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로 뭉친 선비 *..역........사..*



조선 시대 과거 중에는 성균관 유생들만 치는 관시(館試)라는 게 있었다.

원점(성균관 식당에서 밥 먹으면 찍어주는 점)이 300점이 넘어야만 칠 수 있는 시험인데 50명을 선발했다.

성균관 정원이 200명이니까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세종 때 성균관 유생 중에 공기(孔頎)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관시를 치게 되었는데, 응시 인원이 51명이었다.

즉 1명만 떨어지는 시험을 치게 된 것이다. 이 시험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공기는 초장을 치지 않았다.

"어쩌려고 그래?"
"걱정마라. 1명 떨어지는 시험인데 내가 떨어지겠냐?"

그러더니 중장에서도 술만 마시면서 글을 제출하지 않았다.

"걱정 마, 걱정 마. 종장이 있으니까. 딸꾹!"

이러자 남은 50명이 뿔다구가 났다. 그들은 종장 때 공기에게 술과 안주를 퍼먹였다. 공기는 신나게 먹고 마신 끝에...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50명은 합격하고 공기만 떨어졌다.

공기는 세종 29년에 문과 급제를 했다.

이때 성적은 33명 합격자 중 32등. 그러니까 꼴등 두 번째로 붙었다.

원래 실력이 그리 출중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

뒤에 성균관 대사성까지 했는데, 성균관을 어찌 다스렸을지 모르겠다.

덧글

  • 역사관심 2021/09/24 03:02 #

    와 뭔가 저와 많이 다른 이런 사람 보면 어떤 면으론 부럽습니다... 성균관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ㅎㅎ
  • 초록불 2021/09/24 14:03 #

    전국 32등이라고 생각하면 또 덜덜덜한 기분이기도 합니다...^^
  • 존다리안 2021/09/24 09:17 #

    시험은 못쳐도 능력 자체는 있는 인물이었을지도요.
  • 초록불 2021/09/24 14:04 #

    성균관 성적으로 그런 셈이라 전국32등이면 뭐 그건 또 그것대로 레전드이긴 하겠습니다.
  • 함부르거 2021/09/24 09:42 #

    세종 때만 해도 많이 뽑던 시절이니 성균관에 남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배짱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윗분들 말씀대로 의외로 능력 자체는 있었을 거 같은데요. ㅋ
  • 초록불 2021/09/24 14:04 #

    그렇죠. 이러나저러나 전국32등 아니겠습니까... ㅎㅎ
  • 지수 2021/09/24 18:54 #

    당시에 성균관이면 이미 머리 하나는 좋은 것 같고 과거는 이미 붙은 거 자체가 대단하죠 ㅋㅋㅋ 오늘로 치면 명문대 학생이 공부 대충하고 F 받고 고시를 아슬아슬하게 합격한 부류 같아요 ㅋㅋ
  • 초록불 2021/09/24 22:05 #

    적절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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