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옥사



조선 영정조 때 개성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명주라는 사람에게 복덕이라는 첩이 있었다. 오래 해로하던 아내가 죽은 뒤 복덕은 안방을 차지했다. 그에게 아들이 셋이고 딸도 하나 있어서 위세가 있었다.

2년 후 한명주의 아들, 손자가 죽었다. 그러자 손자의 아내였던 적손부 김 여인이 복덕이 흉물을 묻어 저주를 했기 때문에 이들이 죽었다고 고발했다.

손자는 만두에 독약을 넣어 죽였다고 했고 한명주의 아내도 저주로 죽은 것이라 주장했는데, 저주 하는 걸 보았다는 여러 증인까지 나타나서 한명주도 의심이 들어 고발하게 된 것이다.

복덕은 체포되었고 그녀의 세 아들과 딸도 고문을 받았다.

그런데 복덕의 아들 효신이 이것을 억울하다 국왕(정조)에게 상언을 올렸다. 정조가 상언을 들여다보니 과연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10년 만에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복덕이 묻었다는 저주의 물건. 이것을 주었다는 무녀는 이미 죽었는데, 사실은 이 물건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장례 후에 저주의 물건을 파내서 한명주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나 그 후 쓸모없는 물건이라 하여 포구에 가서 던져버렸다 하니 물증이 없는 사건이었다.

저주의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남들 있는 곳에서 소리를 내어 저주를 할 리가 없는데 복덕이 그랬다고 증언한 사람들은 모두 김 여인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결정적으로 독만두의 경우는, 그것을 먹었다는 때가 정월인데 사람이 죽은 것은 8월이었으니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정월 세배 때 복덕은 적손자가 미워서 뒤로 돌아 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절을 받지 않았는데 만두를 내놓았다는 것 역시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 사건은 복덕이 안방을 차지하자 한명주의 재산이 복덕의 아들딸에게 넘어갈 것을 걱정하던 적자 집안에서 심지어 사람들까지 죽어나가자 분노와 질시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었다.

이제 나이 80이 된 복덕은 즉시 방면되고 복덕을 모함한 인간들은 모두 잡혀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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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정조 시대에 감옥에 잡혀들어간 70노인이 10년 옥살이를 하고도 살아 남았다는 것이 이 사건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 (퍽!)

그래서 복덕이 갇혀있던 방이 재수가 좋은 방이라고 해서 복덕방이라 불렸는데, 훗날 집을 소개해주는 복덕방의 유래가 여기 있다고 한... (퍽퍽퍽!)

#선_위는_진짜_있었던_일
#상소는_관원_유림_등이_올리고_상언은_일반_백성들이_언문으로도_올렸음

덧글

  • rumic71 2021/09/27 10:35 #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응?)
  • 초록불 2021/09/27 14:20 #

    지갑도 흘리지 말아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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