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이야기 (7) 만들어진 한국사



위서의 등장

위서의 등장 자체는 오래 되었다. 그러나 유사역사학이 위서를 만들어낸 현상은 근대적 현상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통해 국가 체제의 단결을 꾀하고자 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밑바탕에 있다. 요즘은 그보다 부수적으로 생기는 금전에 더 눈이 벌건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초창기의 유사역사학의 등장과 더불어 위서도 발생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역사 안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가짜 역사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위서를 날조하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은 대개 흡사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재미의 하나다.

러시아에는 '범유라시아주의'라는 게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대동아공영권 같은 것이다. 러시아를 이루는 슬라브민족이 세계 최고의 민족으로 고대에 유라시아를 지배했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위서가 <벨레스書서>다. 우리에게는 <환단고기>가 있고 러시아에는 <벨레스서>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950년대에 등장했다.

이 책의 등장과 <환단고기>의 등장을 비교해주겠다.

1. 발견
- 벨레스서는 195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 문학가 미로류보프가 처음 소개했다.
- 환단고기는 1970년대에 남한으로 월남한 전 유학자 출신 이유립이 처음 소개했다.

2. 첫등장
- 벨레스서는 1951~3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러시아 이민자들 사이에 발행하던 잡지 <불새>에 연재되었다.
- 환단고기는 1976~9년에 한국 군납잡지 <자유>에 소개되었다. (60년대에도 일부가 <커발한> 신문 등에 소개된 적이 있다.)

3. 최초 소유자
- 벨레스서는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 장교이자 화가인 이젠백이 발견했다.
- 환단고기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인 계연수가 편찬했다.

4. 전달
- 벨레스서는 이젠백이 벨기에로 도망쳐서 있을 때 미로류보프가 우연히 발견했다.
-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살해당할 때 소년 이유립에게 넘겨주었다.

5. 미공개 사연
- 벨레스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 계연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60년 후에 공개하라고 했다.

6. 진본의 행방
- 벨레스서의 진본은 2차세계대전 때 불타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 환단고기의 원본은 70년대에 어쩌다 분실한 것으로 추정한다.

7. 필사본의 등장
- 벨레스서는 미로류보프가 이젠백의 집에서 필사했다.
- 환단고기는 원본을 오형기가 강화도에서 필사했다.

8. 최초 소유자에 대한 의문
- 이젠백은 중앙아시아 고고학탐사단에 화가로 참여한 바는 있으나 이런 쪽에 조예는 없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 계연수는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해 시흥단군교에 보낸 바 있으나 그 이상의 확인은 어렵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9. 위서의 내용
- 벨레스서는 기원전 9백년 경에 파미르 고원에서 선조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 환단고기는 기원전 3897년에 시베리아에서 선조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10. 위서의 확산
- 벨레스서는 1992년 슬라브 민족주의에 힘입어 책으로 등장해서 위대한 슬라브인의 감춰진 역사라는 이유로 인기를 끌었다.
- 환단고기는 1986년 한국의 민족주의에 힘입어 한글 번역책이 등장해서 위대한 한국인의 감춰진 역사라는 이유로 인기를 끌었다.

11. 학계의 대응
- 러시아 역사학계는 전면적이고 신속하게 100% 위서라는 것을 천명했다.
- 한국 역사학계는 일부 학자들이 위서 주장을 했으나 전반적으로 모른 척했다. (다행히 21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반격이 시도되고 있다.)


벨레스서에 대한 내용은 역사비평 118호의 강인욱, <벨레스서로 본 러시아의 위서와 21세기 유라시아 역사분쟁>을 참고해서 작성되었다.

덧글

  • 존다리안 2018/09/14 08:15 #

    터키에도 비슷한 환뽕 같은 게 있고 제국주의 시절 일본도 거기 감명 먹어 천황뽕 일본제일주의 만들
    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습니다.
  • 아빠늑대 2018/09/14 09:44 #

    헝가리도 있고, 폴란드도 있는걸로 압니다. 아마 전 세계 환국 대회 같은거 열면 전쟁날껄요? ㅋㅋㅋㅋ
  • 초록불 2018/09/14 10:34 #

    스웨덴, 아이슬란드에도... 알고보면 영국이나 없는 거라고 할 수도...
  • 쇼미더머니 2018/09/14 09:51 #

    저는 전세계 환빠들이 모여 난상토론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 초록불 2018/09/14 10:33 #

    여기서 환빠란 자민족 역사가 전세계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유사역사 주장자들을 말하는 거죠?
  • 쇼미더머니 2018/09/14 14:25 #

    네. 맞습니다. 중국을 지배했다던 동남아 환빠, 전세계를 지배했다던 한국 환빠만끼리 말싸움하는 걸 봤으면 .....
  • 도연초 2018/09/14 10:22 #

    92년이면 러시아가 정치경제적으로 혼돈에 빠질때라 저런 컬트가 유행하기 딱좋은 시기인데 역사학계가 적절한 대처를 했군요;(그런데 그 러시아 역사학계 내부적으로도 민족주의 색체가 강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 초록불 2018/09/14 10:33 #

    그렇습니다. 괄호 부분에 해당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죠...^^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9/14 22:58 #

    11번이.... ㅠㅠ.... 너무 부끄럽네요. ㅠㅠ
  • 초록불 2018/09/14 23:48 #

    그래도 상황이 좀 좋아지고 있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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