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장으로 생긴 일 *..역........사..*



조선 후기에 묏자리를 잘 써야 출세를 한다는 헛된 믿음이 퍼지면서(지금도 많이들 믿는다는 게 함정) 새로운 문제가 일어났다.

어차피 그다지 크지도 않은 국토에 명당이라 할 만한 곳이 그렇게 넘쳐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 이미 쓸만한 자리는 다 써버린 상태. 그러니 이제 어쩌겠는가?
풍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남의 묘 쓴 자리를 훔치는 방법이 나왔다. 말이야 훔치는 것이지만 사실은 권세가가 빼앗는 것이 대부분. 이런 것을 '투장'이라고 부른다.

숙종 때 일이다.

성주 지방에 박수하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박수하의 선산이 명당이었다. 청안 고을 원님인 박경여가 이곳에 투장을 했다. 박수하가 항의하여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일개 백성이 원님을 상대로 소송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박경여는 선산에 비석도 세우고 박수하를 거짓으로 고발하여 곤장 아래 죽게 사주했다.
조선의 잡史]곤장 100대 맷값이 고작 7냥… 벼랑끝 서민의 '극한 알바' : 뉴스 : 동아닷컴
박수하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어린 나이에도 장례를 잘 치른 똑똑한 딸이었다. 박수하의 유품으로 피묻은 옷과 칼이 큰딸 문랑에게 전해졌고 문랑은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 소식에 까무라쳤다가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했다.

문랑은 집안의 하인들과 함께 선산에 올라 박경여 조부 묘를 열 손가락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파헤쳐 관을 꺼내 불태워버렸다.

가만있을 박경여가 아니었다. 분기탱천한 박경여는 백여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보내서 문랑을 때려죽였다. 막아섰던 남자 종 하나와 여자 종 둘도 다 죽여버렸다. 그래놓고는 관에는 문랑이 자기 집안 친척을 죽이고 자살했다고 고했다.

문랑의 동생 차랑은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하고 서울로 올라가 신문고를 치고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신하들이 궁에 드는 곳에서 기다렸다가 조신들을 만나 울며 호소했다.
태종 때 설치한 '신문고', 실제는 무용지물
열일곱 소녀의 노력이 소문이 나면서 각지에서 응원이 이어졌다. 글을 써서 응원하기도 하고 양식을 보내 굶주리지 않게 도와주었다.

상소가 이어지자 결국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어명이 내리고 박경여도 투옥되었다. 하지만 박경여는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으로 세력이 있는 집안이어서 끝내 사건은 은폐되고 그도 처벌받지 않았다.

명당이라 하여 조상의 묘를 썼지만 아들과 손녀는 처참하게 죽었으며. 그 명당을 빼앗은 인간은 천하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옥살이도 했으니, 명당이 세상에 있다는 말처럼 허망한 것이 또 있겠는가.

덧글

  • 명품추리닝 2021/10/24 17:23 #

    역사야 늘 잔혹한 일 투성이지만 이 일화는 더 슬프네요.
  • 초록불 2021/10/24 22:50 #

    그렇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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