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이야기 (6) 만들어진 한국사



2016년 6월 2일에 세계환단학회는 춘계학술대회 및 정기총회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덕일은 기조강연으로 <환단고기의 역사성과 사학사적 의의>라는 발표를 했다. 여기서 이덕일은 이렇게 말한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라는 네 종류의 사서를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위서로 단정 짓기 위해서는 이 네 종류의 사료에 대한 교차검증이 선행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공개 시기나 용어 문제 등 몇가지 지엽적인 사항을 가지고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로 몰았다.

저 두 문장에 이덕일의 천박한 역사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환단고기> 안의 네 가지 사료에 대한 교차검증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것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것은, 이덕일 자신도 이 발표문 안에서 전혀 그런 걸 하지 않는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덕일이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환단고기>의 공개 시기와 용어 문제는 사료의 외적비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런 부분을 늘 "지엽적"이라는 말로 퉁쳐버리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덕일은 <환단고기> 위서론자를 거론하면서 나는 제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물론 뻔한 것이다. 내가 제기한 문제들을 반박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덕일은 기존 역사학계의 비판에 대해서도 작성시기 문제(구한말 또는 1979년)와 용어문제(현대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두 가지만 거론하고 있다. 후대의 시구가 삽입된 문제와 같은 기초적인 표절 문제조차 거론하지 않고 있으며, 그동안 유사역사가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어거지를 부린 부분들만 따와서 반론이라고 늘어놓고 있다. 그가 사료비판의 기본도 모른다는 것은 다음 구절로도 알 수 있다.

<환단고기>의 내용보다는 후대에 공개되었다는 공개 시기에 대한 공격에 치중하는 것도 역사학적 방법론과 상치된다.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로 전체를 부정한다면 진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등도 모두 첫 작성 당시의 원고는 존재하지 않고, 여러 필사본이 현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필사본은 필사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한 사서를 진·위서 여부를 결정하려면 공개 시기나 용어 같은 부분적 문제를 전체적 문제인 것으로 확대하는 방식보다는 치밀한 사료검증이란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바보같은 주장이다. 고대 사서들을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글자 한 자, 한 자를 따져서 읽어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덕일은 이런 글자 한 자, 한 자를 읽어나가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요"라고 퉁치는 인간이다. 문제는 <환단고기> 역시 그렇게 글자 한 자, 한 자 따지는 일을 내가 이미 한 바 있다. 그 과정을 거쳐서 <환단고기>가 1970년대 <자유>지에 공개되었던 것이며, 수정을 거듭하면서 현재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이덕일은 이런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없자 모른 척 하고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11월에 나올 내 책 <유사역사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이유립이 1960년대부터 <환단고기>를 만들어간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될 예정이다.

이덕일은 1969년에 나온 <해동인물지>에 계연수가 실려있으므로 계연수는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해동인물지>에는 계연수가 <태백유사(太白遺史>를 쓴 인물이라고 나온다. 이덕일은 <태백유사>가 <태백일사>의 오기일 것이라고 멋대로 추정하는데 이 이야기의 근원은 이유립이다. 이유립은 애초에 계연수가 <태백유사>를 썼다고 주장하다가 슬그머니 遺史라는 후진 용어를 일사逸史라는 용어로 바꿨을 뿐이다. 이 <태백유사>의 일부분은 이유립이 낸 <커발한>에 남아있는데 우습게도 <태백일사>와는 다른 내용들이 등장한다. 이유립의 조작의 흔적이 이 안에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유립만이 알고 있던 내용이 <해동인물지>에 실린 것은 그 원천소스 자체가 이유립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이덕일은 또 <환단고기> 감수자 이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태백진훈>이 이기가 쓴 <태백진경>과 같은 것이라고 아무 근거없이 주장한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 중 하나인데, 이유립은 이기가 썼다고 주장하는 <태백진훈>을 내놓고 있으며 그가 또 날조한 <정교증주태백속경>에서 <태백진경>은 분실되었다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고 있다. 이덕일은 이런 기초적인 자료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두 책은 이기의 문집인 <해학유서>에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안 나온다는 사실 자체도 이유립이 쓴 해설에 떡하니 붙어있다.

이덕일은 이어서 1920년 6월 25일 <개벽> 창간호에 실린 일태의 <단군신화>라는 논설이 <환단고기>의 구조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1920년에 발표된 '단군신화'에 나오는 고시, 팽오, 신지 등은 모두 <환단고기>에도 나오는 것은 이는 <환단고기>가 1979년에 창작되었다는 주장이 근거없음을 말해준다.

이런 말을 보면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 지 앞이 깜깜해진다. 1920년에 나온 글을 1979년에 나온 글이 참고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대체 어떤 머리라면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일까? 이덕일은 비슷한 내용이 1909년의 단군교포명서에도 나온다고 하면서 이렇게 쓴다.

이런 내용들이 1920년에 쓴 '단군신화'뿐만 아니라 1909년의 '단군교포명서'에도 나오는 것은 계연수가 이기의 감수를 받아 <환단고기>를 편찬했다는 1911년 이전에 이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고시·팽오' 등의 내용이 공유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렇게 이미 공유되고 있었으니 이유립이 날조할 때 사용하기 좋았을 것이다라는 자명한 생각이 이덕일 머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유사역사학이 머리를 장악하면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내용에 뜬금없이 "독립운동가들"이라는 말을 집어넣는다. 악의적인 이덕일의 수법이다.

이 다음부터 이덕일은 난데없이 고시와 팽오의 유래를 추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라고 이종휘의 '단군고사'와 비슷한 내용을 적고 있다. 이는 <환단고기>가 대종교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내용들임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환단고기>가 기존의 사서들에서 어떤 내용을 가져와 만들었다는 것이 그 책이 위서가 아니라는 증명에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논리라는 게 이덕일에게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고의로 이런 소리를 해서 <환단고기>를 옹호하는 것이고.

이 뒷대목이 더 걸작이다. 보자.

이는 세조의 수압령 때 관에 바치지 않은 일부 역사서들이 주자학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에게 전해졌음을 추측하게 해 준다. 이런 서적들을 이종휘는 '고기'라 불렀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덕일의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이덕일은 그 다음에는 <개벽>에 실린 '어아가'에 대한 내용을 추적한다. 이것이 <환단고기>에도 실려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추적이 본인이 주장한 네 개의 사서를 교차검증한다는 사료검증법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자기 자신도 하지 않는 일을 남이 안 했다고 떠드는 중이다.

이덕일의 결론은 아래와 같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일부 내용들은 홍만종과 이종휘의 사례에서 보듯이 조선 중·후기에 이미 사료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조의 수압령을 피해 일부 선비들이 사장하고 있던 이 사료들의 특징은 유학 사대주의 사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주체적 사관으로 서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홍만종과 이종휘에 대한 이덕일의 망상은 그렇다치고, 그 망상이 맞다고 해도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사실에 변화는 전혀 없다. 전대의 알려진 사실을 후대의 책에서 써먹었다는 게 베끼지 않았다는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덕일은 이렇게 자기 궤변을 이어간다.

앞으로 연구가 진척되면 될수록 <환단고기> 내용은 최소한 조선시대에 주자학에 반기를 들었던 선비들 사이에 전승되던 역사관을 담은 사료라는 사실이 밝혀질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역사관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그 이전에 형성된 역사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는 조선 초기 세조의 수압령 이전에 이런 역사관을 담은 사료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억측에 억측을 더한 다음에 <환단고기>에 면죄부를 주면서 글은 끝났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상대한다. 죽은 뒤에 내 몸에서 사리가 백 과는 나오리라 예상한다.

덧글

  • 쇼미더머니 2018/09/13 09:22 #

    11월에 나오는 책 기대하겠습니다.
  • 초록불 2018/09/13 10:10 #

    유사역사학이 숨겨온 환단고기의 진실이 밝혀진다고... 할 수 있죠. 중요한 점은 이것들을 알면서 이들이 고의로 말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음, 이 부분을 부각하도록 원고를 좀 손을 봐야할지도...
  • 활발한 아기백곰 2018/09/13 14:00 #

    이덕일씨가 저렇게 노골적인 얘기를 한것도 처음 알게됩니다
    유철샘의 논고도 한번 다루어보심은 어떠신가요?
  • 초록불 2018/09/13 15:24 #

    그 양반도 원래 2015년에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 조금 확장해서 재탕한 것이더군요. 딱히 더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사람이라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습니다.
  • 활발한 아기백곰 2018/09/13 16:21 #

    아, 2015년 이야기의 확장판이었던 셈이군요…….
  • 샤화 2018/09/13 20:14 #

    안녕하세요.
    스켑틱9월호에 실린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바입니다. 승리와 정복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가슴속 벅차오르는 애국심 때문은 아니겠지요. 패배와 굴욕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절치부심하여 같은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더나은 공동체를 물려주기 위함이겠지요. 하여 선생님께서 그 지혜와 열정을 광신자들과의 대립에 쓰시지말고 가슴아픈 패배의 역사를 통해 배울점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지혜를 광신자들에게 쓰기는 너무나 아깝습니다. 주제넘은말을 횡설댔지만 오래전부터 선생님의 팬이었습니다. 뜻하지않게 스켑틱에서 선생님의 글을 보게되어 반가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초록불 2018/09/13 22:32 #

    감사합니다. 다행히 기경량, 안정준, 김대현, 장신 선생님 등 연구자들의 유사역사학 관련한 좋은 글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저도 내년부터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들에 대한 글들을 써나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9/13 20:25 #

    왜 '이' 모씨가 안 나오나 했나? 역시...
  • 초록불 2018/09/13 22:33 #

    역시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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