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가 초자하? *..역........사..*



북한 평양방송 보도

항상 그렇지만 이런 간략한 보도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황당한 의견들이 날뛰는 모양이니 몇 자 적어보도록 한다. (여기다 적으면 뭐 달라지는 게 있던가?)

위 보도를 보면 살수를 초자하로 비정하기 위해 압록수를 현재 압록강이 아닌 태자하로 변경하고 있다. 이렇게 바뀌면 생겨날 무수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언급이 없다.

위 주장에서는 현대전도 아닌데 후방에 군대를 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고대 전투에서 후방에 군대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식량보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적지를 약탈해서 식량을 채운다. 그러나 수양제는 약탈 보급이 불가능할 것을 대비해 석섬 이상(현대식 섬의 무게면 300킬로그램이 넘는다!!)의 무게를 식량(1백일치 식량)으로 병사 하나마다 지게 만들었다. 너무 무거운 탓에 병사들은 식량을 몰래 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700그램이 병사의 하루 먹는 양이라고 할때 사서에 나오는 1백일치의 양식이면 70킬로그램이 된다. (아무튼 수나라 대의 도량형 단위를 잘 모르니 계산이 되지 않는다...-_-;;)

위 기사에서는 "수양제가 7월 24일의 패전 소식을 들은지 하루만인 7월 25일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총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위 기사가 어디에 나온 내용인지 모르겠다. 우선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그럼 <수서>에 나올까?

<수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七 月 壬 寅 , 宇 文 述 等 敗 績 于 薩 水 , 右 屯 衛 將 軍 辛世 雄 死 之 。 九 軍 並 陷 , 將 帥 奔 還 者 二 千 餘 騎 。 癸 卯 , 班 師 。

저 임인이 24일인가보다. (맞겠지 뭐). 그러면 다음날 계묘(25일)에 班師(반사)했다고 되어 있다. 군대를 돌렸다는 이야기.

우선 위의 글이 뭔 소린지 보자.

7월 임인, 우문술 등이 살수에서 패배했다. 우둔위장 신세웅이 전사했다. 구군이 모두 함락되었고, 장수는 달아나고 돌아온 자는 이천여 기에 불과했다. (위에 으로 나온 글자는 통전에는 至로 되어 있다) 계묘, 군사를 돌렸다.

무려 세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북한 방송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인에 패전한 군사들이 도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계묘에 우중문, 우문술이 군사를 돌린 내용일 수도 있다. 다만 <삼국사기>를 보면 수양제가 회군한 날짜가 계묘로 나오니 세번째는 아닌 듯 하다.

이쯤 되면 당신은 왜 꼭 우리한테 안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하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왜 그러냐 하면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본기 영양왕 23년조 (우문술은) 이에 동쪽으로 나아가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여리 떨어진 곳에 산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북한 학자들은 고구려 평양성이 현 평양이 아니라 요동 지역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체 무슨 근거로?

우문술은 군대를 회원진에서 출발시켰다. 그때는 언제였을까? <수서>에는 6월 기미에 수양제가 요동성에 와서 전황을 보고 화를 낸 뒤 성 서쪽 몇 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꾸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도 그 이후 우문술이 출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6월 기미라면 6월 10일이다. 만일 7월 24일이 패전일이라면 어쨌든 한달 이상의 전역이 된다. 그러나 북한 측 주장대로라면 전장은 요동성에서 하루 만에 닿는 거리다. 대체 한달 동안 우중문, 우문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냥 참고 삼아 적는다면 우중문은 이 일로 열받아서 죽었는데 죽었을 때 나이가 68세였다. 이 나이에 수백 리를 뛰었으니 그냥 내버려둬도 죽지 않았을까?)

더구나 우문술 열전을 보면 述 與 九 軍 至 鴨 綠 水 , 糧 盡 , 議 欲 班 師 。라고 나온다. 우문술이 9군과 더불어 압록수에 이르렀을 때 식량이 없어서 군대를 돌리고자 의논했다라는 내용이다. 하루만에 요동에 갈 수 있다면 대체 식량이 없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어서 군대를 돌릴 생각을 했을까?

우문술 열전의 다음 구절은 더욱 재미있다.

諸 將 多 異 同 , 述 又 不 測 帝 意 。
제장의 의견이 서로 많이 달랐다. 우문술은 황제의 뜻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하루만에 요동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면 우문술이 황제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왜?

북한 역사학자들이 근자에 무식해졌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막간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이 모두 역사학에서 국수주의 성향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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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홍기 2004/11/23 00:43 #

    하는 짓이 이 땅의 사이비들과 어찌 그리 똑 같은지 짜증납니다.
    참 예전에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625때의 기록을 보니 청천강 하류의 강폭이 무려 9km나 된다고 하더군요. 30만 대군을 모조리 수장시키기에 충분한 너비 같습니다.
  • 玄武 2004/11/24 22:42 #

    ..요새는 짱개(...)들도 비슷한 짓거리를 하고 있어서, 동양3국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 alias 2005/06/23 11:58 #

    근데 하루에 700그램이나 먹나요? 보통 한 사람이 일년에 한 가마(한 섬인가?) 먹는다고 들은 거 같은데...
  • 초록불 2005/06/23 14:38 #

    alias님 / 그것도 고대라 좀 줄여 놓은 것입니다. 일년에 한가마라 그정도 될 겁니다. 부식(반찬)을 그만큼 먹으니까요. (쌀만 먹는다고 이해하시는 건 아니죠?)
  • 해양 2009/05/06 22:49 #

    압록수가 태자하가 되면...이세적이 669년 당에 보낸 보고서에 "압록 이북의 미항성"중에 요동성이 있으니 요동성이 오늘날의 요양이 되지도 못하고, 지금껏 고증이 된 요동지방의 안시성 건안성 백암성 비사성 오골성도 전부 "압록강 이남"이 되어버리는 모순이 생깁니다. 아마 삼국사기에 기록된 전쟁기록과 전부 뒤틀려버리는 결과가 나올지도...
  • 초록불 2009/05/06 23:07 #

    유사역사학은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죠...^^
  • 해양 2009/05/06 23:02 #

    그러나 한국의 학계의 주장대로 평양이 지금의 평양일 경우 전쟁기록에서 추정되는 여러가지 정황과 부합합니다. 게다가 기록의 우문술이 진을 친 "평양 북방 30리의 야산"으로 추정되는 야산이 실제 지금 평양시 북쪽 15킬로지점 평양공항 남쪽부근(해발 130m)에서 확인됩니다.
  • 2011/12/24 16: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12/24 20:02 #

    제가 지금 원문을 확인할 상황이 아니어서...

    국경선에 대한 부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견들이 많아서 무엇을 통설이나 정설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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