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공약3장은 한용운이 쓴 게 아니다 *..역........사..*



3.1 독립선언서의 공약3장을 한용운이 썼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고 나도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전에 박찬승 교수가 한용운이 쓴 게 아니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어서 내막을 알아보았다.


충북대 박걸순 교수의 논문 < 3.1독립선언서 공약3장 기초자에 대한 재론>(<한국근현대사연구> 46집, 2008년 가을호)에 실려있는 것이라 해서 논문을 찾아보았다.

박걸순 교수는 이미 1994년에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모두 썼다고 주장했는데 여전히 공약3장을 한용운이 썼다고 나오기 때문에 이 논문을 썼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친 김에 그 논문 < 3.1독립선언서 공약3장 기초자를 둘러싼 논의>(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8집)도 찾아보았다.

한용운이 공약3장을 썼다는 주장은 해방 후인 1946년에 한용운의 제자 김법린에 의해서 제기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 주장은 최남선의 변절에 따른 가치 절하와 불교계의 한용운 추앙에 힘입어 확산되었다.

그리고 1969년 민족대표 중 1인인 이갑성이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자신이 쓰겠다고 주장하다가 공약3장을 추가하였다고 증언해서 확정이 되었다.

신석호가 이 증언을 받아서 논문을 작성했다.

1975년에 고은은 한용운이 최남선을 시기해서 공약3장을 지었다는 내용의 한용운 평전을 냈다. (이 평전은 한용운의 인간적 면모를 보인다는 시각으로 모멸하는 대목이 여기저기 보여서 보기가 별로다.)

박걸순 교수는 최린이 법정에서 "그 선언서 초고는 인쇄하기 위하여 최남선에게 돌리고 한용운에게는 맡기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든다. 또한 최남선에게 공약3장의 의미를 재판장이 집요하게 묻는 장면도 최남선이 작성자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최남선은 재판장의 확대해석에 대해서 쓴 사람의 마음과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을 한다. (보는 사람이 이리저리 해석하는 것이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요.)

판결문에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 기초에 대한 부분이 없고 최남선만 그 죄를 받고 있다.

독립선언서 작성에 크게 관여한 최린도 회고에서 한용운의 불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민족대표의 일원인 이갑성의 후일 증언이다. 이갑성은 심문 당시에는 선언서 작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사람의 기억은 세월에 따라 왜곡되게 마련이다. 회고록을 곧이곧대로 믿는 역사학자가 없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인쇄를 한 이종일의 증언을 보면 독립선언서는 2월 20일부터 인쇄에 들어갔고, 한용운은 24일에 초안을 보았다. 이미 인쇄가 들어간 뒤에 본 것이다. 첨가를 할 수 없음이 당연해진다. 그러나 이 증언도 후일 행해진 것이므로 그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은 전혀 다른 경로로 다르게 전해져온 것일 수 있다. 학자는 이런 점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