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둘이 굶어죽은 임금님 *..역........사..*



세종대왕에게 광평대군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관상에 굶어죽을 상이라고 하여 세종대왕이 발끈해서 많은 전답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광평대군은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굶어죽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야사일 뿐, 사실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굶어죽은 자녀를 둘이나 둔 임금님이 있으니...


영조가 바로 그 대상입니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서 굶어죽었는데, 그게 1762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4년전인 1758년에도 굶어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입니다.

정빈 이씨 소생으로 딸 중에는 첫째였습니다. (자식이 모두 2남 12녀였다니 대체 임신 기간이 아닌 때는 언제였단 말인지...)

여섯 살 때 옹주로 봉해지고 열 살 쯤에 홍역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이때 순정이라는 궁인의 독살 미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평소 성깔이 나쁘다고 구박을 받던 순정은 세자를 저주하고 화순옹주의 홍역을 틈타 독을 썼다고 하죠. 이 일로 효장세자 독살설도 나오는 것 같은데 저주를 한 건 분명한 기록이 있지만 독을 썼는지는 애매합니다. 화순옹주는 이때 하혈을 하는 증상이 있었다는데, 어쩌면 이 일로 불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열세 살에 동갑내기인 김한신(金漢藎)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검소한 결혼식을 치러 그 후에도 이야기에 오를 정도였더군요. 김한신은 미남자였던 모양인데 바람도 피지 않고 부부 금슬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한신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되는데, 김한신은 자식이 없고 양자로 들여서 대를 잇습니다. 김정희도 양자여서, 혈연적인 의미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할듯. 이렇게 부부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것은 화순옹주가 어릴 때 당한 폐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부부가 서른아홉 때 김한신이 먼저 죽었습니다. 부마가 된 이후 늘 근신하며 없는 듯이 살았다고 하지요. 그러자 부인 화순옹주는 곡기를 끊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1월 4일 김한신이 죽고 화순옹주가 곡기를 끊었다고 하니 걱정이 된 아버지 영조는 1월 8일 화순옹주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화순 옹주는 월성위(月城尉)가 죽은 뒤로부터 7일 동안 곡기를 끊었다고 하니, 음식을 권하지 않고 좌시하면, 어찌 아비된 도리라 하겠는가?"

7일간 곡기를 끊었다고 말을 하지만 이건 수사적인 표현인 모양입니다. 이 날은 사흘째 되는 날로 영조는 미음을 끓이게 해서 먹게 했지만 화순옹주는 한 모금 마셨다가 그대로 토하고 맙니다. 영조도 더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슬퍼하며 환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월 17일 결국 화순옹주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날 기록에는 14일만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끝에 숨을 거둔 것으로 나옵니다.

조선왕실에서 나온 유일무이한 열녀라고 하지요.

화순옹주는 남편을 따라 자살한 경우고, 사도세자는 아버지로부터 처벌을 받아 죽은 것이라 경우는 다르지만 둘 다 굶어서 죽은 것은 동일하니, 동서고금에 이런 경우가 또 있을까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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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硏省齋居士의 雜學庫 : 추계 답사 후기(1)(16.09.30~16.10.01) 2016-10-03 18:53:19 #

    ... 다. 김정희는 봉사손奉祀孫(제사를 받드는 후손)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참고로 화순옹주는 김한신 사후 단식 끝에 사망했는데, 조선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입니다.(초록불 님의 글 참고 [링크]) 정조 때 화순옹주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홍문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현재 추사 고택은 원래 규모의 절반이 좀 안되는 20여칸만 남아 있고, 그나마도 원래 모습이 많이 훼손되 ... more

덧글

  • 연성재거사 2014/07/17 15:01 #

    실록을 보면 광평대군의 사망 원인은 창진瘡疹이었다고 합니다. 천연두나 홍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귀하게 자란 신분으로 곡기를 끊는다는게 짐작이 되질 않는데, 김한신과 화순옹주 부부의 금슬이 매우 좋았던 모양입니다.
  • 연성재거사 2014/07/17 15:01 #

    광평대군과 관련해서 하나만 덧붙이면, 광평대군 사후 의원을 국문하자는 주장에 대해 세종이 거절합니다. 이 때 마지막에 한 말이 명언입니다.

    '예로부터 임금된 이가 사랑하는 첩이나 아들의 죽은 것으로 의원을 죄주는 일이 많으나, 나는 실로 그것을 잘못으로 여긴다'(自古人君以愛妾愛子之死, 多罪醫者, 予實非之.)
  • 을파소 2014/07/17 16:03 #

    실은 밀본이 암살...(퍽)
  • 위장효과 2014/07/17 16:19 #

    그리고 그 암살을 기획한 모사가 나중에 광평대군의 형인 수양대군의 모사가 되어 계유정난을 계획하는데...(퍽퍽!!)
  • 동굴아저씨 2014/07/17 16:36 #

    아아....화순옹주는 눈물이 앞을 가리게 하는군요.
  • 역사관심 2014/07/17 17:30 #

    화순옹주님은 너무 불행한 인생을... ㅠㅜ
  • 네비아찌 2014/07/17 18:03 #

    신하들이 '옹주님 열녀 조건 충족하시니 열녀문 세웁지요?' 했다가 '불효여식에게 무슨 열녀문인가!' 하는 호통만 듣고 말았다지요.
  • 초록불 2014/07/17 18:20 #

    아, 그렇지요. 그랬다가 나중에 정조가 세워주었던가요...
  • 전위대 2014/07/17 18:23 #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서 죽었다고 해도 그건 사고사지 굶어죽은 건 아니군요. 근데 1758년이면 18년 전이 아니라 4년전입데쇼?

    p.s 사도세자는 엄밀히 말해서 아사가 아니라 갈사입죠. 먹을 것뿐만 아니라 마실 것도 안 줬으니.,.
  • 초록불 2014/07/17 18:34 #

    허걱... 제가 산수를 못하는 줄은 익히 알았으나... 대체 뭐랑 혼동을 일으킨 건지 모르겠네요. 수정했습니다...ㅠ.ㅠ

    옹주님도 물도 안 마신 듯해요...
  • 전위대 2014/07/17 18:40 #

    대천록이나 그런 기록을 보면 다들 설마 지 아들인데 죽이기야 하겠나 하면서 뒤주 열고 먹을 걸 줬다는군요. 세자도 뒤주에서 나와서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 하면서 산책도 하고... 그러다가 그걸 안 영조가 격노해서 구선복을 시켜서 뒤주를 꽁꽁 묶고는 아무도 음식을 못 주게 지켰다죠.

  • 2014/07/17 18:3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7/17 18: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wkdahdid 2014/07/17 20:18 #

    영조의 생도 파란만장하군요~
  • 알렉세이 2014/07/18 08:42 #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에공
  • 푸른화염 2014/07/19 17:33 #

    얘기와는 관계 없지만 저 화순옹주의 직금녹원삼이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퍽 아름다워썬 것이 생각나는군요. 허허.. 여하간 영조도 자식 농사는 지지리 실패했던 장면을 보자면 문득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초록불 2014/07/22 10:26 #

    오호, 그런가요.한 번 보러가...기에는 좀 멀군요. (먼산)
  • anchor 2014/07/21 09:29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7월 21일 줌(www.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7월 21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초록불 2014/07/22 10:26 #

    고맙습니다.
  • 전진하는 북극곰 2014/07/21 19:31 #

    화순옹주 참 안따깝네요 ㅜㅜ

    줌메인에 뜬거 추카드려요 ^^
  • 초록불 2014/07/22 10:26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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