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이야기 (19) 만들어진 한국사



1996년에 이덕일이 낸 책이 하나 있다. 이덕일은 유명해진 뒤에 자기가 낸 책을 대부분 복간했는데, 이 책은 그러질 않았다. 그럴만도 하다. 재미도 없고 글도 못 썼다.

다만 이 책에서는 이덕일의 버릇 하나를 알 수 있다. 그의 비논리를 잘 읽을 수 있다. 그는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달라져도 아무 감정을 느끼질 못하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이덕일은 <침묵과 왜곡 속에 숨겨진 이야기>라는 이 책에서 일본을 시골 깡패에 비유하고 있다. 일본의 무사 정신이라는 게 시골 깡패들 정신머리인지라 페리라는 전국구 깡패가 나타나자 바로 굽혔다는 게 그의 논지다.

>지금까지 살펴본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일본을 개국시켰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총 한 방 쏴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는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침략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30~40년대 일본인들은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국인들을 겁장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 겁장이들은 일본처럼 총 한 방 쏴보지 못하고 굴복하지 않았다. 총을 쏜다는 위협에 알아서 기지도 않았다. 적어도 개국에 관한 한 누가 더 겁장이였는가는 명약관화한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상당히 호전적인 민족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외국인들은 일본인들을 호전적인 민족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덕일은 그것이 2차대전에서 보여준 일본인의 악착같은 저항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일본인들이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전원이 옥쇄를 감행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중략) 90여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겁이 많았던 일본인들이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민족으로 변한 것일까? 과연 한 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민족의 성향이 그렇게 개조될 수 있는 것일까? 한 인간이라면 모를까 민족 전체가 한 세기만에 개조될 수 있을까?

이덕일의 민족주의적 성향은 이런데서도 잘 볼 수 있다. 한 인간이 변한다면 그 구성원 전체가 변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다. 그리고 그의 사고관에서는 일본인들이 긍정적인 형태로 변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결코 개조된 것이 아니었다. 1854년의 일본인이나 1945년의 일본인이나 똑같은 일본인이었다. (중략)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일까?

자, 글이 이렇게 오면 "왜"에 대한 해답이 나와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덕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뒷골목을 주름잡던 깡패가 있었다고 치자 그의 앞에 전국을 무대로 노는 소위 전국구 깡패가 나타났다. 시골 깡패는 얼굴만 척 보고도 그가 예사 주먹이 아님을 알아차린다. 결국 시골 깡패는 전국구의 눈짓 한 번에 자신의 구역을 헌납하고 그의 부하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전국구의 시중을 들며 그의 주먹솜씨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저렴한 비유를 들어서 일본과 미국의 상황을 설명한다. 전국구의 주먹을 잘 배운 깡패가 진주만 기습처럼 전국구 깡패를 습격한다.

>전국구는 불의의 습격을 받고 휘청거리지만 곧 전열을 수습해 반격에 나선다. 곧 전세는 역전된다. 시골 깡패도 이번에는 쉽게 항복하지 않는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온갖 솜씨를 다 동원해 대항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일본이 전세계에 호전적인 민족으로 기억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 중이고 바로 그 대목에 이르른 것이다. 이덕일은 앞서서 이렇게 찬양(?)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급속하게 무너지리라고 믿었던 연합군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군은 격렬하게 저항을 계속했던 것이다. 일본군의 저항은 연합군이 놀랄만한 경지를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미군은 1만이 넘는 병력이 유황도에서 전원 옥쇄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일본군들은 집단적인 정신병에 걸린 환각 상태로 연합군에 저항하고 있었다. 마치 마약에 취해 칼을 휘두르듯이 집단 정신병에 취해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과 영국이 보기에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할 바로 그 대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덕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하지만 역시 전국구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시골 깡패의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고 코피가 터지며 입술이 찢어진다. 시골 깡패는 자신이 전국구의 상대가 아님을 절감하고 그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아이고 형님, 잘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00년간에 걸친 미국과 일본의 관계이다.

이게 대체 뭥미? 그러니까 힘의 우위가 증명된 상황에서 일본군이 저항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겠다고 해놓고는, 미국이 막강하게 두들겨패니까 깨갱했어요로 이야기가 끝난다. 대체 이 사람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환단고기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난해하다.

그의 주옥같은 논설은 차차 더 소개하기로 하자. 한꺼번에 풀어놓기에는 좀 아까우니까. ㅎㅎ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11/10 23:24 #

    오늘도 이런거에 쓰일 종이와 잉크한테 묵념. 삼가 잉크와 종이, 나무한테 묵념....
  • 초록불 2018/11/10 23:42 #

    ㅠ.ㅠ
  • 존다리안 2018/11/11 01:09 #

    그럼 청나라라는 동네깡패, 일제라는 동네깡패에 무릎꿇고 다닌 우리는 얼마나 창피한가....ㅜㅜ
    종종 일본 욕하는 게 신물나는 이유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일본 못잖게 부조리한게 많은데 일본
    을 욕하며 자기만족이나 하려는 부류가 대부분이라 그렇습니다. ㅜㅜ
  • 초록불 2018/11/11 14:28 #

    거기다 100년 지나도 민족성이라는 게 안 변하는 거면 해방 후 50년 사이에 확 달라진 우리는 뭐가 되나요.
  • 초대륙 아마시아 2018/11/12 21:10 #

    단순히 자기만족보다는 일본이 외교적으로 막나가서 그런 것도 있다고 봅니다..
    뭣보다 70년 전 일본은 정말로 추축국 그러니까 인류의 적이었으니..
    그리고 일제는 비록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루긴 했지만 결국 폭주하다 원폭 맞았으니..뭐...
    그리고 청은 확실히 강대국이었지만 지금의 만주족은..뭐....
    ....
    그리고 무릎 꿇은 것 자체가 치욕스럽다고 느끼는 건 님 자유지만 전 별로 거기에 동조할 수는 없네요..
  • 초대륙 아마시아 2018/11/12 20:41 #

    뭐..다음 토탈워 카페에서 어떤 분이 100년은 우주가 멸망한 것도 잊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100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18/11/13 00:20 #

    100년은 세대가 세 개나 지나가는 엄청난 시간이죠.
  • 초대륙 아마시아 2018/11/12 21:09 #

    뭐...이건 제 생각이지만 19세기 미국이나 19~20세기 일제는 ...뭐 깡패소리를 들어도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19세기부터 현재의 미국 동쪽부터 시작해서 거기 살던 원주민들 깡그리 죽여나가면서(사실 "서부개척시대" 자체가 이런 과정일듯 합니다..) 영토 확장하고 멕시코 땅 거하게 빼앗고.....
    일제야..뭐...일단 류큐를 강제 병합하고...2대전 때 죽인 사람이 몇명인지.....

  • 초록불 2018/11/13 00:18 #

    그들이 한 일이 깡패 소리를 듣느냐 마느냐와 이덕일의 깡패 논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겁니다.
  • 무명병사 2018/11/13 00:50 #

    ......(커피)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8/11/17 00:56 #

    한겨레출판사에서 펴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에서 간도 영유권 주장을 펼치고선 정작 그 책의 다른 챕터엔 조선 후기 국경선이 버젓이 두만강으로 나와있는 것도 웃음 포인트였죠. ㅎㅎ

    (아시다시피 후에 한겨레21이 자신을 비판하자 한겨레를 \'식민사관 카르텔\'에 끼워넣은 건 덤입죠..)

    조선왕 독살사건에서도 소현세자를 예찬하다가 바로 뒤 챕터에서는 효종의 북벌 추진을 찬양하는 것도 이상했고요..
    (그걸 보고 이 사람 논지가 별로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죠;)

    사실 정치적으로도 참여정부 인기가 떨어진 후반기에는 386세대 정치인들이 사림파처럼 흑화(정확히 이 단어를 쓴 건 아니고 그런 뉘앙스의 표현을..)한다는 식으로 썼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한겨레 기사 코멘트에서 기득권 세력의 반발 등등의 표현을 언급했고, 그러면서도 몇 년 뒤엔 중앙일보에 칼럼을 오랫동안 연재했는데 중도적 스탠스의 사람이 이런 노선을 취할 수 있다 치더라도 평소 기회주의적인 행적을 자주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다소 찝찝한 면이 있습니다..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8/11/17 00:49 #

    그런데 딴 이야기지만 최근 길을 가다가 포스터를 통해 이덕일 및 한가람연구소 소속 김수지씨가 노원구, 성북구, 구리시, 남양주시가 주최하는 조선왕릉 문화벨트 강연을 (신병주 선생님 등등 다른 강사들의 강연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소식 들어보셨나요..?

    (무려 이방원, 경종 및 '영조와 정조시대'에 대해 썰을 푸신답니다. ㅜㅜ)
  • 초록불 2018/11/17 01:12 #

    공부는 하지 않고 글은 계속 생산하니... 결국 파탄에 이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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