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스 딜리버리 *..문........화..*



옛날 일이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만든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 이야기글 게시판 시절.

글틴에 올라온 글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주장원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을 했는데, 고민의 가장 큰 이유는 그 글이 그냥 겉멋 든 글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성숙한 티가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글링을 해봤다. 누군가의 글을 혹시 카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랬는데 글이 내 구글링에 잡혔다.

그리고 안심했다. 그 글은 추계예술대학 공모에 올라갔던 글이고 이리저리 추적해서 글쓴이의 블로그도 찾아냈는데, 글틴에 올린 아이디와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당대 또래에 비해 성숙한 글을 쓴 이 친구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주장원을 수상한 그 글을 쓴 친구는 제1회 글틴 캠프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글처럼 숫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여학생이었다.

캠프 둘째날 밤에 불도 꺼진 난로 앞에 앉아 있어서, 추운데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자 집에 가야 하는데 새벽에 아버지가 오시기로 해서 그냥 밤을 샐 작정이라고 대답을 했다. 교회 가야 한다고. (지금도 교회 나가는지는 모르겠다.)

이 친구는 명지대 문창과로 진학하고 대산 대학생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나섰다.

현재 한국과학소설 작가연대의 부회장에 있는 전삼혜 작가가 이 글의 주인공이다.

첫 장편소설을 냈을 때만 해도 나는 전삼혜 작가가 장르의 길로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단편 <창세기>를 보고는 크게 감탄했다.

그래서 SF를 쭉 쓰려나보다 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을 고맙게도 보내주어서 읽어보니, 이건 어반판타지다.

<위치스 딜리버리>

나같은 노땅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지브리의 <마녀배달부 키키>가 따오르는데, 이 소설에는 <위저드 베이커리>는 나오는데 마녀배달부 키키는 안 나온다.

여자들에게만 마법 물품을 배달하는 특이한 택배 업체 위치스 딜리버리에 들어간 보라는 건당 만 원이라는 금액에 혹해서 덜컹 계약을 하는데, 그 계약서는 사실은 견습 마녀 계약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상한 물건을 하늘을 나는 청소기를 타고 배달하는데, 그 물건을 받는 사람 중에는 덕질로 맺은 절친 주은이가 있었다. 주은이가 받는 물건이 뭔가 수상한데...

책의 편집은 PC통신이나 웹소 편집처럼 문단마다 행간을 넓히고 대화를 붙이는 방법을 써서 좀 낯설게 보인다. 세로로 긴 책이긴 하지만 굳이 이렇게 편집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전삼혜 작가는 전지적 시점을 쓰다가 갑자기 1인칭 시점(주로 주인공 보라의 경우)을 쓰는데, 프롤로그부터 좀 혼란스러워서 내가 편집자였다면 적극 말렸을 것 같다. 1인칭 시점으로 써도 무방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마녀니, 하늘을 나는 청소기니 하는 이상한 일을 접하는데 주인공 보라는 극히 태연하다가 오히려 사소한 일에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아는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일어나는 혼란을 잘 써서 넘어가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 여기서 좀 보인다. 이런 부분을 정말 태연하게 잘 쓰는 작가로 김이환 작가를 꼽을 수 있겠다.

이런 사소한 부분을 제치고 소설 자체의 이야기를 보면 초반을 넘어서면 아이디어가 퐁퐁 터져나오면서 이야기가 아주 발랄하게 진행된다.

이 책은 두 편의 이야기로 되어있는데, 전편에서 생겼던 의문이 바로 해소되는 이야기가 뒤에 붙어있는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딱 한군데를 지적해 주고 싶긴 한데 그 역시 사소한 부분이고 스포일러에 해당하므로 넘어간다.

본래 SF와 판타지는 경계가 모호하다. 어슐라 르 귄의 소설은 SF인지 판타지인지 잘 알 수가 없을 때가 많고 <엔더의 게임>을 쓴 오손 스콧 카드도 작가가 판타지라면 판타지고 SF라면 SF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판타지나 SF나 가리지 않고 쓰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것은 소설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작가의 상상에 기반하는 예술이라 그런 것이고, 그 길을 착실히 걸어가는 전삼혜 작가가 앞으로도 재미있는 소설을 많이 써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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