부분이기도 하죠. 글쓰기는 재능이라는 답입니다.

문제는 어떤 "글쓰기"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글은 보통의 학업을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글을 쓴다"라는 행위에 대한 질문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글쓰기"로 먹고사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이라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냥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가 쓴 책도 있죠.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는 프로가 아닌 사람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능이 없어도 여러가지 이유로 창작 활동을 해볼 수는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책에 실린 제 인터뷰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스토리 능력은 재능인가요? 노력인가요?
창작은 노력보다 재능이다! 자신이 쓴 걸로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물이 아니면 그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는 거거든요. 노력하면 재능이 점점 커질 수는 있겠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아무나 데려다 가르쳐도 김연아가 될까요? 프로페셔널이 되는 데는 재능이 필요해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재능이 없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재능이 있는 아이를 키워주기는 쉽지 않아요. 재능 있는 아이들을 빨리 발견하고 그 재능을 키워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스토리 능력이 없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고요. 세상에는 수많은 재능들이 있으니까요. - 위 책, 180쪽


대개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하죠. 그냥 재능으로 성공했다고 하면 건방져 보이고, 노력도 안 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니까요. 재능과 성공은 바로미터의 관계가 아니고, 재능이 있는 상태에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자신의 재능에 대한 돌아봄은 별 필요없고, 고통스럽게 노력해 온 과정은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답변해요.

어쩌면 저도 어린 학생들의 글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죠. 그 안에서 글쓰기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과 재능이 없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작은 가르침마저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점도 볼 수 있었거든요.

이 책에서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진 분은 황조윤 작가였습니다. 잠깐 인용해 보겠습니다.

흔한 말이지만 재능만 있어도 안 되고 노력만 있어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재능이 선천적이고 노력은 후천적이라고 봤을 때, 재능은 기본이요, 노력은 선택이죠. 불행히도 재능이 없다면 글쓰기는 취미로만 하시는 게 좋습니다.

사실 저보다도 제 견해를 잘 요약한 글이었습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데도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성공하기가 힘든 곳이고, 세상에는 의지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거든요.






그와는 별개로 위 책은 참 재미있군요. (제 인터뷰만 빼고...)

당대의 스토리텔러(역시 저는 빼고... 아흐~)에 대해서 궁금한 분은 한 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차마 도서 밸리 투척은 못하겠고... 그냥 제 블로그에 올리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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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漁夫 2013/07/30 16:13 #

    ........

    고된 훈련을 장시간 동안 '재미있다'고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대개 재능이지요. 분야가 뭐건 간에...
  • 초록불 2013/07/30 17:31 #

    맞습니다...^^
  • 행복한맑음 2013/07/30 16:52 #

    즉 재능은 예선이요 노력은 본선이란 말씀이시죠 (후아)
  • 초록불 2013/07/30 17:32 #

    그런 셈이군요. 좋은 표현입니다.
  • 아빠늑대 2013/07/30 18:34 #

    아...재능이라... 아무리 즐거워 해도 재능이 없다면 취미 이상의 것은 나올 수 없겠군요.
  • 초록불 2013/07/31 09:44 #

    그렇습니다.
  • 아자토스 2013/07/30 18:44 #

    재능은 잔인하죠 ㅠ_ㅠ
  • 초록불 2013/07/31 09:44 #

    다른 쪽의 재능을 찾으면 되는데 없는 곳은 헤매봐야 소용없죠...^^
  • Luthien 2013/07/30 19:00 #

    이거 보고 생각난 김에 작법 관련 내용 하나 번역했는데, 트랙백이 자꾸 튕기네요?
  • 초록불 2013/07/31 09:48 #

    왜 그럴까요... 저도 영문을 모르겠네요. 이글루스 시스템이 불안정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Blueman 2013/07/30 19:38 #

    휴~ 재능과 노력이라.... 언제쯤 좋은 결실 맺을 수 있을까요? 고민이네요.
  • 초록불 2013/07/31 09:48 #

    기회는 앞에만 머리가 있어서 보았을 때 잡지 못하면 그만이라는 격언이 있지요. 기회가 왔을 때 잘 잡아야 합니다.
  • 잠본이 2013/07/31 00:29 #

    저도 그래서 취미로만(...흑)
  • 초록불 2013/07/31 09:44 #

    어이쿠...
  • 훼드라 2013/07/31 00:53 #

    저같은 경우엔...한 중학교 2-3학년때부터
    보통 그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 결말이나 내용을 제 마음대로 꾸며서
    집에서 혼자 써보는걸 소일거리로 삼다가 차츰 그쪽에 재미를 들려갔던것 같습니다.

    그러다 아예 직접 제가 꾸며낸 순수 창작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차라리 한번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쪽으로 나가볼까...차츰 그런 생각을
    해봤던것 같은데...

    지금와 생각해보면...그래도 pc통신 시절 활동하돈 동호회에서...회원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칭찬이 '글 잘 쓴다'는 칭찬이었던것 같습니다. 근데 사실 그 시절
    하이텔에 쓴 글은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슨 칼럼 형식의
    글도 아닌...보통 그냥 자유게시판 같은데 그 무렵의 정치이슈나 방송,연예가 이야기
    같은걸...낙서처럼 쓰곤 했던건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칭찬을 들었던것 같네요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사실 그 동아리 사람들이 정치권이나 연예계 같은데 관심
    가질만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자신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를 종종 제가
    장황하게 썰을 푸니까...그런쪽에 눈길이 가서...그런 소리들을 했던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 그리고 2천년대 초반경 탈북자 돕는 단체등에서 활동할때야...아무래도 자기네들
    코드에 맞는 주장들을 계속 하니까...그래서들 좋아했던것 같고...

    문창과 시절의 기억을 돌이켜보면...확실히 필력과 상상력은 다르다는 것을 느낀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 당시 수강생들 가져오는 습작품들 보면...대개 그냥 '자기 첫사랑
    넋두리' 내지는 좋게말해 '자전소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것들이더군요. 그
    리고...특히 강의하시는 선생님께 ' 선생님, 저 과연 작가로서의 소질이 있어보이나요 ? '
    하는 질문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좀 딱해보이기도 하더라는...

    재능과 열정은 확실히 다르다는게...그 무렵부터 느꼈던거고요...
    개인적으로는 자기이야기는 쓰지말라 http://adman.egloos.com/2665446
    앤잇굿님의 견해에 상당부분 동의하는 편입니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가
    되었든 말이죠.

    무슨 칼럼이나 에세이 같은것이라면 몰라도...소설이나 드라마 같은것을 쓰려면
    필력 못지않게 상상력도 동반되어야 한다는것...필력만 갖추고 상상력이 없으면
    그땐 자전소설밖에 못쓰는거고...상상력은 있으되 필력이 부족하면...(저처럼)
    그냥 인터넷의 잉여작가로 머물게 되는것 같더군요...

    '작가로서의 재능이 있는가 ?'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것은 참...당신 똑똑하냐 ?
    당신 잘 생겼느냐 ? 이런 질문처럼...대답하기가 난감한 질문이 되는건데...'네'
    라고 대답하면 그건 자화자찬이 되는거고...그렇다고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은...그런것...

    여하튼 저 같은 경우엔...상상력은 분명히 갖춘것 같다는...그리고 상상력을 소설가나
    방송작가의 재능의 범주에 넣을수 있다면...재능이 아주 없다고 말할순 없을것 같네요
    ^^;;

    소설적 상상력을 키우는 법은...저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좀 있긴 한데...하지만 이건
    적어도 잉여작가로있는 동안 만이라도...저만의 노하우라서...아직은 공개하고 싶진
    않네요. 한 10년이나 20년쯤 후라면 몰라도...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설국열차'나 '다빈치코드'를 소설로 먼저 본 분들의 경우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 실망했다고 하는 분들이 많던것 같더군요.

    아마...소설로 묘사할수 있는 부분과 영화나 드라마로 묘사할수 있는 부분의 차이
    때문에 그런듯 합니다. 가령 소설에서 묘사할수 있는...어떤 철학적 메세지라던가
    좀 더 미세한 심리묘사같은 것들...드라마나 영화처럼 화면으로 표현할때는...달라
    질수밖에 없죠...특히 주제의식 같은 면에선 드라마나 영화는 대중매체이니만큼...
    주제를 좀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그려나가야만 하는...

    소설가든...드라마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든...필력과 상상력...또는 재능과 열정...
    진정으로 갖춰야 하는 요건은 어떤것일까요 ?


  • 초록불 2013/07/31 09:45 #

    필력, 상상력, 재능, 열정... 거기에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도 있죠.
  • 비주 2013/07/31 01:32 #

    정말 와닿는 말입니다. 요새 크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재능과 노력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들인지. 재능이 없음을 슬퍼하다가도 노력하면 된다라고 일어서지만 결국 다시 재능에 걸려버립니다. 마치 재능과 노력이라는 허들을 끊임없이 넘어서는데 결국 남는건 까진 무릎...같은ㅠㅠㅠ 글쓰기는 아니지만 창작을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저렇게 상처만 남는 무릎을 갖느니 허들을 치워버리는게 더 나은선택 아닌가 싶습니다ㅎㅎㅎ
  • 초록불 2013/07/31 09:47 #

    일단 재능이 있다 해도 그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발전의 양상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 희야 2013/07/31 10:11 #

    재능도 열정도 관심도 없는데 이런저런 명목의 글쓰기를 강요당하던 학교 시절은 정말 고역이었지요.
  • 초록불 2013/07/31 10:50 #

    먼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그런게 참 안 지켜지더군요. A에 대한 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의 정답이 그거 잘해야 대학 가니까 뿐이 없는 건 슬픈 이야기죠.
  • jjangso 2013/08/01 17:47 #

    몇 해 전에 같은 곳에서 일했던 동생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 친구의 블로그에서 짤막하게 쓴 글을 보았는데 비전문가인 제 눈에도 필력이 참 좋아보이더라구요
    작가를 하고는 싶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면서 고민하길래 무조건 밀고 나가라고 조언했었습니다. 넌 재능이 있다고요ㅡ
    그 친구 얼마 전에 kbs드라마 보조작가로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금부터 시작이겠지만,
    재능은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비전문가가 보아도 탁월하다고 판단하게 하는 일.
  • 초록불 2013/08/02 13:02 #

    재능을 설명하는 말 중 낭중지추가 이와 흡사하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3/08/02 02:25 #

    책버섯을 키우는 남자 로 등극하셨군요.
    으음..어떤 의미인지 ㅎㅎ.

    재능에 만약 어릴 적부터 읽어대기가 포함된다면 그것도 어느정도 맞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많이 읽어야 글쓰는 능력도 배양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엉덩이붙이고 '읽는 것'자체가 타고난 성격 같거든요.
  • 초록불 2013/08/02 13:03 #

    책버섯 - 책을 의자 옆에 한 권씩 던져놓다보면 점점 높이 솟아오르게 되는데, 그걸 가리킨 말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가끔 쓰는 말이기도 하죠.
  • 역사관심 2013/08/02 14:33 #

    아 그뜻이군요. ㅎㅎ 예전에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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