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씨 이야기 *..문........화..*



소호씨 이야기 - 10점
김인희 지음/물레


동이족의 신 소호. 소호금천씨가 신라 왕성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부터 동이와 관련이 있으니 당연히 우리 것이라는 가당찮은 믿음 속에 있기도 한 신, 소호. 어느 넋나간 유사역사가는 IT업계의 소호 열풍과 소호씨를 연관시키는 글을 싸질러서 웃음을 주기도 했지요. 그건 영어라고요...-_-;;

이 책의 서문에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대괄호는 제가 붙인 주석입니다.

10년 전[1999년], 나는 베이징의 한 대학[베이징중앙민족대학]에서 「한국과 먀오족[묘족]의 창세신화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의 선정부터 일종의 모험이었다. 나는 한민족과 먀오족이 어떤 연계점이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고고문화를 탐색하던 중 다원커우[大汶口]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스승인 마쉐량[馬學良] 선생께서는 이런 내 관점에 반대하셨다. "만약 네 가설이 사실이라면 동아시아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중대한 문제야. 그런데 네 논거는 아직 부족해. 나는 네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스승은 단호했다.

자, 여기서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중국인 학자라서 당연히 연관성을 부정한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그 분의 말씀에 따라 박사 학위를 늦추기로 하고 "떠나라 하실 때 가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분은 논문 발표회를 곧장 진행하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네 관점이 잘못됐다면, 사람들이 너를 비판할 것이고 다시 너와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또한 학문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논문 발표회를 마치고 마침내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분의 논문 평가는 냉정했다. "이 논문은 아직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며, 필자가 앞으로 더 연구해서 증명해야 한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해와 달리 학문의 세계에서는 스승과 견해가 다른 논문이 통과되는 일이 이와 같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박사 학위란 전문가들과 토의할 수 있는 자격이 발생했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 얼마 전에 뵌 원로학자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이 글을 읽으면서 새삼 떠오르더군요.

각설하고, 아무튼 논문이 통과되었으니 한민족과 묘족은 뭔가 연관이 있는 걸까요? 정말요? 여기서 다시 한 번 반전이 찾아옵니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고대 동이족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를 모으다가 다원커우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고대 한민족과 다원커우 사이에 긴밀한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원커우 사람들은 한국 학계에서 상상해왔던 우리의 선조 동이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스승의 생각이 옳았던 것이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이죠. 이미 역사학계에서 결론이 나와 있는 것처럼 산동지방의 동이와 고대 한민족은 연관성이 없다라는 겁니다.

이 책은 소호씨가 다원커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솟대 - 한국의 솟대처럼 고정된 위치에 박아두는 것이 아니라 제의 때 임시로 세운 토템 기둥이라 그러오. (위 책, 60쪽)

솟대는 양 문화의 공통성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것인데, 위와 같은 차이점이 있다는 이야기. 같은 형태만 나오면 다 싸잡아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는 이 책에서 도기로 만든 북 - "도고"가 독일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로 알 수 있습니다. (위 책, 70쪽)

동이, 한 번쯤 들어본 친숙한 용어일 듯한데... 한국인들도 동이족 후손이라 들었소만... 그런데 고대에는 동이가 두 개였거든. 사실 이 둘의 관계는 불명확하지. 등치시킬만큼 동일한 민족이라고 확정하기도 어렵고. 하나는 포악하기로 유명한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 이전 문헌이나 금문에 등장하는 동이이자 나 소호를 신으로 떠받들던 다원커우 인이지. 이들은 상나라가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실체가 사라지니 기원전 1,500년경 이후 소국들로 남아 있긴 했지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지. 다른 하나는 『후한서』 이후의 서적에 등장하는 동이로 고대 한국과 관련된 부여, 고구려, 삼한 등인데, 이외에도 읍루와 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혈연공동체가 아니라 그저 "동쪽에 사는 이민족"이란 의미였을 듯해. 요컨대 "선진시대의 문헌에 나오는 동이는 산둥에 살던 신석기인이고, 『후한서』 이후에 나오는 동이는 동북에 거주한 철기 문화인이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가 되거든. (위 책, 100~101쪽)

선진시대 동이와 이후 동이를 혼동한 원인은 『후한서』 동이열전에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동이열전에서 동북 동이의 기원을 산둥 동이에서 찾아버리는 바람에 그후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는 거죠.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최소한 다원커우의 동이와 한민족의 선조인 동이는 별개라는 거야. 이유는 간단해. 물이 너무 높았어. 해침도 많아 감히 바다에 배를 띄울 용기가 없었던 거지. (위 책, 101쪽)

다원커우, 다원커우 하니까 뭔지 모를 분을 위해 우리가 흔히 아는 우리 독음으로 말해주자면 이게 바로 유사역사가들이 홍산문화 나오기 전에 물고빨고 하던 대문구 문화입니다.

큰 활이라고 푸는 夷자가 사실 별 관계가 없다는 것도 이미 증명되어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夷자를 大와 弓으로 풀면서 활 잘 쏘는 민족이라고 하는데 나로선 '글쎄올시다'야. 왜냐하면 "타이안 다원커우 유적의 경우 뼈로 만든 화살촉은 전체 골기 중 19퍼센트이고 리우린 유적의 경우에도 300개의 골기 중 뼈화살촉은 거의 없다"고 하거든. (위 책, 101쪽)

다원커우 인들과 신라인들은 편두라는 머리 모양을 한 공통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다원커우 인의 편두와 예안리 인의 편두는 그 방법이 달라 두개골 모양도 큰 차이가 나. 다원커우 인이 머리 밑에 딱딱한 것을 받쳐 편두를 했다면, 신라인은 돌같이 무거운 물건으로 이마를 눌러 편두를 했지. 다원커우 인의 편두는 비교적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예안리 인은 상당한 고통을 감수해가면서 편두를 만들어야 했어. (중략) 따라서 예안리 인의 편두 습속이 다원커우 문화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볼 수는 없어. 오히려 중국 동북부의 편두골과 모양이 유사한 점이 많지. (위 책, 163~164쪽)

대충 소개는 이 정도. 이 책의 진가는 사실 이런 부분이 아니고 대문구 문화를 통해 신석기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있겠지만...^^;;

덧글

  • 나루 2014/05/26 02:15 #

    IT의 소호열풍과 연결시키다니 창의력이 대단한 분이네요... ㄷㄷㄷ
    그건 그렇고 소호금천씨의 금천과 서울시 금천구는 연관이 있으려나요. 과거에 그를 모시는 사당같은게 있었다거나??
  • 초록불 2014/05/26 17:49 #

    허거걱... 금천구는 조선시대에 금천현으로 불린 데서 유래한 것이고 금천현의 유래는 고려 때 금주라고 부른데서 유래하며, 金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衿자를 사용합니다...ㅠ.ㅠ
  • 나루 2014/05/26 18:10 #

    오오 아무상관없고 심지어 한자도 다르군요 ㅠㅠ
  • 역사관심 2014/05/26 02:49 #

    박사 학위란 전문가들과 토의할 수 있는 자격이 발생했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 얼마 전에 뵌 원로학자께서 말씀하시더군요.
    >> 당연히 그렇고 옳은 말씀입니다. 박사학위의 의미는 어느분야건 대부분 그렇게 된지가 꽤 오래되지요.
  • 초록불 2014/05/26 17:49 #

    하지만 안 그렇게 생각하는 박사님들이 요기조기 뿅뿅~
  • 아빠늑대 2014/05/26 02:59 #

    뭐라고요? "물이 너무 높았어. 해침도 많아 감히 바다에 배를 띄울 용기가 없었던 거지" 라고요? 이런 식민사학의 개! 중국 학계의 암막에 빠진 자! 이미 이전에 위대한 우리 민족은 100만마력 디젤 엔진을 개발하여 운용했구만! 그따위 물의 높이쯤이야!!
  • 위장효과 2014/05/26 08:39 #

    뭔 소리하는 거요? 100만 마력 디젤엔진? 지금 역사적 사실응 왜곡하고 있네. 그 시절 위대한 우리 민족은 핵융합 엔진을 개발해서 항성간 우주비행을 실용화했단 말입니다!!!!! 겨우 디젤엔진이라니!!!!!!
  • Masan_Gull 2014/05/26 09:01 #

    으아니, 우리 민족은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버드나무 잎으로 바다를 건너는 위대한 민족이었는데, 그런게 필요했을리가요!
  • 듀란달 2014/05/26 09:30 #

    사실 우리 옛 조상이신 동이족의 과학 문명은 정부에서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기술 중 일부를 실체화한 것이 바로 대행성병기 윤영하함인 것이죠!

    잠시만요.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들기니 나가봐야겠네요.
  • 초록불 2014/05/26 17:50 #

    아니, 이 양반....(이라고 하면 안 되던가?) 그럼 서민들이...!!
  • 대공 2014/05/26 07:22 #

    좋은 책이군요
  • 초록불 2014/05/26 17:50 #

    좋은 책입니다.
  • 을파소 2014/05/26 09:25 #

    그들에겐 중국 유학 가서 세뇌당하고 돌아온 사람으로 보이겠죠.
  • 초록불 2014/05/26 17:50 #

    푸하하...
  • 야망 2014/05/26 13:16 #

    한국역사가 은상문화와 연결지어지는 부분은 기자전승이 거의 유일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도 고죽국 유민들에 의해 요서, 요동 제족들에게 전파, 변형(서로 기자의 후손이라 주장)된 것일 확율이 높아서리, 은상문화와 직접 연결되는 것도 아니죠.
  • 초록불 2014/05/26 17:51 #

    기자 전승은 확실히 의문이 좀 있습니다.
  • 야망 2014/05/26 21:02 #

    고죽국 유민들이 한국역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봐야죠. 일본은 도래인이라 구분짓고, 그들을 선조의 한 부류로 보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는 듯 한데, 한국은 죽자 사자 고조선이죠, 아니면 동이거나.

    한국역사도 일본역사와 같이 도래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는 서로 연결고리는 없으면서 연결지어지는 부분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 초록불 2014/05/26 21:42 #

    도래인이라고 쓰지는 않지만 유이민이라고는 흔히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 루드라 2014/05/26 23:28 #

    구중천이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의 존재를 이미 알고
    태양계의 행성 숫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도 본 적이 있군요.
    (지금은 명왕성이 퇴출됐지만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

    그래도 IT 업계의 소호와 소호금천씨를 연결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려나요? ^^
  • 초록불 2014/05/27 10:57 #

    뭐, 그 정도야 쎄고 쎘죠...^^
  • 진보만세 2014/05/27 10:50 #

    솔직히 웃음밖엔 안나와요..고려대엔 원나라 풍속을 닮지 못해 안달, 조선대엔 명나라 풍속을 닮지 못해 안달, 일정기엔 일본 풍속을 닮지 못해 안달하던 무리의 후예들이 지금와선 대쥬신제국 대륙평정의 고대사 어쩌고 헛소리하는 걸 보면..
  • 초록불 2014/05/27 10:57 #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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