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가 가능한가? *..역........사..*



나카 미치요(那珂通世)는 1878년 1월 <양양사담(洋洋社談)> 38호에 <상고연대고>라는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은 1888년 9월에 <문(文)에 <일본상대연대고>로 고쳐서 실렸다.

이 논문에서 나카가 이야기한 것은 <일본서기>의 기년이 사실과 맞지 않고 오류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 논문에 대해서 시게노 야스쓰구, 구메 구니타케, 호시노 히사시, 미야케 요네키치 등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미야케 요네키치는 기기 신화에 의존하는 국가 기원론을 반대하고 고고학에 따라 규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카의 논문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토 지소(內藤耻叟)는 "이런 일들은 생각건대 일본의 미사(美事)를 높이지 못한다"며 반발했다. 기년을 의심하고 이를 단축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일본의 미사'가 되지 않으므로 연구할 의의가 없다는 것.

국가의 '미사'라 여겨지지 않는 것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거나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국체사관파'의 역사 사상이다. 일본 국학자 오치아이 나오즈미(落合直澄)도 "수사국의 선생들이 나카 씨의 설에 가세하는 것은 세인의 이목을 놀라게 했고 나도 간담이 서늘했다."고 격분하며 수사국에 항의했다.

일본 역사를 세계사의 보편 속에서 이해할 것인가, 자국 중심으로 이해할 것인가가 부딪친 것이다.

저 나카 미치요는 단군에 대한 내용 역시 "후세 승도의 망설에 대하여 억지로 이해를 구하려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다"라고 일언지하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이런 보편사관을 중시하는 쪽의 구메 구니타케는 일본의 신도(神道)가 종교가 아니며 보편적인 제천신앙에 불과하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것은 국수주의적인 이른바 국학파를 자극했다.

국학파 쪽은 국민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권력과 결합하여 빠르게 세력을 넓혀갔다. 1889년 <국광(國光)>이 창간되어 이들의 기관지가 되었다. 이 <국광>3권 9호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국가의 대사를 폭로하는 자의 불충불의를 논한다
비록 사실일지라도 혹여 군국에 해가 되고 이득이 없는 것은 연구하지 않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다. 하물며 허구를 발설하는 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공격으로 구메는 제국대학에서 쫓겨났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 모 선생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꼼꼼하게 사료적 근거를 따져서 작성했더니 결과적으로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의 주장대로의 결과가 나왔다면 하는 수 없다. 다만 그럴 경우 대한민국은 이런 지도 자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굳이 국고를 들여서 북한 강역은 중국 것이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다 가짜이며, 독도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동북아역사지도>는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었다.


사실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데, 사실도 아니다...라는 논리가 100% 동일하다.

소름끼치는 "평행이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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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일본사학의 내용은 <20세기 일본의 역사학>(나가하라 게이지/삼천리)에서 참조한 것이다.

덧글

  • 무명병사 2019/03/24 16:16 #

    독립기념관과 삼전도비를 "쪽팔리는 역사의 증거를 남겨서 어쩔 것이냐"는 사람들 사고방식하고 꽤나...
  • 초록불 2019/03/24 19:59 #

    최근에도 많이 보입니다.
  • 알토리아 2019/03/24 19:56 #

    이러니 한반도를 일본 제국의 후예라고 하는 거죠......
  • 초록불 2019/03/24 19:59 #

    참 큰일입니다.
  • 나인테일 2019/03/24 22:18 #

    저게 요즘의 흔한 사고방식이라는게 더 답답한 일이죠.
  • 초록불 2019/03/25 10:03 #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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