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문........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10점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최근에 소설을 잘 안 보고 있다는 반성의 뜻을 담아 읽기 시작한 테드 창의 중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제목이 무슨 논문 같은데 이 사람 소설 제목이 이랬던 게 한 번의 일은 아니다.

테드 창의 소설은 대단히 훌륭한 부분과 별 볼 일 없는 부분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청동과 주석과 목재가 섞인 어떤 조각 같다고나 할까.

가령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같은 경우는 스토리텔링으로는 재미있는데 SF라는 측면에서는 애매한 부분이 있고, 사실 논리적으로 볼 때 약간의 반칙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바빌론의 탑』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스토리 상으로 보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보다 떨어진다. 사실 내가 처음 감탄한 작품은 『숨결』이었는데, 이건 스토리건 과학적이건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단편이었다. 그런 이유로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샀는데, 여기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은 책 제목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을 『네 인생의 이야기』였다. 이 단편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쓰기에는 건방져 보였던 모양이다.

전혀 다른 세계의 지성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를 살펴보는 이야기인데, 과학에 기반한 상상을 풀어나가는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네 인생의 이야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기반이 다른 곳에서 발전한 지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개 방식도 결과물도 모두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작가의 문제 의식은 동일한 것이라는 생각이 내겐 든다.

다만 아이디어에 감탄하는 것, 또 그 아이디어를 풀어가는 수법에 감탄하는 것과 그 이야기 자체에 감탄하는 것은 좀 다르다. 이 작품은 그 점에서도 『네 인생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아이를 잃은 슬픔이 깔려 있는 『네 인생의 이야기』와 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를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내게 비슷한 감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극적인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감정에 깊이 몰두하기에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드라이하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다시 한 번 하지만...

그렇긴 해도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네 인생의 이야기』보다 더 깊은 "인생"의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것은 훌륭한 작품일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재미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훌륭한 소설이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덧글

  • 긁적 2013/10/19 18:23 #

    포스트 제목 보고 '읭? 초록불님이 언제 코딩하셨지?' 이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객체'라는 개념을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을 컴퓨터 안에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걸로 간주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시간에 이걸 기반으로 클래스랑 인스턴스를 설명했더니 선생님이 칭찬해줬음. ㄲㄲㄲ. 아 물론 꼬꼬마 학부생 아니면 다 아는 이야기죠 -_-;) 객체의 생애주기를 인간의 생애주기로 간주하는 것은 꽤 적절한 발상으로 보입니다. 사실 추상화만 잘 하면 인간에 해당하는 객체도 만들 수 있음용.
  • 초록불 2013/10/19 18:24 #

    저 소설을 읽어보면 "간주"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생애를 다루고 있어요...
  • 미자씨 2013/10/20 04:07 #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에 뭐더라 0으로 나눌수있다는 걸 증명한 여자 얘기가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참 쓸쓸했죠
    사랑하지 않는다...
  • 초록불 2013/10/20 07:11 #

    「영으로 나누면」이라는 작품이죠.
  • highseek 2013/10/20 21:07 #

    ...제목보고 전공서인줄 알았습니다;;
  • 초록불 2013/10/20 21:12 #

    이 양반 제목들이 좀 그런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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