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평양이 중국 요양이라고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 *..역........사..*



[한겨레] 수학으로 푼 고지도…“고려, 고구려 영토까지 통치했던 나라” [클릭]
고려시대 고지도에 묘사된 북한 평양이 사실은 현재 중국의 요령성 요양시 궁장령구라는 주장이 나왔다. 고지도가 나타내는 대동강과 그 지류 등에 번호를 부여하고, 궁장령구의 지도에도 똑같이 번호를 붙여 비교·분석해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 고지도 분석에 수학을 접목한 것이다.


이제 여기에 반론을 하면 유사역사학 주장자들은 "너희가 수학을 알아?"라고 할 판이다. 그 전에 수학자에게 "너희가 역사를 알아?"라고 말해야 한다.

[국민일보] 최규흥 인하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 수학으로 우리나라 고지도 분석 논문 발표 ‘월간 인물’ 1월호 보세요[클릭]
최규흥 명예교수는 정택선 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와 함께 ‘위상수학을 활용해 고지도 분석과 고려 서경 평양 위치 확인’을 주제로 공동 연구를 진행해 최근 그 연구 결과로 논문 ‘위상수학 교육과 묘청의 고지도 분석에의 응용, 교육문화 연구, Vol. 23, 271~296’를 발표했다.

[디지털타임스] 인하대 최규흥 교수, 고려영토 중국으로 확장 수학적으로 입증 [클릭]
최 교수는 "고려는 압록강 이남의 조그만 영토를 가졌던 소국이라고 인지해 왔다. 그런데 2017년 8월 6일 묘청의 서경 평양성 고지도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이 고지도의 둘레에 흐르는 강을 북한 평양의 대동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도가 나타내는 지역은 북한 평양이 아니고 지도가 가리키는 지역은 요양시 궁장령구라는 것을 이번 논문에서 중명했다"고 말했다.

[경기신문] “고려는 고구려만큼 영토 넓었다”
최 교수는 “고려는 압록강 이남의 조그만 영토를 가졌던 소국이라고 인지해 왔다”면서 “지난 2017년 8월 6일 묘청의 서경 평양성 고지도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는데 둘레에 흐르는 강을 북한 평양의 대동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사용된 지도가 이런 것이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지도가 무려 묘청의 서경 평양성 고지도라는 것이다. 고려 시대 지도, 그것도 고려 전기의 지도가 발견되었다면 이건 역사학계가 뒤집힐 일이다. 이런 대발견이야말로 논문으로 나와야 하는 일대 사건이다. 그런데 역사학계에 이런 보고가 된 적이 없다. 대체 이 지도는 어디에서 발견된 것일까?

답은 해당 논문에 있다.


참고문헌이 제시되어 있다. 그 책은 이것이다.


확인한 순간 정말 뒷목을 잡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인 이근호 선생은 명지대 연구교수로 있는 바, 이 분이 고려 시대 지도를 발견했다면 논문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이 지도는 그리고 이런 책 표지에도 사용된 바 있다.


그리고 기경량 선생이 해당 책을 확인했다. 책에는 조선 시대 지도라고 분명히 명기되어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이다.

소장처가 고려대학교 박물관이라고 되어 있는데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을 출전에 명기하지 않고 교양서로 만들어진 책을 출전으로 쓰고 있는 행태 자체가 논문을 작성하는 기본이 없다는 증거이다.

위가야 선생은 해당 지도의 정체도 고려대박물관을 통해 밝혔다. 이름은 서경전도. 조선 시대 지도로 명기되어 있다.


해당 논문의 주저자는 정택선이다. 최규흥은 교신저자로 되어 있는데 주저자이지만 무명의 정택선은 제껴두고 대한수학회 부회장이자 인하대 명예교수인 최규흥만 부각해서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다.

이 논문은 2017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기초연구사업이라고 나와 있다. 그야말로 국민의 혈세로 되도 않는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의 주장이 왜 허구인지에 대해서는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고구려 왕도로 박사 논문을 받은 기경량 선생이 자세히 써주었다.

수학으로 푼 고지도? 언론과 학술지의 총체적 문제이다 [클릭]

조선 후기의 평양 지도를 가지고 와서 일부를 똑 떼어서 위상 수학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인하대 연구소에서 결론을 내려놓은 곳에 맞춰먹기를 하는 이런 비학자적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논문을 쓴 목적 자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 이남에 위치한 작은 영토를 통치했던 작은 나라이었다고 배웠고 그렇게 인지해 왔다. 하지만 이 논문을 통해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대 고려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영토에 대한 자긍심. 이런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날이 과연 오는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논문에서 정택선은 고려 왕이 개경에서 서경(평양)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요양에 있는 거라는 어이 쌈싸먹는 주장을 한다. 기마에 능한 사람이면 하루에도 갈 거리를 7일에서 32일까지 간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두통이 올 지경이다. 개경에서 요양까지 1500리라고 제시하면서 기마에 능한 왕이면 7일이면 갈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왕이 하루에 200리 넘게 이동을 한다는 이런 비상식적인 주장을 좋다고 늘어놓는다.


이런 거짓말이라니. 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헛소리를 막 내뱉는 것일까? 저자는 너무나 당당하게 자시는 원문 한 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참고한 레퍼런스는 인하대고조선연구소의 복기대 연구(라고 쓰고 망발이라 읽는다)이다. 논문에 후반에 참고라고 해놓고 복기대 논문을 가져다 붙여놓았다. 26쪽 짜리 논문 중에 12쪽이 복기대 글이다. 맙소사.

이런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고 언론은 역사학자에게 자문 하나 구해보지 않고 싣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아찔하기만 하다.

이 논문을 분석하는데는 수학 같은 것은 1도 필요없다. 고려 시대 지도라고 착각한 조선 시대 지도를 놓고 저자가 헛발질 난무한 것이다. 평양성만 떼놓고 제시하고 있는데 조선 고지도에는 압록강 밑의 평양 말고는 나오는 평양이 없다.

각 언론에 보도된 아래 지도는 해당 논문에는 없는 것이다. 논문만 가지고 약하다고 판단해서 새로 추가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기경량 선생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19세기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광여도이다. 이런 것 밑에 보다시피 고려 태조 왕건 때 지도라고 사기를 거하게 치고 있다.

유사역사학에서는 방위 가지고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조선시대에도 평양을 걸핏하면 서경이라고 했다. 그럼 조선 시대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게 불렀겠나. 요양 지방도 각도상 별반 차이가 없다. 거기도 서경이 아니라 북경이라 불러야지. 이런 걸 논리라고 내놓는다.

이걸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선전하는 대학도 참... 언론에 나오면 좋은 일인줄 알고, 이걸 보고 사람들은 또 엉터리 역사 지식을 갖출 것이고... 지성의 실종 상태.


이 논문이 실린 학술지 교육문화연구는 인하대에서 발행하는 것이다. 북치고 장구치고!

덧글

  • DeathKira 2018/01/20 10:04 #

    긴 말도 필요없고 그냥 기가 차네요..
    원사료 한 줄도 안 읽어 본 게 뭐가 자랑이라고..
  • 초록불 2018/01/20 10:08 #

    이런 게 유수 언론에 역사학자 논평 하나 구하지 않고 막 실립니다.
  • 사회과학 2018/01/20 10:06 #

    수학적으로 증명이라니...기본적인 산수도 틀린 꼴인데...허ㅠ
  • 초록불 2018/01/20 10:09 #

    수학계에서 창피해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도연초 2018/01/20 11:14 #

    학문에 정치성을 집어넣으니 저런 복장터지는 결과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거기다 역사학 교수도 아니고 수학과 '명예'교수라니...

    (자칭 역사학자가 방송에 나와서 대마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주장을 하는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 초록불 2018/01/20 11:49 #

    그런 일도... ㅠ.ㅠ
  • 2018/01/20 12: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1/20 13: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빠늑대 2018/01/20 13:14 #

    허긴 뭐... 회사 CEO도, 법학자도 역사한다고 하는데, 수학자라고 못 하겠습니까... (먼산~)
  • 초록불 2018/01/20 13:17 #

    원래 일반인이 어려운 분야에 사기꾼이 많죠. 그런 걸 보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학문이 역사학잉었던 겁니다. (퍽!)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1/20 14:26 #

    인문학... 포기할까... 씹! 인문학은 이런게 아니라고! 인문학도로서 언제까지 지하에서 부끄러워 해야 하나. 오늘도, 오늘도, 인문학도로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듭니다. ㅠㅠ
  • 초록불 2018/01/20 17:23 #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일까요. ㅠ.ㅠ
  • 듀란달 2018/01/21 00:15 #

    저는 수학을 한 줄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1+1=3을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 이론을 찾아냈습니다.
    라고 하면 저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요.
    저 또한 기존의 강단수학자들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아이고 두야.
  • 초록불 2018/01/21 10:08 #

    위상수학은 개체 수를 세니까 1+1의 개체수는 3. 그러니까 1+1=3이 되는 거지. 이 정도 수학이야 뭐...
  • 알카시르 2018/01/21 14:38 #

    저도 한때 박영규의 고구려왕조실록을 읽고 요수가 난하이고 평양이 요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면 그다지 근거가 없는 듯하지만요.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는데요.

    1. 사료를 읽으면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했고,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했으며, 평원왕이 장안으로 천도했다고 합니다. 특히 장안은 곧 평양이라 하는데, 이 말이 맞다면 평원왕은 평양에서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기이한 말이 됩니다. 평양이 여러 곳이었고, 그 중 한 곳은 요양이었다거나, 뭐 그런 것 아닐까요?

    2. 박영규의 말에 따르면 광개토왕릉비의 왕순하평양이라는 글귀가 바로 하평양의 존재를 암시한다더군요. 왕이 하평양을 순시했다고 해석해야 한다면서요. 왕이 아래로 평양을 순시했다고 해석하려면 왕하순평양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요양이 평양이고 대동강변의 평양이 하평양이라는 것이 박영규의 결론이더군요. 결론이 너무 비약 같긴 하지만 한문 해석은 흥미롭습니다. 한문은 잘 모르는데, 저 글귀가 정말로 저렇게 해석되나요?

    3. 링크한 글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도 요동에 사는 조선인들은 요양이야말로 고구려의 도읍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계면이 최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http://cafe.naver.com/booheong/64631

    4. 본래 한나라 요동군의 치소는 양평이었습니다. 이 양평을 거꾸로 하면 평양이 되는데요. 저는 한때 양평이 곧 요양이고, 요양이 곧 평양이니, 고구려인이 양평을 거꾸로 하여 평양이라 이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평양이 요양과 관련이 없다면, 평양과 양평의 이름의 유사성도 그저 우연일 뿐일까요?
  • 초록불 2018/01/21 18:39 #

    저는 역사학 교수도 아닌데 저한테 이런 걸 물어보셔야...

    1. 역사학계에서는 동천왕이 천도한 곳은 집안 일대의 평지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곳은 고국원왕 대에 이르러 국내성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학계에서 논증한 논문들이 줄줄이 있습니다. 그 근거를 일일이 설명하려면 논문 하나를 써야 하니 저는 생략하겠습니다. 장수왕 때 평양으로 천도하는데 이 시기를 전기평양성시대(427~583)이라고 하고 동천왕이 장안성(지금 평양에 남아있는 그 성입니다)을 지어서 도성으로 삼은 때부터를 후기평양성시대로 봅니다. 이 전기 평양성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대성산성 설과 청암동 토성설이 있습니다.

    2. 박영규가 한문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시하고 가면 되는 일에 속합니다.

    3. 천 년 후에 학자도 아닌 일반 사람들이 하는 말로부터 과거의 사실을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근거자료가 훨씬 더 나와야 합니다.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들이 말이죠. 고려할 가치가 없습니다.

    4. 지명이 비슷한 것은 엄청 많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8/01/21 21:20 #

    조선시대 말까지도 요동 사람들은 물론 한양에 사는 조선 사람들까지도 광개토대왕릉비를 금나라 황제 비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인식이 옳았나요?
  • 알카시르 2018/01/22 00:09 #

    답변 고맙습니다. 덕분에 평양에 대한 의문을 확실히 풀었습니다. 계면과 최부의 대화에 대해서는, 저는 본래 이러한 구전이 무척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료에는 남지 않은 진실이 있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지식이 쌓인 뒤에 잘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금나라가 요동의 발해인을 모두 잡아다 산동으로 이주시켰다더군요. 즉 고구려 때부터 요동에 살던 자들은 이때 없어진 것이지요. 그 뒤 요동에서 조선인을 자처하던 자들은 주로 고려와 조선 때 이주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 때부터 이어진 전승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할 것입니다. 이제 왜 이들은 요양이 고구려의 도읍이라고 생각했냐는 문제가 남는데, 아마 요동이 고구려의 옛 땅이라는 것은 어찌어찌 전해졌지만, 저 사람들이 딱히 역사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전을 거친 끝에 전승이 조금 왜곡되어서, 본래는 요양이 고구려 땅이었다는 이야기가 요양이 고구려의 도읍이라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요?
  • 초록불 2018/01/22 00:20 #

    조선시대 쓰인 지리지들을 보면 고구려 영토를 압록강 이남으로 비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심지어 많이 있죠.) 이런 기록들은 그런 기록도 있구나 정도로 보고 넘겨야 합니다. 그 안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보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넘쳐흐르기 때문에 그런 연구는 빛을 볼 가능성이 거의 없죠.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잘못된 전승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정도는 추측해볼 수 있겠으나, 그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저로서는 알 수가 없네요.
  • 초록불 2018/01/22 00:21 #

    학문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조금 더 멀리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거인의 어깨라는 것은 선학들이 쌓아올린 학문을 가리키죠. 모든 일을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면 우리는 진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역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 알카시르 2018/01/22 00:44 #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개만 더 묻고 싶습니다.

    1. 박지원이 열하일기 도강록에 평양은 일반명사로, 고구려는 도읍을 옮길 때마다 이를 평양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했습니다. 비록 박지원이 정말로 고구려사 전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제로 동천왕과 장수왕과 평원왕의 도읍 세 곳을 모두 평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평양이 정말로 본래는 그저 도읍을 뜻하는 단어였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2. 초록불님의 댓글을 보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인데, 삼국사기에는 동천왕의 평양이 선인 왕검의 택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평양은 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이라는 것인데요. 그런데 동천왕의 평양이 국내성이라면 왕검성은 압록강변에 있었고, 그 왕검성을 중심으로 설치된 낙랑군도 그곳에 있었다는 해괴한 결론이 나올 것 같더군요. 설령 그 말이 맞다 해도, 동천왕 이후에도 낙랑군이 멀쩡하게 존재하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이는 김부식이 동천왕의 평양을 대동강의 평양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여, 동천왕의 평양이 바로 왕검성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 초록불 2018/01/22 08:05 #

    1.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죠. 고구려는 "양"을 땅이라는 뜻으로 썼을 수 있습니다. 집안 분지의 땅을 국양, 동양, 중양, 서양, 호양 등으로 불렀던 기록이 있기 때문이죠.

    2. 동천왕의 평양이 어딘가에 대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논증이 있었습니다. 해당 구절 때문에 조법종 선생은 선인지후를 표방한 송양의 거주지로 옮겨간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구절은 평양에 대한 인식에 대한 후대 찬자의 주석으로 보기 때문에 동천왕이 옮겨간 곳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평양에는 주몽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붙은 곳들도 있습니다. 주몽이 압록강 북쪽에서 나라를 세웠는데 그가 어떻게 평양에서 죽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후대에 삽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구려의 천도 관련해서는 논문이 많습니다. 각각 자신들의 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므로 정히 궁금하시면 해당 논문들을 하나하나 보시는게 좋습니다. 서울대 사이트에 들어가면 기경량 선생이 쓴 박사논문 <고구려 왕도 연구>를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찾는지는 저한테 묻지 말아주세요).
  • 굔군 2018/02/01 05:41 #

    동천왕의 평양성 떡밥은 이거 하나면 끝납니다.
    광개토왕비가 어디에 세워져 있죠? 광개토왕비는 장수왕 2년(414)에 건립되었습니다.


    뭐,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비문에 의하면 광개토왕이 묻힌 곳은 '국강상(國岡上)'이라는 곳입니다.
    광개토왕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비문에도 광개토왕의 능(陵)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비가 세워진 압록강 부근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국강상'은 '고국원(故國原)'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고국원왕(故國原王)을 '국강상왕(國岡上王)'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국원왕은 '고국의 들[故國之原]'에 묻혔다고 나오는데, 이로부터 '고국원 = 국강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고국원왕과 광개토왕의 무덤은 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서천왕의 무덤도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가을 8월에 모용외가 침략해왔다. 고국원(故國原)에 이르러, 서천왕(西川王)의 무덤을 보고 사람을 시켜 파게 하였다. 파는 사람 중에 갑자기 죽는 자가 있고, 또 무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므로 귀신이 있는가 두려워하여 곧 물러갔다.
    五年, 秋八月, 慕容廆來侵. 至故國原, 見西川王墓, 使人發之. 役者有暴死者, 亦聞壙内有樂聲, 恐有神乃引退.

    - 봉상왕(烽上王) 5년(296)

    서천왕은 평양성으로 천도한 동천왕 이후의 왕인데, 그의 무덤도 고국원왕, 광개토왕과 같은 고국원에 있었습니다. 즉, 평양 천도 이후에도 고구려 왕들의 무덤은 여전히 광개토왕비가 세워진 압록강 인근에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국원왕 때의 기록을 보면 미천왕의 무덤도 환도성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이후 고국원왕은 평양의 '동황성(東黃城)'이란 곳으로 천도했는데, 그가 묻힌 곳 역시 압록강 부근입니다.
    평양 천도 이후에도 동천왕 ~ 광개토왕에 이르는 왕들의 무덤은 여전히 압록강 부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천왕이 천도했다는 평양성이 국내성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선인 왕검에 대한 기록은...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땅이다. 혹은 왕의 도읍 왕험(王險)이라고도 한다.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 동천왕(東川王) 21년(247)

    이 구절은 내용상 후대의 주석에 해당하는데, 여기에서 '王之都王險' 부분은 <사기> 조선열전의 문장을 오독(誤讀)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지적되어 있습니다.


    (위만은) 점차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의 만이(蠻夷) 및 옛 연(燕)·제(齊)의 망명자(亡命者)들을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王)이 되었으며, 왕험(王險) 에 도읍하였다.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 王之, 都王險.

    -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


    실제로 <사기>에도 '王之, 都王險'이라는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물론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이 구절은 원래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라는 뜻인데(王과 都는 동사로 쓰임), <삼국사기>에서는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해석을 바꿔 놓았습니다. 즉, <삼국사기>의 저 구절은 <사기>의 문장 일부를 잘못 베낀 것이죠.

    <삼국사기>의 찬자가 <사기>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문장을 잘못 읽고 저렇게 인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특히 '선인(仙人) 왕검(王儉)'이란 명칭 때문에 '王儉 = 王險'이라 생각하여 그냥 갖다 붙였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이병도는 <삼국사기>의 찬자가 <사기> 조선열전의 기사를 단군에 관한 기록으로 잘못 읽은 결과, 저렇게 단군 관련 기록으로 잘못 인용한 것이라 보았습니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267쪽).


    앞의 선인 왕검 관련 부분은 뭐, 누가 봐도 대동강 유역의 평양에 대한 내용인데...
    당시 정황상 동천왕이 대동강 유역으로 천도한다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 되고, 그냥 후대의 찬자들이 '평양'이란 명칭 때문에 헷갈린 것이 분명합니다.
    뭐, 사실 고조선 당시의 평양은 '평양'이라 불리지 않았기 때문에, 선인 왕검이 평양에 도읍했다는 내용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요.
  • 초록불 2018/02/01 10:20 #

    굔군님 / 오랜만에 댓글 달아주신 듯. 감사합니다...^^
  • 섹사 2018/01/21 20:43 #

    심지어 KCI 등재지 허허허
  • 초록불 2018/01/21 21:07 #

    황우석의 재림입니다. (한숨)
  • 2018/03/20 22: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20 23: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초대륙 아마시아 2018/11/12 20:52 #

    이건 여담이긴 하지만
    저런 뻘소리를 하는 분들이 말하는 넓다는 대체 기준이 뭘지 궁금하군요....
    한 면적이 100만km^2(=1Mm^2) 은 넘어야 저분들이 넓다고 인정해 줄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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