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비에 대한 의문 *..역........사..*



뭘 좀 보다가 "책비"라는 책 읽어주는 여자종이 있었다는 걸 알았는데, 이 "책비"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논문도 없고 원 사료도 찾을 길이 없었다.

도서관에 없는 책 중에 "책비"가 항목이 있는 책이 있어서, 큰 맘 먹고 물경 3만2천 원의 벽돌책을 질렀다.

한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나온 책비에 대한 설명은...

그 출처가 조선일보의 이규태 컬럼이었다.

해당 컬럼을 읽어보아도, 딱히 출전이랄 것이 없다. 물론 여러가지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다. 해당 책자는 하나의 컬럼만 언급했지만, 내가 찾아본 결과 이규태는 1985년부터 2004년 사이에 총 여섯 컬럼에서 책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점은 각각 컬럼마다 조금씩 다른(서로 충돌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이것은 원소스가 풍부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규태 이외에는 책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기록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규태는 커피에 "양탕국"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런 표현은 이규태가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콩쌈질 같은 기괴한 풍속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는데,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는 풍속이다. 동년배들 사이에서도 증언이 없는 것으로 안다.

북극에 펭귄이 살고 에스키모가 펭귄에 대한 용어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얼토당토 없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

서울대 정병설 선생님은 이에 대해서 "책비는 금시초문입니다. 동네를 다니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인에 대해서는 야담에 나와서, 임형택 선생 논문에서 강담사로 명명했지요. 궁중에서는 편지를 전하는 여종을 전갈비자라고 했다고 하고요. 어찌되었던 책비가 정식 직명일 수는 없고요. 마치 과외사병처럼, 부대장집 아이들 과외해준 병사, 비공식적 이름이지 싶습니다. 정확한 것은 좀 더 확인이 필요할 듯 싶네요."라는 코멘트를 주셨다.

임형택 논문은... "18·19세기 '이야기꾼'과 소설의 발달"(<한국학논집>2, 계명대학 한국학연구소, 1975)를 말씀한 것 같은데, 서비스 해주는 곳이 없어서 나도 읽어보지 못했다. 아무튼 이 논문에서 임형택은 이야기꾼을 강담사, 강창사, 강독사라는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중 강독사는 전기수와 같은 것이고 강창사는 판소리 하는 사람인데, 강담사는 시전이나 사랑방에서 담화조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정병설 선생님은 규중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강담사인데 이를 "책비"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신 듯하다.

그런데 강담사는 일본식 용어이므로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일본의 유명한 출판사 고단샤의 고단도 한자로 쓰면 "강담"이 된다.

슬쩍 살펴본 바로는 역사학자 논문에서 "책비"가 등장하는 적은 없는데 여타 학문에서 이규태를 원전으로 해서 인용하는 경우는 있고, 그런 결과 동화책으로도 나오고 드라마(신입사관 구해령), 영화(궁합) 등에도 등장하고 있다.

어디서라도 교차 검증이 가능한 뭔가가 등장해 주면 좋겠는데, 2006년에 세상을 떠난 이규태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추가]

정병설 선생님이 임형택 논문에 나오는 강담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셨는데, 해당 논문은 서비스 하는 곳이 없어서 찾아보지 못하고, <한국의 이야기판 문화>(소명출판, 2015)에 해당 글이 재수록된 것을 찾아내서 읽어보았다.

임형택은 이야기꾼을 강담사, 강창사, 강독사로 나누었다.

강담사는 쉽게 말하자면 만담꾼(개그맨)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이다.

강창사는 창을 하는 판소리꾼.

강독사는 다시 둘로 나누어지는데, 전문적으로 길거리에서 영업을 하는 이야기꾼으로 흔히 전기수라 부르는 종류와 남의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이 두 번째 부류에 이규태가 말한 "책비"도 들어갈 수 있다.

집에 찾아가 이야기를 해주는 걸로 유명한 인물은 이업복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향견문론> 7권에 나온다. 하도 소설을 잘 읽어서 부자들이 앞다퉈 불렀고, 어떤 서리 부부는 일가처럼 들여서 먹여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임형택은 "여자 강독사"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무신 구수훈(1685~1757)이 지은 <이순록>과 조선후기 야담집 <패림>에 실린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떤 평민이 십여세부터 여장을 배우고 여자 글씨체도 배운 뒤에 여자처럼 소설을 읽을 줄 알았는데 어느날 홀연히 집을 나가버렸다. 그후 그는 사대부 집에 출입하면서 진맥도 하고, 방물도 팔고, 소설도 읽어주며 살았다는 것.

이처럼 여장을 하고 규중에 들어가 소설을 읽어주었다는 것을 볼 때 여자 강독사가 이미 있었으므로 가능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온리 강독사로 살아가지 못하니까, 진맥도 하고 방물도 팔았을 것이므로 여자강독사가 직업으로 존재한 것은 아닐 것이라 보고 있다.

이로써 미흡하나만 여자가 소설을 읽어주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교차 검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명칭이 책비였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는 없겠으나.

덧글

  • rumic71 2021/07/18 09:43 #

    강담사는 일본 맞지요. 요미우리도 살짝 비슷한 뜻이고...
  • 초록불 2021/07/18 11:53 #

    중요 논문을 찾아내서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 피그말리온 2021/07/18 12:16 #

    좀 어색하긴 하네요. 책을 읽어주는 노비라고 하면 읽어준다는게 중심이어야 하는데 책비라는 명칭을 쓰니...
  • 초록불 2021/07/18 12:41 #

    讀婢...
  • rumic71 2021/07/18 12:50 #

    여장을 해야 했다는 점이 흥미롭군요.
  • 초록불 2021/07/18 13:52 #

    성소수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hansang 2021/07/19 22:12 #

    이규태 코너는 굉장히 좋아했던 코너였는데, 지금 보니 오류가 많은가 보군요. 어린 시절, 세계에서 가장 아는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 초록불 2021/07/20 16:26 #

    생각보다 오류가 많고 들은 이야기를 옮기면서 좀 뇌피셜로 처리한 부분도 많고 그렇습니다. 아는 게 많은 건 분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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