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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감동.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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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규태였군요.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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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신라의 차이
일본서기 웅략천황 5년(461년=개로왕 7년) 조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4월 백제의 가수리군(개로왕)이 동생 군군(곤지)을 일본으로 보내고자 하다.
곤지는 개로왕의 아내, 즉 임신한 형수를 내려달라고 청을 올린다.
개로왕은 이것을 허락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 임신한 부인은 이미 산달이 되었다. 만일 도중에 출산하면 부디 배에 태워서 속히 우리나라로 돌려보내도록 하라."

6월에 개로왕의 아내는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곳은 츠쿠시(축자)의 카가라노시마(각라도).
아이의 이름은 도군(우리 말로는 사마)라 했다. 바로 훗날의 무녕왕이다.
곤지는 형수와 아이를 백제로 돌려보냈다.


일본서기에는 곤지가 일본에 왔을 때 이미 5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웅략천황 23년(479년) 조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곤지왕 5인의 아들 중 둘째 말다왕(=동성왕)이 젊고 총명하므로 백제의 왕으로 삼았다.

동성왕이 즉위 시에 나이가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형인 개로왕이 임신을 시켰으니 동생인 곤지도 충분한 가임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내를 하사(?)한 것일까?

더구나 일본서기 무열천황 4년(501년) 조에는 혼란스런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인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1) 곤지왕자의 아들
(2) 실은 개로왕의 아들
(3) 동성왕이 무녕왕의 異母兄이 됨

이도학은 일본서기에 동성왕이 왕이 되는 시점에서 나이를 幼年이라 썼기 때문에 15세 이하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461년조 기사의 <이미旣 다섯 아들이 있었다>와 충돌한다는 점을 생각지 못한 것 같다.

따라서 위 (3)번의 기사 末多王, 是昆支王子之子也. 此曰異母兄, 未詳也에서 此曰異母兄을 나는 말다왕의 술어로 읽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무녕왕이 동성왕의 異母兄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동성왕이 무녕왕의 異母兄이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다면 대체 개로왕은 임신한 아내를 왜 동생에게 주었을까?
형이 죽지 않았으니 형사취수도 아니다.

한서 지리지에는 낙랑 지방에서는 빈객이 오면 처를 제공하는 습속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 경우와도 다르다. 이 풍습은 꽤나 오래 내려가서 통일신라 때 문무왕의 동생 차득공이 무진주에 들렀을 때 관리 안길이 자기 처첩 3명을 놓고 누가 들어가 접대를 하겠느냐고 말하는 장면에서 재현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내가 볼 때는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이것이 당연한 풍습이었다면 안길이 굳이 처첩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처첩들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당신과 살지 못할지언정 어찌 남과 잘 수 있습니까?"
즉 무진주=광주=백제 땅에는 이런 풍습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는 백제 땅이 신라에 병합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종신토록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한다면 명에 따르겠습니다"
다른 남자와 잤다고 버릴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이것 역시 백제 땅에는 이런 풍습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면에 차득공은 이런 행위 자체에 아무 의문도 없이 받아들인다. 즉 신라는 이런 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댓가도 확실했다. 차득공은 뒷날 벌목장과 세마지기 밭까지 내려주었으니.
삼국유사에는 차득공이 자신의 부인도 데리고나와 연회를 베풀었다고 적어 차득공도 부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경우, 도미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자의 정절이라는 문제가 다른 삼국보다도 더 높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공부 더하면 이야기 해 보겠다)

그러면 임신한 부인을 하사하는 다른 사례는 정말 없는 걸까?
있다.
일본에 있다.
일본의 전통 귀족 가문인 후지와라(藤原) 씨는 효덕천황(645-654)이 임신한 자기 부인을 내려주어 그 아들을 큰 아들로 삼아 가문을 이어가게 했다.
후지와라 가문을 연 나카토미노카마타리는 효덕천황의 부인 뿐만 아니라 천지천황의 임신한 부인도 받아 아들을 얻는다.
(사실 일본 관계는 잘 모른다. 좀더 조사해보면 뭔가 답을 찾을 지도 모른다)

현재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관계, 즉 자신의 부인과 아이를 내려보내 그 가문과의 관계를 혈연 이상으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다.

그런데 신라에는 이런 관계를 뒤집는 관습이 있다.
마복자라는 것이다.

임신한 아랫사람의 처를 윗사람이 아이를 낳을 동안 돌봐준 뒤에 태어난 아이를 마복자라고 부른다. 윗사람은 마복자의 후원자-말하자면 대부가 된다.

즉 백제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백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자기 처를 보냈으나 이 경우는 반대.

이 경우 그 아랫사람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아니며 아이를 낳은 뒤 몸조리가 끝나면 돌려보내준다. 어찌보면 일종의 산파 시설같은 노릇을 한 셈이기도 하다.
역시 이렇게 하는 이유도 가문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는, 즉 자신들의 세력 확장에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백제의 예는 딱 하나-그것도 일본서기에 보이는 것이지만 신라의 경우는 화랑세기에 숱하게 나온다. 백제의 역사가 소략한 것이 안타깝게 여겨질 뿐이다.

써놓고 보니 횡설수설이다. 일단 올려놓고 천천히 손보기로 한다.
by 초록불 | 2004/11/16 23:01 | *..역........사..* | 트랙백 | 덧글(5) |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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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4/11/16 23:16
에.. 뭐 짐작하실 분은 짐작하시겠지만 숙세가 때문에 자료 조사하다가 끄적거린 겁니다.
Commented by 이홍기 at 2004/11/17 01:23
저런점을 보면 점점 화랑세기가 진짜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 같네요. 전 아직 판단유보입니다.
Commented by 講壇走狗 at 2007/09/22 18:41
《일본서기》웅략기 嶋君의 훈은 semakisi입니다. sema는 중세 한국어 "셤"의 고형이고, kisi는 鞬吉支의 吉支로써《광주판 천자문》의 "긔ㅈㆍ"와 유연관계에 있는 단어로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9/22 19:23
講壇走狗님 / 일본서기의 훈이라 함은 서기에 붙어있는 발음이라는 뜻입니까?
Commented by 講壇走狗 at 2007/09/22 19:31
예. 《일본서기》의 최고사본인 岩崎本에 semakisi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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