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학 논문의 어이없는 오류에 대하여 만들어진 한국사



온지학회라는 곳에서 낸 <온지논총> 58권0호(2019년 1월)에 실린 "단군조선 관련 재야문헌(在野文獻)에 대한 남·북한 연구 성과의 현 단계"라는 논문을 보았는데...

주된 논지는 <환단고기>는 위서지만 <규원사화>는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규원사화>가 위서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는 <만주지지> 인용 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처음 소개한 사람이 나는 아니지만 내 책 두 권에 모두 실린 내용인데 모르고 있다니 답답할 따름이다.

내가 답답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논문에서 이도학 교수는 내내 조인성 교수를 저격하고 있는데, 그 주된 논거는 조인성 교수가 다른 전거를 성실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도학 교수 역시 성실한 검토를 안 한 것은 마찬가지다. 내 책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이 논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헐버트가 쓴 책 [History of Korea](1901~1904년간 잡지 연재하고 1905에 출간)에서 해당 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말이라면 대 사건이다. 왜냐하면 단군의 아들 부루가 중국 하나라 우왕이 소집한 도산 조회에 참석했다는 것은 조선 시대 기록들에도 나오는데 우왕의 부탁으로 단군이 치수를 해주었다는 것은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처음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월춘추>에 우왕이 꿈에서 "현이의 창수사자"를 만나서 금간지서를 얻어 치수의 비법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신채호는 이 "창수사자"가 부루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의 근거는 지금까지 나온 바가 없는데, <조선상고사> 이전에 이런 내용이 이미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라면 엄청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논문은 심한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원문이 아니고 번역문이 제시되었을까? 원문을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원문이 수록되어있다.

[The History of Korea] - Homer B. Hulbert [클릭]

해당 원문은 이러하다.

We read that when the great Ha-u-si (The Great Yü), who drained off the waters which covered the interior of China, called to his court at To-san all the vassal kings, the Tan-gun sent his son, Pu-ru, as an envoy. This was supposed to be in 2187 B.C. Another work affirms that when Ki-ja came to Korea Pu-ru fled northward and founded the kingdom of North Pu-yŭ, which at a later date moved to Ka-yŭp-wŭn, and became Eastern Pu-yŭ.

대충 직역하자면 이러하다.

우리는 중국 내륙을 뒤덮었던 물을 뽑아낸 위대한 하우씨(우 대왕)가 도산으로 속국의 왕들을 부르자, 단군은 그의 아들 부루를 사신으로 보냈다는 것을 읽었다. 이것은 기원전 2187년에 일어난 일이다. 다른 문헌에는 기자가 한반도에 왔을 때 부루는 북쪽으로 달아나 북부여를 세웠고, 훗날 가엽원으로 옮겨가 동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헐버트가 쓴 원문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번역자들이 엄청난 오역을 해서 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 정도 되는 중대한 주장을 하려면 원문은 당연히 찾아봐야 하지 않나. 해당 책은 우리나라 도서관 중에도 있고, 헐버트가 연재를 했던 잡지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저 원문을 혹여라도 의심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을텐데, 구글에서 스캔해 놓은 것도 찾을 수 있다.

[The History of Korea] 스캔본 - Homer B. Hulbert [클릭]

스캔본에서 해당 부분을 잘라내 보았다.



이도학 교수는 헐버트가 참고했다는 <동사강요>에도 치수 관련 내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이 번역서의 원문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연구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도학 교수는 위 번역문을 근거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1900년 단군의 治水관련 내용을 담은 저술이 한국에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이 사실은 툭하면 이전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므로 후대 조작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주장에 경종을 울려준다. (중략) 따라서 단군의 治水支援 서술 역시 底本이 존재했고, 또 이것을 토대로 <규원사화>에서도 유사 한 서술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논문이 검토자의 눈을 그대로 피해서 게재가 되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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