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속이기 *..역........사..*



전국시대 거상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온 진나라 공자 자초에게 접근해서 그를 차기 진나라 왕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에 착수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초는 차기 진나라 왕이 되지요.

이 정도에서 멈췄으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여불위는 자기 아이를 가진 미녀를 자초에게 넘겼는데 이 여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이 바로 훗날의 진시황이죠. 이 일은 정말로 일어난 일인지 논란이 있죠.

대개 반론은 임신한 여인을 바쳐서 자기 자식이라고 속이는 일이 가능하냐는 거죠. 고대에 임신 사실을 알려면 그 시기가 지금처럼 한 달만에 안다든가 하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고 출산이 이르다면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요. 더구나 자기 자식을 후대 왕으로 만들려고 할 때 임신된 아이가 사내인지 알 방법도 없으니 이런 일은 도박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일단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 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불위는 한단의 여러 첩들 중에서 절세미인이며 춤을 잘 추는 여인을 얻어 동거하였는데,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았다. 한편 자초는 여불위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녀를 보고는 마음에 들어, 이에 일어나 축수를 빌면서 그녀를 요구하였다. 여불위는 화가 났으나, 이미 자초를 위하여 가산을 탕진하며 진기한 재화를 낚으려는 계략을 상기하고, 이리하여 마침내 그 첩을 바쳤다. 그녀는 스스로 임신한 몸임을 숨기고, 만삭이 되어 아들 정을 낳았다. 자초는 마침내 그 첩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 사기, 여불위열전

위 내용을 보면 여자를 바친 것은 여불위의 계략이 아닙니다. 여불위는 날벼락을 맞은 거죠. 후일 태후(제태후)가 된 진시황의 생모는 음란한 짓을 계속 하다가 결국 노애라는 희대의 정력가를 만나 역모까지 꾸밉니다. 이것이 들통나면서 노애는 삼족이 주살되고 여불위도 노애를 소개한 책임을 지고 실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해에 전국시대 2강인 초나라에서도 변란이 있었습니다. 초나라에는 전국 4공자 중의 하나인 춘신군이 있었는데 이 춘신군이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과거 춘신군 황헐은 진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유세를 펼쳐 성공하고 초나라 태자와 함께 진나라에 인질로 갔습니다. 그후 초나라 왕이 위독해지자 춘신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태자를 귀국시키고 초나라에는 태자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며 시간을 끌었죠. 마치 신라의 박제상이 한 것 같은 일을 한 것인데, 다른 점이라면 춘신군은 목숨을 건져 귀국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공로로 춘신군에 임명되고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초나라를 부강하게 이끌었죠. 그런데 초나라 왕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춘신군은 종종 여자를 바쳤는데 여전히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때 조나라 출신의 이원이라는 자가 등장합니다. 이원에게는 천하절색인 누이동생이 있었죠. 이 여자를 왕에게 바쳐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했지만 초왕이 씨없는 수박이라는 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후궁은 총애를 언제 잃을지 모르니까요.

이원은 초왕을 포기하고 실권자인 춘신군에게 누이를 바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누이는 임신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원이 엉뚱한 발상을 합니다. 이원은 누이를 꼬셔서 춘신군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게 하죠.

"국왕은 당신을 아끼지만 자식이 없으니 이제 형제가 왕위를 계승하면 권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소첩의 임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소첩을 초왕에게 바치십시오. 초왕은 소첩을 총애할 것이고, 만일 소첩이 아들을 낳는다면 당신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이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때 용감하고 명석하던 춘신군도 늙어서 정신이 혼미해진 것일까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맙니다. 이원의 누이는 아들을 낳았고 이원도 중용되었습니다.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이원은 춘신군을 제거하기 위해서 결사대를 조직해놓습니다. 춘신군의 일은 이미 나라 안에 회자되어 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몇 년 후 초왕이 위독해졌습니다. 이때 주영이라는 사람이 춘신군을 찾아옵니다.

주영은 춘신군에게 바라지 않는 행운과 바라지 않는 불행이 올 수 있다고 말하죠. 행운은 곧 초왕이 죽으면 어린 임금을 보좌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초나라의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불행은 이원이 벼르고 있어서 초왕이 죽으면 반드시 춘신군을 죽일 것이라는 점이었죠. 주영은 이걸 막기 위해 자신을 낭중으로 임명해주면 이원을 먼저 제거하겠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춘신군은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초왕이 죽은 날 궁중으로 들어가다가 이원의 결사대에 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뿐만아니라 일가가 몰살당하죠.

바로 當斷不斷, 反受其亂(당단부단, 반수기란:마땅히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하지 못하면 오히려 재앙을 만난다)이라는 고사성어를 낳은 사건이죠.

비슷한 시기에 두 강대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흔해서 있었던 것일까요?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을까요?

여불위와 달리 춘신군은 작정하고 군주를 속이고자 했습니다. 앞에도 말했지만 아들을 낳을지 모르는데 너무 모험이 아닌가, 라고 하지만 아들이냐, 딸이냐만 놓고 본다면 확률이 50%나 되는 도박이기 때문에 매우 해볼만한 일이긴 합니다. 옛날에는 점쟁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점이 아들인지 딸인지 맞추는 거였다고 합니다. 일단 딸이라고 한 뒤에 부적 쓰고 비방 알려준 뒤에 아들이 나오면 자기 덕이고, 딸이 나오면 비방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면 되거든요.

춘신군의 경우도 딸이 나오면 없는 일로 치면 되고, 아들이 나오면 대박이니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죠. 춘신군의 일이 사실이라면 여불위의 일도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여기에 조금 다른 사례지만 고려 우왕의 경우를 살펴볼 수도 있겠습니다. 우왕은 [고려사]를 따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로 되어 있죠. 신돈과 반야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가 일찍 죽고 어디선가 데려온 비슷한 아이를 신돈의 아이로 둔갑시켰는데 이 아이를 공민왕에게 바친 걸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이 별로 신빙성이 보이지 않아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나왔는가 하면 이성계 일파가 권력 획득의 정당성을 기하기 위해 왕위의 정통성에 흠집내기를 한 것이라 보는 거죠.

그럼 진시황의 경우도 진시황의 정당성에 흠집을 가하기 위해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그렇게 보기에는 여말선초와 전국말기의 상황이 너무나 다릅니다. 진시황은 스스로의 힘으로 제국을 건설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진제국의 몰락 역시 무력에 의한 것으로 선양을 통해서 왕권을 장악한 조선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진시황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후세 사가들이 어떤 공작을 가했다고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 이것을 민중의 분노가 투영된 전설로 볼 수 있을까요? 여불위의 갑작스런 몰락과 연결하여 춘신군의 사건이 전이되어 후대에 여불위도 이런 일을 했기에 제거된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겁니다.

역사란 이렇게 무엇이 진실일까에 대한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안에서 가장 개연성이 높은 설명을 찾는 것이 역사가가 하는 일이겠지요.

덧글

  • 怪人 2013/11/10 17:30 #

    춘신군의 일화는 채치충 화백님이 그린 만화에서도 실려있죠.

    거기서 춘신군은 주영의 말을 듣고난 후 "내가 이원에게 그리 잘대해줬는데 설마 그러겠냐" 이러면서
    주영의 충고를 무시하고, 주영은 춘신군의 집에서 나와 도망갔으나
    왕이 급사한 후 이원은 춘신군이 왕의 붕어 소식을 듣고 들어오는 길에 자객들을 숨겨다 끔살.

    전국사공자 들 중에 아마 가장 비참하게 끝난 생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 초록불 2013/11/10 19:49 #

    맞습니다. 사기에 실린 내용과 동일합니다...^^
  • 위장효과 2013/11/11 17:40 #

    怪人님 인용하신 게 채지충 화백 작품중 "사기 전국사공자열전" 내용이죠. 사기의 그 엄청난 분량중 채 화백이 왜 딱 저 열전들만 만화화했는지 그게 좀 궁금하긴 합니다.
  • dunkbear 2013/11/10 19:16 #

    - 덕분에 만화 킹덤의 스포일러를 당했네요. ㅋㅋㅋ

    - 춘신군 케이스는... 자기 권력이나 지위에 너무 안주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초나라에 왕 다음으로 2인자다. 누가 감히 나를..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 초록불 2013/11/10 19:50 #

    킹덤은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 2013/11/10 20: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초록불 2013/11/10 21:10 #

    킹덤은 역사적 사실을 베이스로 깔고 가니까 저한테는 스포가 안 되겠지만...^^

    한참 못 본 것 같네요...ㅠ.ㅠ
  • 루드라 2013/11/11 15:04 #

    아이디를 보니 엄청나게 반갑네요. 돌아오신 걸 미처 몰랐습니다. ^^;
  • dunkbear 2013/11/11 16:17 #

    루드라님 // 어익후, 감사합니다. (^^)
  • 고르곤 2013/11/10 22:12 #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한때 저런 2세 출생의 비밀설이 유행했던...... 음


    하긴 폄하를 위하여는 패드립 혈통드립도 불사하는 법이긴 합니다만
  • 초록불 2013/11/10 22:37 #

    도요토미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나보군요...
  • Joshua-Astray 2013/11/10 22:32 #

    우왕, 창왕은 아무래도 이성계가 뒤집어 씌운 냄새가 짙지만(성도 왕씨에서 신씨로 바꿔서 불렀으니 말이죠) 여불위-진시황은 아무래도… 그리고 대중들은 재미있는 걸 좋아하니까요.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첩을 바쳤다! 극적이죠 -_-ㅋ
  • 초록불 2013/11/10 22:38 #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3/11/11 02:02 #

    아무래도 그건 본인들이 알겠죠. DNA 검사를 할 방법도 없고.(...)
  • 초록불 2013/11/11 09:40 #

    무덤에서 진시황의 유체가 발견되면...

    이라고 생각해도 이미 그 전에 폭삭 썩었으니...
  • 위장효과 2013/11/11 17:42 #

    수은에 담겨있으니 뼈까지 다 녹아버렸을까요? (어디까지나 썰이긴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에는 "도대체 그 많은 처첩들 중 오로지 요도기미만 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게 말이 돼냐? 그것도 두 번이나!!!!" 이래서 더더욱 의심이 커졌을 겁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