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문........화..*



청소년 글쓰기 연중공모마당 글틴에서 이야기글 게시판지기를 7년 가량 했었죠.

매주 주장원을 선발하고 그 중에서 다시 월장원을 뽑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첫 글을 올리자마자 주목을 받았던 청소년이 있었어요.

레몬섬이라는 이름의 이 주인공은 첫 글에서 주장원, 두 번째 글에서 월장원에 올랐죠.

그 월장원 평이 이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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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섬 님은 딱 두 편의 글을 올렸는데, 두 편 모두 주장원을 낚아채었습니다. 매우 경제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첫 주장원이었던 [사랑을 배우다]보다 이번 [고통에게]는 훨씬 깊어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묘사의 깊이는 글이 아픈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의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시경을 하는 장면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의 연속으로 읽히게 되는데 그 묘사의 중의성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이 묘사는 머리칼을 쭈뼛 세우게 했습니다.

나는 두 개밖에 안 되는 나의 팔들을 모아 얼굴을 거기에 묻었다.

팔은 본래 두 개밖에 안 되지요. 그러나 수십 개의 팔이 있어서 얼굴을, 그리고 온몸을 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처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 평에서 이야기가 없다라는 말과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라는 지적을 해왔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글도 글 안에서는 갈등이 해결되지도 않았고, 이야기도 매우 간략하고, 생략된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줄거리가 아닙니다. 주인공의 깊이는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 글에서는 그 면에서 충분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강간범이 잡힌 것도 아니고, 고통은 피해자에게만 남아 있는 상황이니 권선징악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그 고통을 주인공이 극복하지도 못했으니 대체 이건 뭔 이야기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처한 고통에서 우리는 아직도 사회적 약자인 여자의 고통을 읽게 됩니다. 피해자가 여기서 어떤 정신적인 해결을 가식적으로 이뤄낸다면 그것은 현실감 없는 거짓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고통이 독자에게 남는다면, 독자는 뭔가를 얻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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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몬섬 박서련이 훨씬 일찍 "등단"이라는 통과의례를 마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늦은 2015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을 했어요. 그리고 2018년에 <체공녀 강주룡>으로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죠.

이번에 낸 <더 셜리 클럽>을 보내주어서 오늘 후루룩 다 읽었어요. 일이 바빠서 중간에 미뤄놨어야 하는데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어서 다 읽고 말았네요.

페북에 올린 간단한 평을 옮겨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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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미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목차 자체가 앨범 트랙으로 되어 있고 멈춤 표시의 챕터는 친구 S에게 전하는 말로, 플레이 표시의 챕터는 스토리의 전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사이드A의 내용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주인공 설희(영어명 셜리)가 호주에서 S와 셜리 클럽을 만나는 내용이다.

사이드B는...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실 내가 위에 쓴 내용만 해도 어느 정도는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나오는 독백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게 시작하기 때문에.

S의 경우도 정체가 모호한데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S의 외모를 설명하는 대목이 이러하다.

>머리와 눈동자 색이 짙은 한편 눈 코 입이 꺼지고 솟은 낙차가 뚜렷해서 동양인 같기도 하고 서양인 같기도 했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면서도 체격은 호리호리해서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처음 S를 지칭하는 대명사에서 "그"가 나오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판단하기가 좀 애매했다. 이 소설에서는 룸메이트가 여자라는 것도 대명사가 아니라 대화 중에 "언니"라는 말이 나와서 알 수 있다. 셰어하우스 마스터가 여자라는 것도 나중에 나오는 대사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후루룩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 소설에는 "그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사랑 이야기인 이 소설은 어느 부분도 에로틱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요즘 추세답게 소설은 길지 않고, 길지 않은 만큼 스토리 라인도 어떤 면에서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몇가지 일로 중간에 끊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번에 다 읽게 만들고 말았다.

셜리 클럽이라는 만능의 치트키 같은 존재가 너무 현실감이 있는 것이 신비로운 셈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상황을 현실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재주.

영상이라면 눙치고 갈 수 없는 모호함을 텍스트 뒤에 숨기고, 그것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

이런 게 박서련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이다.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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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서명은 자랑으로 올리는 거예요. ^^

덧글

  • 다루루 2020/09/10 04:46 #

    제자 하나 키워 내보내신 기분이시겠네요, 이건.
  • 초록불 2020/09/10 16:17 #

    저를 잊지 않으니 기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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