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전국옥새의 행방 *..역........사..*



1. 전국옥새의 제작

화씨지벽 - 초나라 사람 和씨가 楚山에서 봉황이 앉은 자리에서 옥을 구해 초나라 여왕-무왕-문왕에게 바침. (한비자)

400년 후 초의 위왕 때 장수 昭陽이 위나라를 침공해서 7개의 성을 함락시키는 대공을 세우자 상으로 화씨벽을 줌.
소양은 赤山에서 화씨벽을 자랑하다가 연못에서 튀어오른 물고기를 바라보던 중 잃어버림.

50년 후 趙의 惠文王의 내시 繆賢이 금 오백냥으로 옥을 샀는데 이것이 화씨벽이었음. 혜문왕이 빼앗음.

秦의 昭襄王이 15개 성과 교환을 요청함. 인상여가 지켜냄.

61년 후 진은 조를 멸망시키고 화씨벽을 차지함.

진시황이 화씨벽으로 전국옥새를 만듬. (전국옥새는 남전의 옥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음) -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 : 하늘에서 명을 받으니 이미 수가 영창하리라)

기원전 219년 진시황이 동정호를 지날 때 풍랑이 일어 용왕에게 제물로 전국새를 바침.

기원전 211년 진시황이 華陽 땅에서 사냥을 할 때 전국새를 누군가가 바쳤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왕 자영에게서 전국새를 빼앗음.

왕망 때 태후가 옥새를 빼앗아가는데 항의해서 옥새를 집어던져 한 귀퉁이가 깨지고 그곳을 금으로 메꿈.

왕망이 망한 뒤(23년) 전국새는 李松이 차지. 이송은 회양왕 유현에게 투항.

25년 광무제 유수가 차지.

190년 한말 손견이 낙양 궁전 궁녀의 시체에서 발견.

손견의 아들 손책은 전국새를 원술에게 넘김.

원술 사후 전국새는 광릉태수가 수습. 헌제에게 돌아감.

220년 조비가 위나라를 세워 전국새를 차지.

265년 진나라로 승계됨.

311년 서진 멸망하면서 흉노 손으로 넘어감.

328년 후조의 석륵이 차지 - 염민의 위나라로 넘어감 - 염민의 아들이 晉穆帝에게 투항하며 바침 - 이후 동진으로 넘어감.

동진-송-제-양을 거쳐 양무제 때 반란군 후경이 차지 - 후경의 부하 조사현이 관원건에게 투항 - 곽원건은 북제의 광릉태수에게 바침 (광릉태수들은 전국새와 인연도 깊군)

522년 북제의 황제 高洋(문선제)은 전국새를 태묘전에 바치며 성대히 행사
(446년 업성에서 전국새가 발견된 사건이 있음 - 둘 중 하나는 가짜라는 이야기)

전국새는 수나라 수문제까지 전해짐. 수양제가 피살된 후 소황후는 태자 楊政道와 돌궐로 도망침. 당태종때 소황후가 돌아와 당태종에게 바침

당 - 후량 - 후당으로 전해지다가 후당 마지막 황제 이종가의 자살 이후 행방이 묘연해짐 (936년 : 벌써 천년도 넘게 전해졌다. 진짜 보물이군)

송 철종 때(1097년) 함양에서 농부가 전국새를 땅 속에서 발견.

금이 송을 치면서 전국새를 집어감.

1294년 원나라 때 태사국왕 손자 석덕의 처가 전국새를 관리에게 팜.
(이미 많이 망가져 壽와 命만 희미하게 보임)

1368년 원 멸망. 전국새 행방 묘연.

명 홍치 13년 섬서성에서 전국새 발견(진짠지 아무도 모름)
원순제의 전국새를 후금의 태종이 빼앗았다고 함(역시 진짠지 아무도 모름)

덧글

  • 머미 2004/11/12 13:42 #

    안녕하세요. 무영형네에서 넘어왔습니다.
    전국새는 이미 211년에 가짜의 역사가 시작된 게 아닐까요?^^
  • 초록불 2004/11/13 10:22 #

    네, 반갑습니다. 아마도 그랬을 확률이 높지만 211년 옥새가 한나라를 거쳐 서진까지 전수된 것은 확실하죠. 그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 머미 2004/11/15 11:10 #

    글쎄요, 전 원래 의심이 많아서, 손견이 발견한 것도 이벤트(가 아닐까), 손책이 원술에게 주고 군사를 빌린 것도 가짜(가 아닐까)...뭐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 진짜는 대체 어디에?)
  • 초록불 2004/11/15 14:10 #

    손견이 발견한 옥새는 한나라에서 사용하던 옥새가 분명합니다. 당시 낙양은 초토화 상태라 그만한 옥을 구하기도, 옥을 다룰 장인을 찾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손견이 그 자리에서 일부러 자신이 옥새를 찾았다고 정보를 흘릴 이유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 때문에 목숨까지 잃고 마니까요.
  • 머미 2004/11/15 20:05 #

    야심있는 장수라면 '옥새가 나에게 발견된 것은 천명이 나에게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꾸며봄직한 이야기였겠죠(반드시 낙양에서 만들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미 장사에서 만들어 왔을 수도 있지요). 그때문에 죽었다고는 하지만 옥새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뭐, 그 속을 누가 알겠어요. 어차피 웃자는 얘긴데.)
  • 이홍기 2004/11/17 01:21 #

    손견이 발견한 옥새는 진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시에는 한나라 관리 출신이 곳곳에 퍼져있어서 옥새의 진위여부를 알아보는 이가 많았을 거라는 점과 촌놈중의 촌놈인 손견이 옥새를 위조했다면 거기에 속을 원술이나 원소등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손씨가 자립의 뜻을 분명히 나타낸 것은 손권의 시대지 손견의 대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손책의 시대에도 장차 자립하려는 대망을 품은 자들이 많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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