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인가, 환인인가 만들어진 한국사



최근 교토대 영인본과 덴리대 소장 순암수택본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런 문제에 밝은 안상현 박사님과 더불어 여러 의견을 주고 받은 바 있다.

그러자 페북까지 감시하고 있던 유사역사학 신봉자께서 얼씨구나 하고 초록불의 애타는 심정에 대해서 글을 올리셨다 한다.

역사 연구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존 견해를 철회하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나 물론 역사 연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유사역사학에서야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삼국유사>의 환인의 因자 문제는 몇 년 전 손보기 기증본인 파른본에 因자의 이체자(모양이 다르지만 같은 글자를 이체자라고 부른다)가 확실해서 결론이 완벽하게 내려진 상태다. 조선 초기 판본들은 모두 因자의 이체자를 보여주고, 고려 때의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등 조선 초 기록)의 경우에는 아예 정확하게 因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유사역사학의 견해라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 위조되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뿐이니.

교토대 영인본과 순암수택본의 문제는, 그야말로 사소한 호기심인데, 오래 전에 악질식민빠님이 교토대 영인본에 덧칠한 사람은 안정복 자신이라고 이야기한 이후 나는 그 견해를 따랐는데, 최근에 의문이 든 것이다. 왜냐하면 이마니시 류가 덴리대에 기증한 순암수택본의 임자였다는 것은 분명한데 - 이것은 이마니시 류의 아들이 쓴 <이마니시 류 소전>에 적혀있다. 그 책에는 이마니시가 안정복이 가지고 있던 <삼국유사>를 헌책방에서 구한 내막이 상당히 자세히 적어놓았다. 또한 이런 내용은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에도 상세히 나온다.

그리고 이마니시 류는 교토대의 교수이기도 했다. 따라서 교토대에서 나온 <삼국유사> 영인본이 이마니시 류가 소장한 <삼국유사>였을 것이라 추정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순암수택본의 환인 글자를 살펴본 결과 덧칠이 되어 있음은 사실이지만 교토대 영인본의 덧칠과는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덴리대 소장의 순암수택본도 영인이 나온 바 있는데, 그 영인본을 보면 검은 얼룩 자국이 없는데, 교토대 영인본에는 얼룩이 보인다. 따라서 이 두 책은 같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상현 박사는 순암수택본의 테두리 부분을 잘라낸 형태로 교토대 영인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나와 안상현 박사의 의견이 다르다. 이것은 원본 즉 덴리대 소장본을 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인본을 만들면서 잡티 부분은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교토대 영인본에서 因자에 덧칠 된 부분도 원본이 훼손된 부분이라 생각하여 최대한 제거하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교토대 영인본이다. 下와 有 사이에 얼룩이 보인다.


덴리대 소장한 순암수택본 영인본이다. 얼룩이 없이 깨끗하다.

또한 두 판본 사이에 因자 부분이 모양이 다르게 덧칠되어 있는 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판본은 과연 다른 책일까?
교토대 영인본 앞부분에는 영인본의 내력에 대해서 적혀 있다. 읽어보면 교토대 조교수인 이마니시 류가 도쿄대에서 1904년에 내놓은 삼국유사와는 다른 삼국유사 1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도쿄대의 삼국유사에 사용된 것은 도쿠가와 막부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책이다.

이마니시 류의 삼국유사는 죽은 뒤에 덴리대에 기증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영인한 것이 위에 살펴본 영인본이다. 이마니시 류가 안정복의 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가 두 질의 삼국유사를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이 점은 두 영인본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연인 위만"이라는 글자가 적힌 교토대 영인본이다. 魏라는 글자에 X표를 하고 衛라고 적어놓았다. 삼국유사에는 위만을 魏滿이라고 쓰고 있는데 사기에는 衛滿이라고 나온다. 이 책을 본 사람은 환인의 인을 고친 것처럼 위만의 위에도 표시를 해놓았던 것이다.


이것은 덴리대 영인본의 연인위만 부분이다. 보다시피 똑같이 魏라는 글자 위에 X표를 하고 衛를 옆에 적어놓았다. 이로써 우리는 이 두 책은 같은 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불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표시가 동일하다.

교토대 영인본은 안정복이 여백에 적어놓은 일종의 주석(이때문에 이 책을 수택본이라 부르는 것이다) 부분을 잘라내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덴리대 영인본은 잡티를 제거하고 깨끗한 상태로 영인을 했는데, 그렇게 잡티를 날리는 과정에서 因 부분의 먹물 일부도 날아갔던 것이다.

그럼 여기에 덧칠한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알 수 없다. 순암이 소장했던 <삼국유사>의 因자 위에 누군가가 덧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안상현 박사는 그 덧칠한 글자가 안정복의 서체가 아니며, 안정복은 비점을 찍고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사서를 다뤘지 글자 위에 덧칠하는 방법은 사용한 적이 없으며 조선 시대 방식도 아니라고 말했다. 안정복의 수택본 고려사를 보면 과연 덧칠을 하거나 X표를 하는 등의 일이 없다. 따라서 이 덧칠은 안정복이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책은 안정복 이전에 이미 중종 때 소장자가 있었다. 그 후로 2백년을 내려왔기 때문에 이 책에 덧칠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알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안상현 박사의 견해대로 이런 방식은 조선 시대의 것이 아니므로 이마니시 류가 덧칠을 했을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이마니시 류가 덧칠을 한 장본인이라면, 그가 본 다른 사서에도 이런 식으로 덧칠이나 X 표시가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불행히도 그는 고서를 덴리대에 기증했다고 했는데, 그걸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추가] 고문서에 밝은 진성당거사님은 전근대에는 X표시를 하는 것을 본 바 없다고 하고, 이마니시가 소장한 삼국유사는 순암고택에서 나와서 고서점을 거쳐 이마니시에게 넘어갔으니 덧칠을 한 장본인은 이마니시일 수밖에 없다. 역사연구를 하면서 사료를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렇게 사료를 개판으로 다뤘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기존에 나는 순암수택본을 영인했다는 점에 기인해서 덧칠을 한 장본인이 안정복이라는 견해를 보고 그에 찬동한 바 있다. 그 견해는 새로운 자료 검토와 안상현 박사의 조언에 따라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료를 찾고 그에 기반해서 논지를 펼치는 것이 역사학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면 기존의 견해를 수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료들만 취사선택하면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눈을 감는 유사역사가들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덧칠을 누가 했건 상관없이 환국은 존재하지 않고 환인이 맞다는 것이다. 因의 이체자를 잘못 새긴 덕분에 이런 거대한 망상이 싹 텄으니, 역사에서 고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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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리대 영인본은 Gim Soon님에게서 얻어볼 수 있었다. 깊은 감사를 표한다.

덧글

  • 활발한 아기백곰 2018/08/07 00:57 #

    문맥만 보아도 환인인데 말입니다. 여기서 온갖 불필요한 잡설이 말씀 그대로 ‘싹텄죠’. 허.
    어떤 위서를 창작하신 그분께서도 여기서 영감(?)을 얻으신 게 아닐까 합니다. 한 글자의 무서움이란…….
  • 초록불 2018/08/07 09:51 #

    이런 문제로 저한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렴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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