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공자를 의심하다 *..역........사..*



사마천은 사기 열전을 쓰면서 첫 편으로 백이숙제 열전을 썼습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동생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왕이 죽은 뒤에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고자 했습니다. 백이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며 달아났는데, 숙제도 왕위를 잇지 않고 형을 따라 갔습니다.

이들은 주나라의 서백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그 나라에 살고자 갔는데, 도착했을 때 서백은 이미 죽었고 그 아들 문왕은 은나라의 주왕을 정벌하고자 군사를 일으킨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주나라는 은나라의 신하 나라였으므로 이는 대역무도한 행위로 볼 여지도 있었죠. 백이와 숙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출병을 만류합니다. 이에 격분한 신하들이 이들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유명한 강태공 - 태공망이 어진 사람들이니 해치지 말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은나라의 주왕은 죽어 마땅한 처지에 있었으니 백이와 숙제의 만류는 그야말로 고지식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들이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충성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태공망은 이들을 해치지 못하게 한 것이죠.

백이와 숙제는 이에 크게 실망해서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살다가 결국은 굶어죽었다는 건 정말 유명한 이야기죠.

공자는 백이 숙제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求仁得仁 又何怨乎
백이 숙제는 옛 원한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원망하는 일이 적었다. 어짊을 구하여 어짊을 얻었으니 무슨 원망이 있으리오.


하지만 사마천은 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쓴 시를 인용하며 그 시 속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읽어냅니다. 공자의 견해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죠. 사실 이 백이 숙제 열전의 서두에서도 이미 유가의 해석에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밝힙니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지만 허유가 거부하고 달아났다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가 유교 경전에는 아무 데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의혹의 눈초리를 던진 것이죠.

이 두가지 사례의 의심은 모두 당시 사마천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 한계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둘 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료에 있습니다.

요임금과 허유의 경우는 신뢰성 있는 자료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후대에 꾸며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거죠.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자료는 조심스럽게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사마천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이와 숙제의 경우에는 앞의 의문 - 즉 사료의 신뢰성 - 을 가지지 않고 있으므로 그 시의 주인공이 백이와 숙제라는 점을 사마천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기존 해석과 상반되는 모순된 사료의 등장이라는 것에 있게 됩니다.

나 자신은 백이 숙제 문제에 있어서는 사마천의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동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충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역경 속에 떨어지고 마는 상황이라는 것은 바로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했가가 당한 일과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 원망이 안 나온다는 건 불가능하다, 라는 게 사마천의 머릿속에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공자님 말씀일지라도 그에 반대되는 사료가 존재한다면 마땅히 의심해야 한다는 게 사마천의 역사관이었던 거죠. 오늘날에도 본받아야할 자세입니다.







문득 내노라하는 과학자 양반이 일간지에 "천부경은 신라시대 실재 인물 최치원에 의해 정리됐기 때문에 존재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뻔뻔하게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혀서 포스팅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학의 기본은 의심에 있다는 거 정도는 알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P.S. 천부경과 최치원 드립이 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 1% 궁금해지는군요.


덧글

  • 유독성푸딩 2014/04/14 16:17 #

    뿌나 조말생의 명대사가 떠오르는군요.
    바로 그것이옵니다 전하. 끊임없이 의심하소서.
  • 초록불 2014/04/14 17:18 #

    "뿌나"는 뭔가요...라고 쓰다가 알았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겠군요...^^
  • 존다리안 2014/04/14 16:48 #

    요새 리메이크된 과학다큐 코스모스에서도 옛 아랍의 과학자 입을 빌어 과거의 경전의 권위에
    기대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탐구하라고 말하지요. 이렇게 보면 과학정신은 옛날부터 이미
    자리를 잡았었던 모양입니다.
  • 초록불 2014/04/14 17:18 #

    코스모스 보시는 모양이군요. 덕분에 일요일에 늦잠을 자게 되긴 하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고등학생 때 보았으니...) 참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shaind 2014/04/14 19:47 #

    최치원이 백산 어딘가에 새긴 걸 계연수가 발견했다라고 주장되는모양이군요.
  • 초록불 2014/04/14 20:23 #

    말도 안 되는 주장인데, 일단 계연수가 최치원을 언급하기는 했지요. 음, 그후에 최국술이 그 언급을 가지고 문집을 만들어서 끼워놓은 모양이네요.
  • 까마귀옹 2014/04/14 19:59 #

    그러고 보니 고려나 조선의 유학자들이 사마천의 저런 입장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궁금하군요. 물론 '감히 공자님을 능멸해?' 따위의 반응은 아니겠지만.
  • 초록불 2014/04/14 20:24 #

    아니, 그런 반응이 있을리가요.

    서자 출신 공자를 섬기면서 서자를 박해하던 유학자들이... (먼산)
  • 2014/04/14 22: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15 10: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역사관심 2014/04/15 04:19 #

    실재한 사람이 이야기한 것이라 단언할수 있다는 자신감(?)...이라. 인문학자도 공부할수록 할수없는 말인데 하물며 이과쪽 학자분이 저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면 학문자체에 대한 생각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14/04/15 10:16 #

    천문학에 대한 호감은 칼 세이건이나, 현재 방영 중인 코스모스로 높아졌다가 저런 양반 때문에 뚝 떨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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