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황후 드라마 방영 건에 대해 *..역........사..*



이미 신불해님이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글을 썼지만, 널리 알리려는 의미에서 포스팅 하나 해둡니다.

드라마를 팔아먹으려고 멀쩡한 학자를 ㅄ 만드는 MBC, 대한민국 수준이 이 정도인가? [클릭]

기황후에 대해서 "서울대 이강한 교수"가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는 이야기의 출처는 이것.

[해럴드 생생경제] MBC 새 월화극 '기황후', 역사 왜곡이라고? [클릭]
서울대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를 향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반박, 근거를 설명했다. (중략) 고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공녀차출이 금지되는 때가 바로 기황후가 권력을 가진 순제 때다. 뿐만 아니라 원 내부에서 종종 제기되던 입성론, 즉 국호를 비롯해 고려에 대해 어느 정도 부여한 자주성을 인정하지 말고 고려를 원에 속한 하나의 성으로 만들자는 입성론 논의도 당시에 이르면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이강한 교수의 설명이다. (중략) 이후 원의 정치적 간섭이나 경제적 수탈 역시 줄어들었다.
더 인용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이입니다. 이에 대해서 "한국한중앙연구원의 이강한 교수"는 펄쩍 뛰었다는 이야기.

[스포츠경향] MBC새월화극 ‘기황후’ 왜곡 논란, 역사학자들도 "잘못" [클릭]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정책실장으로 재직중인 이강한 교수는 이 같은 견해를 부인했다. 이 교수는 스포츠경향과 전화통화에서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또 “충혜왕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궁궐 내 방직 공장을 차려서 여종을 끌고 와서 말 안들으면 때려 죽였다”고 말했다. 그는 기황후와 충혜왕을 긍정적으로 봤다는 자신의 논문 관련 보도에 “내 논문에 그런 평가 없다. 그 사람들 내 논문을 읽어보기는 했다는 거냐”고 되물었다.

여기에 좀 더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포츠경향에 난 보도를 보면 이렇습니다.

MBC 관계자는 28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역사에 나온 한 줄 역사 갖고도 드라마·영화는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미 지난 주말 촬영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것을 다르게 보는 관점도 있다. 두 일간지의 인터넷 판에 실린 서울대 이강한의 주장을 읽어보라”고 말했다.

두 일간지. 그건 위에 인용한 해럴드생생경제와 세계일보입니다. 그런데 세계일보에는 기황후 관련해서는 "이강한"을 인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럴드생생경제가 문단마다 이강한 교수를 언급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기황후 관련해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일보] MBC '기황후', 역사왜곡? 시대 상황이 만든 단편적 시각 [클릭]
- 8월 28일 제작사 이김 프로덕션 관계자는...
- 이날 제작사에 따르면...


충혜왕 관련해서는 이강한 교수를 꺼내고 있습니다.

서울대 이강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그는 왕권강화(금령11조 포함)에 노력, 만성적인 왕실재정의 결핍을 해결하고 재정을 확보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위에 나온 바와 같이 이강한 한국한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런 주장을 부인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기황후에 대한 주장은 이미 예전에 한 번 나온 것입니다. 완전히 그 이야기의 재판이죠. 바로 이것입니다.

[오마이뉴스] "<신돈>의 기황후 이미지는 왜곡됐다" [클릭]
(제성욱은) 역사소설 <기황후>(가제) 집필을 준비하며 상당한 자료를 모아 왔는데, 현재 MBC에서 역사 드라마로 방영중인 <신돈>이 역사적 사실 왜곡이 극심하다는 주장이 담긴 글을 <코리아 포커스>에 실은 바 있다. 과연 사실 왜곡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 그와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제성욱이라는 소설가의 주장과 100% 동일한 주장이라는 점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이 소설가가 살아만 있었어도 바로 인터뷰 들어가고 했을텐데...). 기획사의 레퍼런스는 이것이라고 보이네요. 이 소설은 전4권으로 출간(2006년 완간)되어 있는데, 제가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이 소설에 참고 자료 중 하나로 이강한 교수의 논문이 언급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황후를 찬양한 소설에 제시된 레퍼런스니까 그 레퍼런스도 기황후를 찬양한 것이겠지, 라는 루트를 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조만간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동네 도서관에 있어야 할텐데...)

해럴드생생경제에 이름이 인용된 또 하나의 논문이 있습니다.

안재민 저의 논문 '충혜왕의 복위와 조적의 난'

이 논문은 서강대 석사논문(2002)입니다. 오죽 급했으면 석사논문까지 들고 나왔을까 싶네요. 이 논문은 국회도서관에서 무료로 열람이 가능합니다. 논문이 주장하는 바는 기존에 "조적의 난"은 심왕 옹립 운동으로 이해되었지만, 사실은 심왕파와 경화공주파가 연합해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진행한 사건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논문 자체에 약점이 있지만, 그걸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해럴드생생경제에서 충혜왕 관련으로 (1) 치적 (2) 경화공주 (3) 폐위로 나누어 놓았는데, 안재민의 논문은 (1) 치적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성과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경화공주를 충혜왕이 정말 겁탈했는가에 의문이 있다는 이야기를 쭉 하는데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안재민이 겁탈에 의문을 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원과 협력이 필요한 시기에 불필요하게 원을 자극하는 행위
(2) 조적의 난과 처리 과정에서 이 사건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음


(1)번은 있을 수 있는 의문이지만 (2)번은 뜬금없는 이야기입니다. 안재민도 이야기하듯이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난이 발생하고 있을 정도로 이 겁탈 사건은 큰 문제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뿐이 아닙니다. 안재민은 겁탈 의문에 이런 점도 대고 있습니다.

(3) 아들이 아버지의 후비와 간음한 사건은 충숙왕에게도 있다

저기요, 간음강간은 완전 다른 거예요. 안재민이 들고 있는 것처럼 저런 일이 고려 때 별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안재민 자신의 논리 전개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안재민은 경화공주가 이 강간 사건을 공론화해서 충혜왕을 공격하는데 이용했다고 말하는데, 저게 고려 시대에 별 일 아닌 일이었다면 그게 어떻게 공론화 되겠나요.

충혜왕의 음행에 대해서 안재민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부정만 하기에는 해당 내용이 너무 많단 말이죠. 윗 글에서 문제는 그렇다면 대체 "후세 사가"는 대체 무엇 때문에 충혜왕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해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폐위와 관련한 해럴드생생경제의 내용은 안재민의 논문에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봐야 위 논문은 충혜왕 대의 정치 권력 상황에 대한 분석이지, 충혜왕에 대한 옹호(평가가 워낙 나쁜 왕인지라 이 정도만 해도 옹호로 보이기는 하지만)로 읽기는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기황후에 대한 MBC의 뻔뻔한 모습 2013-10-25 10:38:12 #

    ... 인터넷 시대의 기사란 이런 약점을 갖는구나, 하게 됩니다. 원 신문사 기사에서도 사라졌고 네이버 등에 제공되어 있는 기사도 동일한 것으로 바뀐 상태입니다. MBC 기황후 드라마 방영 건에 대해 [클릭] 위 포스팅을 쓸 때 세 개의 기사를 참고했는데, 현재 "해럴드생생경제"와 "세계일보"의 기사는 전혀 다른 것에 연결됩니다. "스포츠경향"의 기사만 ... more

덧글

  • 2013/08/30 14:1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8/30 14: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asan_Gull 2013/08/30 14:14 #

    아마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앙할 수 있다 대안적 해석의 가능성을 봉쇄하려 드는 경직된 주류 역사학계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려 든다" 라고 할 듯요(...)
  • 초록불 2013/08/30 14:33 #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내보내면 된다니까요.
  • YOLO88 2013/08/30 14:30 #

    웃기지 않나요??

    뭔 일만 터지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고 버릇처럼 떠들고 다니는 주제,

    '드라마는 드라마일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네들의 말처럼 확실히 미래가 없긴 없어보임 ㅋㅋㅋ
  • 초록불 2013/08/30 14:35 #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까 역사 고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빼달라는 건데, 그걸 이해를 못하네요.

    이 드라마는 평행세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 Niveus 2013/08/30 14:57 #

    그러니까 다음 작품은 이완용의 영웅적 일대기를 그린 작품인가요? 라고 묻고싶어짐(...아;;;)
  • 네리아리 2013/08/30 15:02 #

    ...레알 저대로 가면 진짜 나올지도...
  • Niveus 2013/08/30 15:04 #

    ...그거 나오면 그날 M본부 화재로 전소 같은 뉴스 나올걸요(....)
  • 역사관심 2013/08/30 15:01 #

    아예 '환타지 역사드라마와' '정통 사극'이라는 장르를 따로 이참에 구분지어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예 전자 쪽 드라마들은 고증이고 나발이고 시청자들도 신경안쓰고 이름제외하면 픽션만 쓰는 걸로. 휴. 망신도 망신도 진짜...
  • 초록불 2013/08/30 15:23 #

    신봉승 드라마 시절이 양반이었으니, 이거 참 뭐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 kykisk 2013/08/30 15:13 #

    장희빈 미화는 이거에비하면 정말 발톱의 때급이네요...;;
    진정 미친거같아요...
  • 초록불 2013/08/30 15:23 #

    미쳐야 미친다...에 감명이라도 받은 걸까요... (퍽!)
  • Scarlett 2013/08/30 15:18 #

    그냥 처음부터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라고 인정하면 될 것을 뭐하러 일을 저렇게 키우는지 모르겠네요.
  • 초록불 2013/08/30 15:23 #

    고증은 왜 자꾸 들고나오려고...
  • 무명병사 2013/08/30 15:29 #

    하여튼 안좋은 거 베끼는 건 기가 막힌단 말이죠. 쓰바. 이러다가 <인간 윤치호>같은 드라마 나올 기세.
  • 초록불 2013/08/30 15:46 #

    구국의 헌신, 명장 원균...

    나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으셨나요... (먼산)
  • 을파소 2013/08/30 15:30 #

    보도자료에서 '뛰어난 역사고증'부터 빼야죠.
  • 초록불 2013/08/30 15:47 #

    뛰어난 역사 날조라고 쓰면 박수쳐줄 용의가... (야!)
  • 누군가의친구 2013/08/30 15:58 #

    2005년 MBC는 '신돈'에서 기황후를 고려에 사사껀껀 간섭하고 기씨 일가의 뒤를 봐주는 악역으로 묘사했습니다만 2013년에는 '기황후'를 통해 악역에서 영웅으로 복권시키고 있으니 웃길 노릇입니다.

    물론 역사관에 따른 해석이 달라 변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지만(예를 들면 수양대군과 김종서는 군사정권때와 지금과 비교하면 다르게 다루고 있지요.) 저건 어떤 역사관이든 옹호할 건덕지도 안되는데 말입니다.
  • 초록불 2013/08/30 16:52 #

    포스팅에 링크 된 오마이뉴스 기사 내용이 바로 "신돈"에서 기황후를 악역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이라는 내용이에요.
  • 누군가의친구 2013/08/30 16:55 #

    그걸 8년만에 뒤집는걸 보면...(...)
  • 2013/08/30 16:1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8/30 16: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더카니지 2013/08/30 17:11 #

    역사학계에서 성명이라도 냈으면 좋겠네요.
    기황후는 방송사 입장에선 드라마화하기 매력적인 인물이니 최근 서태후 재평가식으로 어찌어찌 다루는건 어쩔수없다고, 그나마 이해할수있겠지만....막장 킹오브 강간마는 대체 왜??
  • 초록불 2013/08/30 17:20 #

    뭐, 이미 촬영도 들어갔다니까 이미 화살은 떠난 거죠. 그냥 두고두고 씹으렵니다. 어쩌면 엠비씨는 노이즈 마케팅을 즐기는 중일지도 몰라요.
  • 토나이투 2013/08/30 17:19 #

    빨리 원균 장군님이 무능한 이순신을 내치고 일본군을 도륙하는 도라마를 보고싶어요 헉후헉후

    장르는 당연히 판타지겠죠! 원균 장군님 검기도 쓰시고! 오오 축지법도 쓰실것같아여
  • 초록불 2013/08/30 17:21 #

    사실 칠천량에서 섬으로 도주해 목숨을 건진 원균은 정체를 감춘 채 무명소졸로 이순신 휘하에서 노량해전에 참전하는데... (개봉박두)
  • NoLife 2013/08/30 18:16 #

    차라리 소드마스터 척준경을 드라마로...
  • 꿈꾸는드래곤 2013/08/30 21:10 #

    정사대로만 따라가도 판타지액션물이 된다는 그분!!
  • 화성거주민 2013/08/30 22:41 #

    왕원장 장군님은 누가 맡게 될 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겠군요(............)
  • 듀란달 2013/08/30 21:39 #

    이러다가 '인간 이완용' 도 나오겠습니다. 헐헐헐.
  • 동사서독 2013/08/30 21:57 #

    기황후를 드라마로 만드느니 반영자 주연의 일대여황(측천무후)나 방영해줬으면 합니다. 여성 지도자라는 점에서 측천무후 쪽이 아무래도 그분과 싱크로가
  • 천하귀남 2013/08/30 23:18 #

    기황후 종친회가 MBC에 있나보군요.
  • 회색인간 2013/08/31 00:20 #

    ....기씨 종친이라도 있나.....그건 그렇고 충혜왕을 무슨 혁명가처럼 그렸다던데 존나 뿜기네요.
  • bergi10 2013/08/31 01:44 #

    와우... 요즘 트렌드는 인간 말종들에 대한 미화인가봐요.

    최씨 3부자 미화도 그렇고 MBC가 막나가네요 ㅎ
  • 마에스트로 2013/08/31 13:26 #

    이제는 태왕사신기 같은 쓰레기 작품이 얼마나 더 나은 작품이었는지 실감이 납니다.....ㅠㅠ 이러다가 인조를 찬양하는 내용이라든가 철종을 찬양하는 사극이 나오지나 않을지.....
  • 역사관심 2013/09/01 12:56 #

    그때는 대놓고 환타지라는 느낌이라 시청자도 그러려니..가 좀 있었지만, 이건 정통사극을 표방하고 앉았으니...
  • 마에스트로 2013/09/01 19:36 #

    정통사극.......ㄷㄷㄷ
  • 셰이크 2013/08/31 16:35 #

    이런걸 보면 요즘 사극의 컨셉은 역사적 사실 혹은 인물에 대한 재평가가 아니라 "이전작들의 재평가"아닌가 싶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장옥정(이하생략)이 나오자 김혜수판 장희빈이 얼마나 잘 만든 드라마인지 알게 되고, 칼과 꽃이 나오니 연개소문(!)이 얼마나 충실한 사극인지 알게 되며, 기황후가 나오려 하자 신돈은 몇가지 결점만 빼면 얼마나 명작이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 초록불 2013/09/02 10:00 #

    갈수록 나빠지는 세계라니... 참 큰일입니다.
  • 2013/09/01 02:5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9/02 10: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성격급한 에스키모 2016/11/30 15:13 #

    기황후가 공녀 폐지를 했느니 입성론을 막았느니 고려양의 시초네 뭐네 하는 주장들이 존재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황후는 고려 출신이면서도 고려의 독립성을 부정한 친원 세력의 배후이자 중심인물"이라고 말했다. 순제 때 원으로 보내는 공녀가 중단된 사실을 들어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기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면서 "당시 관점에서나 지금 관점에서나 기황후가 고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다"고 단언했다.[7]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정책실장으로 재직중인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이숙인 교수는 “고려 때 기황후를 모델로 해 공녀가 더 늘었다”며 “기황후가 당시 권력 기반을 위해 더 많은 고려 사람들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 원나라 조정 관리들 사이에서는 고려 공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8] 게다가 1343년(충혜왕 복위 4) 역시 원나라에서 이운(李芸)·조익청(曹益淸)·기철(奇轍) 등이 제4차 입성책동을 일으켰다. [9] 동생이 입성론을 일으키는데도 기황후가 이를 막으려 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자기가 불리하거나 필요할 때 권력자에게 또 다른 공녀를 뇌물로 갖다바치고, 이곡이 순제에 상소를 넣어 중지시켰으나 기황후는 오히려 박불화를 시켜서 공녀를 계속 보내라고 독촉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그녀가 황후로 있던 시기 말기는 원 제국 자체가 더 이상 피지배 민족들을 억압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여러 어려운 요구를 하기 어렵고 본국 관리도 힘들어졌기 때문에 저절로 여러 요구가 사라진 것이다.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여 위와 같은 사실를 왜곡하는 주장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고려양 또한 수많은 환관, 공녀들이 끌려가서 저절로 퍼진 것이고 기황후는 그 공녀의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기황후가 제1황후가 되면서 그녀가 가족들을 위해 고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 바 있고, 그녀의 가문과 그녀의 오빠 기철은 고려에서 당대의 대표적인 권문세족으로서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기철은 친원파들과 함께 4차 입성책동을 주도해 원이 충혜왕을 퇴위시키도록 하는 등 고려의 국정을 농단하는 한편 전횡을 일삼았고, 이에 보다못한 공민왕은 원의 영향력이 약해진 1356년 기철 일족을 비롯해 친원파를 대대적으로 제거했다.

    기황후는 원 혜종을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위시키자고 주장했고,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왕으로 책봉했다. 그러나 고려가 이를 따르지 않자 기황후는 덕흥군에게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주어 고려 정벌을 명했고, 이들은 평안도 지방까지 진출하였으나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 대패했다.[3]

    각주, 출처는 위키백과에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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